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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티브이 앞에 앉으면 유쾌한 듯 이러저러한 소위 '예능프로'에 젖게 된다. 일상의 대화에서 간혹 또는 빈번히 예능 출연자들의 입담을 리바이벌하거나 흉내 내며 즐거워한다. 커다란 정치사건과 사회문제에 흥분하거나 분노하기도 한다. 때론 쪼들린 생계와 얄팍한 지갑에 낙담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정치에서 예능으로 예능에서 무대로 넘나드는 진지한 듯 뻔뻔하며 뻔뻔한 듯 진지한 인물을 공유하게 된다. 그가 허본좌 '허경영'이다.

 

 사람들은 허경영을 실제로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피식' 웃으면서 허경영에게 열광한다. 최근 그의 콘서트는 성황리에 끝났다고 한다. 그것도 싼 값 10,000원대 공연이었다. 그는 대선에 출마해왔고 여러 안 좋은 루머와 혐의로 교도소 수감생활을 한 정치범(?)이다. 이제 출감한 지 수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의 끈끈한 진지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약간의 비정상과 유연한 반항이 그의 내면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그런 그에게 유독 우리 시대 젊은이들은 관심이 많다. 콘서트의 성공은 그 관심의 절정이랄까?

 

 미국의 정통경제학을 사양하는 비주류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이라는 학자가 있다. 그는 그의 저서 「Exit, Voice, and Loyalty」(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강명구 옮김)에서 '이탈'의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미국의 히피족을 이야기한다. 히피족과 같은 그룹들이 벌이는 '無속박' 운동은 지극히 미국적 전통이며, 주변 사회질서에 대한 불만이 투쟁보다는 이탈, 아울러 불만족스러운 집단으로부터의 후퇴 및 별개의 '무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절대 사회체제 내에서 후퇴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이 배척하는 질서정연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과시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히피들은 그 이탈방식이 확연히 눈에 띄고, 또한 반항과 약간의 비정상을 기묘하게 결합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 책 148쪽에서 읽혀 질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청년 이태백과 88만원 (일)짜리들의 현실은 이탈을 여유롭게 유도할 수 없고 감행할 수도 없다. 이탈할 자본력이 없다. 항의는 시도해 보았지만 그 시간에 경쟁이 쫓아오고 있었고 그렇게 별 재미가 없었다. 암울한 현실에 '존나' 욕설문화는 지긋지긋한 경쟁의 젊음에서 자연스레 내뱉게 되었고 심지어 타락한 어른들을 조롱하는 청소년 성매매협박단이 언론지면을 차지하게 될 때도 있다. 이런 탈출구 없는 시대에서 이제 이탈도 아니고 항의도 아닌 새로운 어설픈 무대가 개설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우스꽝스럽지만 왠지 진지한 'call me 허경영'이다. 그를 하루 세 번 불러보면 만사형통이다. 오락정치의 새로운 출현이다. 이것은 정치와 현실에 대한 환멸과 자포자기와 오락물이 혼합된 정치의 변형이다. 허본좌를 구심점으로 정치가 희극화 된다. 10,000원으로 접할 수 있는 이탈과 접근이 편리한 정치다. 그러나 이 희극화된 약간의 비정상과 숨겨진 반항들이 새로운 항의로 변형되어 우스꽝스러운 뻔뻔함이 진지함 그 자체로 변형되어 새로운 변형된 항의를 정치화한다면 그 때도 우리는 허허실실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탈을 위한 비용도 없다. 항의는 경쟁 속에 구심력이 없다. 촛불로 해봤는데 그저 그런 함성으로 끝난 듯했다. 그러나 이제 값 싸고 즐거운 유연한 반항의 목소리가 있다. 그것이 얼마나 길고 힘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흐름을 뒤바꿀 무언가의 힘이 결속된다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정치, 문화세력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태그:#허경영,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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