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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개봉된 국내영화 "김씨 표류기"라는 영화에 보면 자장면이 주 테마로 나온다. 한강 밤섬 무인도(?)에 표류된 김씨가 자장면이 먹고싶어 직접 농사를 지어 면을 만들려 시도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새똥에서 씨앗을 찾으려하고 밭을 개간해 밀이 자라나길 기원한다.

 

 

그것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또다른 김씨, 안타까운 나머지 밤섬으로 자장면을 배달시켜 준다.

 

황당 시추에이션..

 

그러나 우리의 김씨, 여기서 짜장면을 다시 돌려보낸다… 그리고 한마디를 남긴다.

뭐라고 했나요? 그가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이말을 전해 달래요..자기에겐 자장면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인간이 얼마나 단순해 질 수 있는지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장면이 희망이 되어버린 인간에게 너무도 쉽게 얻어지는 자장면을 먹고나면 희망이 사라져 버린다. 주인공은 그래서 그 자장면을 먹지않고 돌려보낸 것이다. 솔직히 실제 상황이라면 인간의 본능이 그것을 용납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단순한 욕망이 희망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나 역시 해보았기에 충분히 영화 내용에 빠져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겐 그것이 김치였다.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김치를 안먹고 자라 김치에 그다지 애착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낀세대인 나는 어릴때부터 김치를 먹고 자랐기 때문에 일년이상 김치를 안먹으면 열병에 시달리게 된다. 20 몇 년간 먹어왔던 김치를 한순간에 끊어야 했던 나의 젊은 시절.. 영화 '김씨 표류기'와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그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네덜란드 아른햄이란 도시에서 자취를 할 때이다. 주변에 한국사람은 찾아볼 수 없어 완벽하게 그들의 생활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견딜만 했으나 언제부턴가 향수병이란 것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빵과 감자, 라면, 스파게티를 주식으로 먹으면서 머릿속에 김치 생각만 나고 김치 한조각만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진한 향수병으로 나를 몰아갔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고 한국에서 먹었던 온갖 주전부리들이 몽땅 생각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김치 김치… 그리고 결국은 결심을 하게 된다. "해보는거야!"

 

20대 청년의 난생 처음 김치 담그기

 

어릴 때부터 엄마가 김치 담글 때 했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머릿속에서 대충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지란 마음으로 직접 김치를 담가보기로 한 것이다. 중국 상점에 가면 이것저것 재료들은 다 구할 수 있다. 배추를 두 개 사오고 마늘을 사오고 가지고 있는 고추가루가 있으니 대충 버무리면 되겠지.

 

첫번째 작품

 

첫번째 배추김치를 그렇게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그 시큼하면서 달착지근한 그맛의 원인을 잘 모르겠는거다. 지금 같으면 그자리에서 인터넷을 뒤지면 금방 나오겠지만 컴퓨터란 단어 마저도 생소했던 시절이다. 일단, 재료들을 모아놓고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왜냐하면 다른 학생들과 화장실과 부엌을 함께 썼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전부 집을 비우는 주말이 돼야 마음껏 마늘을 까댈 수 있으니 말이다.(참고로 유럽 등에서 마늘 냄새는  독극물 이상의 취급을 당한다.)

 

그렇게 고대하던 주말이 왔고 학생들이 집을 비우기 시작했는데 한 레즈비언 커플만 집에 남아 문 걸어잠그고 레즈 행각에 몰두하는 것이다. 남자인 나도 좀 껴주면(?) 좋을 텐데..한 여자는 나보다 더 남자 같아 내가 더 무서웠다. 쇠사슬 체인에 가죽 옷에.. 그러거나 말거나.. 텅빈 집에 세 명이 남았지만 그들은 무시하고 어쨌든 부엌을 차지하고 앉아 용감하게 마늘을 까대기 십작했다. 중간에 레즈양께서 달랑 티셔츠 하나만 걸친 채 커피를 타기위해 부엌에 들어왔다 기절을 하며 온집안 창문을 열어제끼고 몸부림치긴 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마늘을 다졌다. "미안,나도 살아야 되거든.." 재료들을 마련한 다음 방으로 들어와 고민에 빠졌다.

