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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한 50대 남성이 9살난 여자 어린이를 화장실로 끌고 가 폭행하여 실신시킨 후 강간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여자 어린이는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했지만 생식기의 80% 이상이 영구적으로 소실되었고 평생 동안 배 옆에 작은 주머니를 달고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나영이 사건'이라 부른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나영이 사건'이라고 사람들 사이에 지칭된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의 이름이 아닌 피해자의 이름으로 불려왔다. 대학사회 내에서 종종 벌어지는 교수의 성희롱내지 성폭력 사건 역시 대부분은 K교수 사건이 아니라 K양 사건으로 불린다. 밀양에서의 10대들에 의해 벌어진 성폭력사건 역시 밀양여중생 집단 성폭력사건으로 불린다.

 

이것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면서, 피해자에게 정신적 압박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상이 공개되어 2차 성폭력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물론, 나영이라는 이름은 가명이고,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아, 지칭할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폭력사건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형태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는 신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아주 특별한 용기'라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상담사례를 담은 책에서는 성폭력피해자들의 삶을 '생존'이라고 불렀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생존'이라 불릴 만큼 성폭력피해자들의 고통은 크다. 따라서 피해자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밀양에서의 성폭력 피해자가 사회생활을 해나가면서, 밀양출신인 것을 밝혔다가 농담으로라도 밀양여중생사건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 피해자는 또 다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나영이가 진정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성폭력문제를 비롯한 성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보다 성숙한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가해자의 형량을 늘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한 최연희 한나라당의원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던 한나라당이 아동성폭력에 분개하며 형량을 늘리는 포퓰리즘 정치를 보면 코웃음이 나온다.

 

피해자가 생존할 수 없는 나라에서 가해자에 대한 형량만을 늘린다고 성폭력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번과 같이 명백한 성폭력 사건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성폭력과 성추행에 대해서 보다 민감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성폭력피해자들이 이후의 삶에서 일상적인 성추행과 성폭력을 견뎌야 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있겠는가.

 

이번 사건에서 보여주었듯이 만취한 상태를 고려한다거나, 삽입여부를 중심으로 성폭력문제를 대하는 보수적인 법원의 법리해석 역시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질심문하거나,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 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몰아세우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 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SBS의 보도에 따르면, 2차 성폭력의 67%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과정 속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나영이와 같은 성폭력피해자들이 한국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학생사람연대>신문 10월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태그:#나영이사건,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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