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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외치다>의 저자 류은숙씨가 30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알라딘 푸른숲 독자 초대 -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서 강연하고 있다.
 <인권을 외치다>의 저자 류은숙씨가 30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알라딘 푸른숲 독자 초대 -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서 강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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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도둑맞고 있다."

인권이 후퇴하는 고난의 시절, 인권활동가 류은숙씨가 진단한 위기의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탄압'이 아니었다. "정권 탄압이 크지만, 그건 싸우면 되는 것"이다. 정말 큰 문제는 사회경제적 강자들이 인권을 강탈하는 것이다.

15년 동안 인권운동사랑방과 인권연구소 '창'에서 운동을 해온 류은숙 인권활동가는 "예전에는 '인권'이라고 하면 사회적 강자들이 움찔했는데, 요즘엔 '나도 인권이 있다'고 말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르지 말라고 노동권을 외치면, 회사는 "나에겐 사용권이 있다"고 대응한다. "누구나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건강권을 주장하면, 의약 회사들은 "우리에겐 지적 재산권 있다"고 맞선다는 것이다.

듣기에 '참 좋은 말씀'이지만, 별로 힘은 없어보이는 인권.

누구나 자신의 '인권'을 외치는데 현실의 인권은 후퇴하는 지금, <인권을 외치다>를 펴낸 류은숙 활동가가 9월 30일 저녁 7시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에서 인권 강의를 펼쳤다. 도서출판 '푸른숲'과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이번 행사를 함께 주최했다.

▲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저자와의 대화 1부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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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현찰인출기가 아니다, 영원한 이단이다"

<인권을 외치다>의 저자 류은숙씨.
 <인권을 외치다>의 저자 류은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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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활동가는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사회적 공공성을 고려하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노상강도가 강탈한 지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회적 여론을 만들고 법적 절차를 밟아서 자기 권리를 찾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인권을 현금인출기처럼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권은 빨리 현찰로 바뀌지 않는다.

류 활동가는 "'아프다'고 말도 꺼낼 수 없는 사람들이 제도 밖에서 무수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당한 여성들에게 "왜 아픈데?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그걸 이해 못하면 어떻게 사회생활 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 고통에, 아프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인권침해'라고 명명해주는 것이 류 활동가가 말하는 인권운동이다.

그래서 인권은 언제나 빨리 튀어야 한다. 인권이 법제화되면 그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순간에 내가 아는 모든 인권은 오래되고 낡은 '구(舊) 인권'이다. 인권의 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기 위해 나는 또 튀어야 한다. 원 밖으로. 그래서 인권은 영원한 이단이고 저항이다."

그래서, 아무리 고상해 보이는 국제인권법 전문가이고 인권변호사라도 고통받는 사람들의 구차하고 궁색한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권문맹'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류은숙 활동가는 자신의 '뼈아픈 기억'을 꺼냈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인권운동사랑방에 "인권변호사를 구해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류 활동가가 "우리 단체는 변호사가 없다"고 설명하자마자 "이 XX년아, 변호사도 못 구하면서 왜 거기 앉아 있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권에 대한 일반적 정서가 그렇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법에 목매달면 인권이 시장에 편입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각종 법리 해석을 동원해서 자기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이기기 때문이다.

▲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저자와의 대화 2부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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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90개국이 제 인권을 지지합니다"

류은숙씨가 '알라딘 푸른숲 독자 초대 -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서 강연하고 있다.
 류은숙씨가 '알라딘 푸른숲 독자 초대 -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서 강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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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회적 강자들만이 문제는 아니다.

노동자들은 사장에겐 대들지 못하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동남아에서 온 것들이 나와 같은 임금을 받냐"고 증오의 언어를 꺼낸다. 이 때문에 한국노동자를 위해서 일하면 칭찬을 받지만 이주노동자를 위해서 일하면 '배부른 짓'이라는 비난을 받고, 노동운동 하는 사람이 외국인 추방을 주장하는 모순까지 생긴다.

자신의 인권을 주장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 쉬운 희생양을 찾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류 활동가는 "인권은 사회적 약자들의 최후 수단이지만 그렇게 사용되지 않고, 그런 상황에서 인권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권을 뭐에 쓸꼬' 비관할 때가 많아진다.

류은숙 활동가는 "나도 1년에 한 번씩은 (그만두려고) 보따리를 싼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10여 년 전 만난 청소년에게 '낙관'을 배웠다.

서울의 한 변두리, 지금은 재개발된 지역의 방과후교실에서 만난 고3 학생은 류 활동가의 'UN아동인권협약' 강의를 듣고 "너무 감격했다"고 말했다. 실업계 고교생들의 현실과 인권의 이상향 사이의 격차를 걱정하던 류 활동가를 이 청소년이 '구원'했다. 그가 던진 구원의 메시지는 이랬다.

"인권을 알게 돼서 너무 기뻐요. 내일 학교 가서 담임이나 교장에게 '우리에게 인권이 있다'고 해서 들어먹을 리는 없죠. (이날 강의를 들은 다른 학생은 이후 교사에게 '청소년 인권'을 주장했다가 'UN에선 그게 통해도 교실에선 안 통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불만스럽게 생각했던 게 내가 삐딱하고 이상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느낀 것이에요, UN과 세계 190여 개국이 가입한 국제조약이 나를 지지해주고 있어요."

▲ 류은숙 <인권을 외치다>저자와의 대화 3부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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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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