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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명불허전, 담양 메타세콰이어길

주말을 맞아 찜질방에 난입한 일군의 청소년 무리들이 새벽내 소란을 피운 덕에 자다깨다를 반복했음에도 다행히 6시 반에 눈을 떴다. 대충 씻고 짐을 챙긴 후 택시를 잡아탔다. 찜질방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지만 굳이 택시를 타고 서두른다.

행선지는 담양 명물 중 하나인 메타세콰이어길. 처음 왔을 때는 차가 지나다니던 시절이라 사진찍으랴 후방경계하랴 정신없었고, 두 번째 왔을 때는 우회도로가 생겨 차는 안다녔지만, 주말 사람들 많은 오후라 사진 곳곳에 관광객들이 등장했다.

세 번째, 이번만큼은 사람 없는 한적한 메타세콰이어 길을 꼭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잠도 설치며 서두른 끝에 도착한 메타세콰이어 길엔 아무도 없었다. 사진을 가리는 이들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아무도 없다. 세 번째 방문만에 메타세콰이어 길을 15분정도 독차지하는 호사를 누렸다.

담양 메타세콰이어길
▲ 메타세콰이어길 담양 메타세콰이어길
ⓒ 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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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몇장 찍고 있으니 자전거와 마차들이 들어온다. 장사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여행객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기왕 선점했으니, 사람들이 눈앞의 풍경에 끼어들기 전에 텅빈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MP3를 꺼내고 이어폰을 꽂고 아무도 없는 메타세콰이어길로 걸음을 내딛었다.

메타세콰이어길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왔다. 하나둘 관광객도 보이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조깅나온 인근 주민들. 이런 코스를 조깅로로 갖고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태원 산꼭대기에서 어차피 도로랑 집들뿐인 전망 때문에 조망권 법정싸움을 하는 재벌회장들은 참 딱한 사람들일 뿐이다.

이른 아침 메타세콰이어길을 산책중인 행인
▲ 메타세콰이길 이른 아침 메타세콰이어길을 산책중인 행인
ⓒ 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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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때문에 미쳐 소리를 듣지 못해 차가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지나간다. 메타세콰이어 길은 자동차 진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샛길로 들어오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최고일테지만, 걸으라고 만들어 놓은 도로에 굳이 차를 끌고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더 짜증나는 것은 어차피 한쪽 끝에서 진입을 통제해 놓았기 때문에 나가려고 다시 되돌아오는 차를 사람들이 피해줘야 한다는 것. 차 안에서는 절대 메타세콰이어길의 매력을 느낄 수 없다. 제발 좀 걷자.

베타세콰이어길 곳곳에 마련된 벤치
▲ 메타세콰이어길 베타세콰이어길 곳곳에 마련된 벤치
ⓒ 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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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백년 고목이 감싸안은 인간의 길, 관방제림

메타세콰이어 길의 입구에서 관방제림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걷는다. 이동하는데는 10분도 안걸리는 거리다. 몇 번 담양을 찾았음에도 관방제림은 첫 걸음이다. 항상 짧은 여행일정에 쫓겨 대나무, 소쇄원 같은 널리 알려진 것들만 집착한 탓이다.

고목들이 오솔길을 감싸고 있는 관방제림
▲ 관방제림 고목들이 오솔길을 감싸고 있는 관방제림
ⓒ 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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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방제림은 관방제 뚝방 위로 펼쳐진 고목들로 둘러싸인 길이다. 저 유명한 메타세콰이어길과 마찬가지로 가로수길인 셈이다. 하지만 두 길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메타세콰이어 길은 곧게 높이자란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주는 시원한 느낌, 그리고 일정한 간격과 크기가 만들어내는 나무터널 사이의 아스팔트도로가 안정적이고 인공적인 세련된 느낌을 주는 길이다.

반면 관방제림은 뚝방을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목들이 그 압도적인 품으로 작은 오솔길을 껴안고 있는 느낌이다. 젊은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하늘에 도전하듯 그 높이를 뽐낸다면,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고목들은 그저 땅으로 자신의 팔을 뻗어 사람과 그들이 다니는 길을 어루만진다.  

관방제림에서 휴식을 취하는 어르신
▲ 관방제림 관방제림에서 휴식을 취하는 어르신
ⓒ 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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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아니면 두 장소의 특징들 때문인지, 메타세콰이어길엔 젊은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mp3를 꽂고 거닐고 있었는데, 관방제림에 오니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고목을 벗삼아 쉬고 계시다.

메타세콰이어길에서 출발해 관방제림을 통과하면 죽녹원의 입구로 나온다. 어제 왔던 길이다. 어제의 경험을 되살려 어려움 없이 터미널 부근으로 이동해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 아침에만 두 곳을 돌아봤는데도 11시다. 일찍부터 일어나 서두른 덕분이다.

