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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길산.

  구름이 하늘을 날다가 산에 걸려서 멈춘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 '운길산'.

 

  오늘은 그 이름에 어울리는 운길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하얀 솜뭉치를

올려놓기라도 한 양 산과 하늘 사이에 구름이 걸려있었다.

 

  운길산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는 주민들이 가꾸는 농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 누렇게 거의 다 익은 콩, 흙을 밀어올리며 커가는 고구마.

  다양한 작물들이 가을볕에 조금씩 조금씩 더 영글어 가고 있었다.

 

  따가운 가을볕을 받으면서 영글어가는 호박을 보면서 호박전과 호박된장찌개를

생각하는 것이 지나친 것일까? 혼자 생각하면서 걸어가다가 입에 침이 고인 것을

느꼈다.

 

  산을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걷다가 한여름 장마가 할퀴고 간 수해현장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심하게 파헤쳐진 등산로는 불규칙한 돌멩이들로 덮여 있었고 그 때문에 걷는

것이 불편했고 발목 부상의 위협까지 느낀 순간도 있었다. 가을 햇살을 적당하게

가려주는 나무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땅에 새겨져 있었다.

 

  좀 더 올라가니 아예 뿌리가 드러난 채 휘청거리고 있는 나무도 있었다. 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산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건강한 산이 유지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고, 또

산을 관리하는 공무원들도 훼손 등의 문제점이 있는 부분에 대한 대책을 적기에 수립

하고 실행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산이 지속적으로 보존되기를 희망한다.

 

  산 속에서 만나게 되는 시가 새겨진 목판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또 한번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던져주었다. 다산 정약용 외에도 김유진의 '한적한 숲길을

걷노라면'도 마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가움을 더했다. 이렇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위한 아이디어는 운길산 외의 다른 산에서도 강구되고 실천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운길산 등산로에서는 이러한 시 목판 외에도 적절한 곳에 마련된 나무 의자들을

통해 잠시 땀을 흘리면서 쉬어갈 수도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열심히 오르다 보니 어느새 수종사에 도착했다.

 

  수종사 은행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며 저 아래로 흘러가는 남한강을 보았다.

 

 

  아련하게 보이는 산자락들이 그윽한 산수화 한폭을 보는 듯한 감흥을 일으켰다.

  500 살이 넘은 은행나무의 이파리들이 수채화의 중요한 마무리를 해 주었다.

 

  500살이 넘는 노령의 은행나무에서도 많은 은행 열매들이 맺혔고 익었고 떨어진다.

  겉껍질 때문에 은행의 냄새는 고약해도 깨끗하게 씻어두었다가 겨울에 구워 먹으면

맛도 좋고 또 감기나 인후염에도 좋다고 한다.

 

  땅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들은 노랗다 못해 가을을 웅변하듯 투명하기까지 했다.

  추운 겨울을 대비해서 가을에 열매들을 먹어치우는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은행은 딱딱한 껍질 위에 냄새나는 껍데기를 한겹 더 두른 것이 아닐까?

 

 

  수종사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운길산 정상을 향한 걸음을 계속했다. 돌담과

돌계단이 잘 다듬어져 있었고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한 밧줄도 준비되어 있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처럼 서둘러 붉게 물든 단풍잎에는 벌레들의 잔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점점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운길산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에 헬기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각종 행사나

환자 발생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이 매점(?)의 신속한 대처가 과연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걱정을 해 보았다. 땀 흘린 등산객들에게 마치 시원한 선물과도 같은

음료수와 빙과를 제공하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헬기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점의 위치나 면적에 대한 검토와 조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바람이 거의 불지않아 땀을 많이 흘리면서 올라간 끝에 드디어 운길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운길산 표지석의 키가 그리 크지않아서 사람들이 쉽게 손을 올려놓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몸통 부분과 달리 윗 부분은 손때가 묻어 있는 듯 했다. 배낭에

준비를 해 간 음료수와 오이를 먹으면서 달콤한 휴식을 했다.

  

땀을 닦은 뒤에 길게 이어진 능선을 따라 멀리 예봉산을 바라보았다.

 

  다음번 산행은 운길산과 예봉산을 종주하는 것으로 해 볼까?

  (운길산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들이 후속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운길산을 찾는 등산인들이 정말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은 받는 운길산은 하지만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었다. 심하게 패인 등산로와 뿌리까지 드러난 채 신음하는 몇몇 나무들은 땀 흘리며 산을 찾은 이의 마음을 아프고 부끄럽게 했다. 사랑해서 찾는 마음으로 보존하는 데에도 정성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그:#운길산, #수종사, #예봉산, #남양주시, #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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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들을 다닌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비슷한 삶의 느낌을 가지고 여행을 갈만한 곳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적 문제점들이나 기분 좋은 풍경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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