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7일 <PD수첩> '미국산 쇠고기'편 사건의 두 번째 공판이 열렸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문성관 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은 오후 2시에 시작해서 8시간만인 밤 10시에 끝났습니다. 방송 제작 과정에서 외국어를 번역하고 자막을 제작한 번역자와 작가가 증인으로 출석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내부고발자를 자처하면서 <PD수첩>의 인터뷰 내용 오역과 의도적 왜곡 논란을 주도했던 정지민씨는 검찰 측 증인으로, 정씨에게 인터뷰 번역을 의뢰했고 함께 자막 감수 작업을 벌였던 보조작가 이연희씨는 변호인 측 증인으로 법정에 나왔습니다.

 

고성 오간 대질 신문... 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두 사람은 지난해 방송을 앞두고 자막 감수를 하던 당시처럼 법정 증인석에 나란히 앉아 대질신문을 받았습니다. 공판 전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갈까 내심 기대가 컸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주장이 줄곧 평행선을 달린 탓이었지요. 과연 저 두 사람이 방송 제작 당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했던 사람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정씨는 자막을 최종 감수하면서 "번역이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수도 없이 지적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씨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정씨는 감수 작업 중에 "문서로 출력된 자막의뢰서를 손에 든 채 보면서 했다"고 밝혔지만 이씨는 "자막의뢰서를 출력한 적이 없고 함께 노트북에 저장된 문서 파일을 보면서 작업했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정씨는 "감수 과정에서 다우너소(주저앉는 소)를 광우병소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더니 작가는 그런 식으로 하면 방송제작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씨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단호하게 부인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격앙된 말투로 충돌할 조짐을 보이자 재판장은 대질신문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도중에 중단시켰습니다.

 

두 사람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 그러니까 둘 중 한 명은 명백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건은 재판부가 누구의 증언을 더 신빙성 있게 보느냐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날 공판에서 정지민씨는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자의적인 주장을 반복하는 모습을 여러차례 보였습니다. 

 

"광우병, 수술 통해 감염될 수 없다"? 정씨의 황당 주장


정씨는 "아레사 빈슨의 사인에 대해 당시 미국 언론에서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과 인간광우병(vCJD)이 모두 언급되긴 했지만 직접 취재한 기사들에서는 vCJD보다는 CJD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인용이 많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기사들에서 vCJD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어 나는 사인이 CJD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로빈 빈슨 인터뷰를 번역하면서 딸의 사인을 CJD로 번역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변호인 측이 <뉴욕타임스> <CNN> <NBC> <폭스뉴스> 등 진보-보수할 것 없이 대부분의 미 언론이 아레사 빈슨의 사인을 인간광우병으로 추정했다고 증거기사를 보여주자 정씨는 황당한 주장을 폈습니다.

 

정씨는 "기사 자체가 엉터리"라며 "위장절제 수술로 인해서 인간광우병에 감염됐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위장절제술과 인간광우병이 무슨 관계냐, 말도 안 되는 기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수술도구나 수혈을 통해 인간광우병이 전염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아레사 빈슨이 사망한 후 만약 사인이 인간광우병일 경우 그 감염 경로 중 하나가 수술도구일 수 있다는 지적들이 제기됐었습니다. 정씨가 이런 내용을 다룬 언론보도는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본인이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당당한 정씨의 태도에 변호인들은 두손두발 다 들었다는 듯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씨의 자의적은 주장은 또 있습니다. 변호인 측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우너소(주저 앉는 소)에 대한 전면 도축금지 조치를 취한 것은 다우너소가 광우병 위험이 있기 때문 아니냐"고 질문하자 정씨는 "주저앉는 증상은 광우병 말기 증상인데 도축장에서 1차 검사에 통과한 소들이 몇 시간 만에 쓰러졌다고 해서 광우병 위험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PD수첩>이 휴메인 소사이어티 동영상 중 다우너소를 광우병 위험소로 연결시킨 것은 잘못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전문가들은 다우너소가 광우병 위험이 있으니 도축하기 전에 반드시 광우병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인문학도' 정씨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변호인측이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뭐냐"고 추궁하자 정씨는 인터넷 검색과 논문 검색을 통해 지식을 습득했다며 추측성 답변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재판장은 "기억나지 않거나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한다"며 "여기서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만류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인터뷰에 없는 내용까지 언론에 흘려

 

 

정씨는 이전에도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해 무리한 주장을 하다가 말을 바꾼 적도 있습니다.

 

정씨는 지난해 7월 자신이 번역한 로빈 빈슨의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며 "아레사 빈슨이 입원했던 메리뷰 병원이 그녀에게 비타민을 계속 처방했는데 이는 위장접합 수술 후유증을 의심한 처방"이라며 "하지만 <PD수첩>이 사인을 인간광우병으로 몰아가려고 이 내용을 고의적으로 빼고 편집, 방송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조중동과 <문화일보> 등 여러 언론으로 확대 재생산됐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레사의 어머니 로빈 빈슨의 인터뷰 전체 내용에 '비타민'이나 '위장접합수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수술 후유증으로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말을 바꿨습니다. 정씨는 "압수된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니 비타민 내용이 인터뷰에 실제로 없었고 제가 논문 등을 찾아보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라고 발뺌합니다.

 

이날 공판에서도 정씨는 "로빈 빈슨이 포타슘 등 영양소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을 비타민을 이야기한 것으로 착각했다"며 "이는 PD수첩 제작진이 번역 자료를 주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정씨의 기자 길들이기... 기사 출고 전 '감수'받은 기자들

 

사실 정씨의 말을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쓴 기자들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정씨가 최근에 출간한 책 <주(柱) - 나는 사실을 존중한다>를 보면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것도 모자라 기사 출고 전 미리 기사를 보여주고 '감수'를 받은 기자들도 있더군요.

 

정씨는 "취재 중 '1'이라고 하면 그대로 적는 스타일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2'인 것은 아닌가요"라고 묻는 기자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 기자를 어떻게 길들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기자는 "기사를 내보내기 전에 자발적으로 먼저 보내 줬다"고 합니다.

 

정씨는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상당수의 기사들에 대해 토씨 하나도 불만이나 걱정이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은 당사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정말 부끄러운 대한민국 기자들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PD수첩> 공판은 11월에 두 번을 비롯, 서너 차례 더 열릴 예정입니다. 원래 매달 한번씩 첫째 주 수요일에 공판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공판이 한 번 시작되면 6~7시간이 넘는 게 예사라 한 달에 두 번씩 나눠서 진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재판이 마무리되게 될 12월 법원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까요. 스스로 배심원이 되어 판단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재판 관전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그:#정지민, #PD수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