오늘은 목포에 가서 1박을 한 후에 아침 날씨를 봐서 청산도로 들어가거나 보성이나 해남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목포에 가기엔 시간이 좀 이르다. 관광지도를 꼼꼼히 살펴보다 광주로 되돌아 가는 길의 중간에 위치한 창평에 들리기로 결정했다. 버스가 자주 없는 탓에 1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창평행 버스에 올랐다.

7. 좀더 단장이 필요한 슬로우시티 창평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군내버스를 이용했는데 운행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이 타셨기 때문에 버스는 어른들이 안전하게 내리시고, 또 타신 후에 좌석에 앉으신 후에야 출발하는 터에 정류장에 한참을 머물러 있는다. 뒤에 차가 밀리는 것도 아니니 급할 것도 없다. 덕분에 정류장 정류장마다의 풍경들을 여유롭게 살펴볼 수 있었다.

창평은 최근에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느리지만 멋진삶을 지향한다는 슬로우시티, 고택과 돌담길, 한적한 시골풍경... 등등이 관광안내상의 슬로우시티 창평의 소개말이다. 하지만 실제의 창평은 아직 좀 아쉬웠다. 슬로우시티 지정후에 한참 기반공사를 하는 중이어서 고택들은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고, 사진에 아름답게 찍혀있던 돌담길은 보수한지 얼마 안되는지 '새로지은 담'의 티가 너무 많이 났다.

가을의 초입인지라 그나마의 돌담길도 여름내 무성히 자란 넝쿨류의 풀들로 뒤덮여 있었다. 압권은 깃발들과 현수막. 창평의 슬로우시티 선정을 축하하는 현수막과 민방위 깃발처럼 전봇대마다 두 개씩 꽂혀있는 깃발이 그나마 돌담길의 정취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느린 동시에 멋져지려면 좀 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관광자원이 될 수 있으니 홍보와 편의시설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지자체의 일이다. 다만, 느림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좀더 느리고 멋진 방식의 개발과 홍보를 해주길 부탁한다.

아무래도 창평을 지금 방문하라고 추천하기는 힘들다. 정비가 이루어진 내년쯤에는 좀더 멋진 모습이 될 듯하다. 그쯤되면 마을 입구 사무실에서 그냥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느림과 멋짐을 동시에 맛볼 수 있을듯 하다.

8. 어항 목포의 재발견

저녁시간에 이동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오후에 목포로 향한다. 생각보다 창평이 찍을만한 풍경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구름이 걷혀가는게 목포에서 일몰을 찍을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광주를 거쳐 목포행 직행버스에 올랐다. 목포에 사는 친구와 저녁 술약속도 잡고 일몰을 찍을 만한 곳에 대한 정보도 얻는다.

목포에 도착하니 5시쯤 되었다. 고향의 바로 옆에 있는 도시로 친숙한 곳이다.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창평에서의 푸르고 높던 하늘은 다시 비구름에 덮여있다. 일몰사진을 찍을 수 없게 돼버렸고 그래서 너무 일찍 도착한 목포에서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무작정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팔이 다쳐 일을 쉬고 있는 친구가 한 팔로 차를 몰고 나온다. 한 팔이 불편한 친구를 기사 삼아 목포를 돌기 시작했다.

조기를 그물에서 분리하는 아주머니들
▲ 목포항 조기잡이 조기를 그물에서 분리하는 아주머니들
ⓒ 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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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터미널이 있는 목포항은 아무래도 도회적인 느낌이 날 것 같아 좀더 작은 항구로 안내를 부탁했다. 하지만 가는 항구마다 공사중이다. 어쩔 수없이 결국 목포항으로 갔다. 목포항 구석으로 들어가니 조기잡이 배가 들어와 있다. 배에서 조기가 달린채로 그물을 뭍으로 올리면, 수십명의 아주머니가 모여 그물에 달린 조기를 떼어내 용기에 담는다.

항상 여객터미널만 이용해서인지 목포항은 어항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목포항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다. 하긴 부지런한 어부들의 모습을 게으른 이가 잘 찾지 못했던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목포항에 정박중인 어선들
▲ 목포항 목포항에 정박중인 어선들
ⓒ 문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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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를 한바퀴 둘러본 후 친구와 술집을 찾았다. 일주일에 일곱 번씩 보던 녀석인데 이제 일년에 한번 보기가 힘들다. 그렇게 일년에 한번 만난 친구 녀석과 술잔을 기울였다. 술이 몇잔 돌고나서 만난 김에 내일 하루 같이 보내기로 했다. 원래 계획했던 청산도 행은 포기하고 친구와 같이 갈 수 있는 보성으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갑자기 만나 훌쩍 함께 여행길을 같이 걸어줄 친구 덕에, 그리고 몸의 피로를 녹여주는 소주 몇 잔에 취해 깊은 잠을 잤다.

덧붙이는 글 | 보다 많은 사진은 [낮은표현의 이미지 2.0]을 통해 소개하도록 할게요.



태그:#담양, #목포항, #메타세콰이어, #관방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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