 

하자! 가자! 배추를 김치 모양으로 썰고 마늘 다진것을 넣고 소금을 뿌렸다. 설탕을 듬뿍 넣고 시큼한 맛을 내기 위해 식초를 잔뜩 뿌렸다. 그리고는 가장 큰 플라스틱 박스에 넣고 감동에 젖어들었다. 이제 익기만 기다리면 되는거야! 보물단지 모시듯 방안 구석에 잘 모셔두면서 벅찬 감동에 젖어들었다.

 

그후 며칠동안 학교에 가서도 방안에 모셔둔 김치생각만 났다. 주말에 김치를 먹을 생각을 하니 그간의 서러움들이 다 씻겨나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평일날 먹으면 죽음이다..냄새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매일같이 뚜껑을 열어보면서 언제 김치가 돼나… 일주일간 계속 조바심을 냈던 것 같다.

 

너는 나의 희망이야… 그런데 뭔가가 좀 이상하다… 김치가 안되는 것이다. 시큼한 냄새는 나는데 며칠 시간이 지났는데도 배추가 뻣뻣하게 살아 숨쉬는 것이다! 당시엔 배추를 먼저 숨을 죽여야 한다는 걸 몰랐다. 소금에 먼저 절여야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냄새가 더욱 고약해져만 가고 모양은 배추모양 그대로다. 썩어간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매일 뚜껑을 열어보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했건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썩어갈망정 절대 김치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버릴 때도 몇 겹을 싸서 버릴만큼 고약한 냄새가 났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면서 낙담에 빠졌고, 김치 생각은 더욱 간절해 지기 시작했다.

 

깍두기를 담그자

 

그렇다. 배추김치는 내 능력 밖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깍두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냥 대충 썰어서 이것저것 양념하면 될 것만 같았다. 그래 깍두기를 담그는 거야.

 

주말이 되자 다시 부푼 마음으로 중국상점에 가서 무를 몇 개 사가지고 왔다.그런데 생각만큼 칼질이 안된다. 그냥 네모 반듯하게 썰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되는 것이다.한번 칼질을 할 때마다 무가 온 방안에 튀어 나간다. 칼질 한번 하고 주우러 다니기 바빴다. 깍두기도 쉬운 게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중간에 무생채로 자연스레 바뀌게 되었다. 어차피 모양 내는 건 포기했고 그냥 닥치는 대로 조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양이고 자시고 그냥 무치기만 하면 될테니까. 깍두기를 만들려고 했다가 정체불명의 무조짐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고추가루를 넣고 설탕을 넣고 마늘과 파를 다져넣고 참기름을 뿌린 후 그릇에 담아놓고 보니…

 

맛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당장 만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식 국에 냄비에다 밥을 지었다. 반찬은 딱 국과 무채, 두 가지였지만 더이상의 행복이 없었다. 그렇게 주말내내 매운 무채를 먹으면서 행복에 빠져들었다. 단순한 음식(?) 하나가 인간을 행복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는것을 그때 알았다. 밖에 못 나가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다. 방안에 틀어박혀 무생채를 먹는 행복에 비하면….

 

금, 토, 일 3일을 연짱 그것만 먹었다. 드디어 월요일 학교가는 날이 왔다. 아침에 라면을 끓이면서 국물이 조금 남았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유혹을 못 참고 남은 국물을 라면에 넣어 끓여 먹었다. 그리고는 열나게 샤워를 하고 ,향수를 뿌리고… 껌을 한통 다 씹었다. 완전범죄가 되었기만을 바라며..

 

달콤한 시간 후의 후유증

 

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기억중 하나가 바로 이 김치(?)도 아닌 무생채를 먹다 왕따당한 기억이다. 학교에 가니 분위기가 왠지 이상하다. 전부 얼굴표정들이 심각…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놈. 교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멋적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 난 설마 그때까지도 그 원인이 나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수업이 끝나고 전부 황급히 교실을 빠져 나가는데 그나마 나와 좀 친했던 독일 녀석이 나에게 온다. 그리고는 한마디 충고라고 해준다. 'hey..식사를 한 후 껌을 씹으라고…" 그리고 윙크를 하고 멀어져 간다. 망치로 한대맞은 기분이었다. 껌뿐만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학교 레스토랑에 내려가니 아이들이 나를 슬슬 피하기 시작한다. 보통 한 테이블에 앉는 사람수가 20명쯤 되는데 다른 테이블은 왁자지껄 잔뜩 모여있는데 내 테이블에만 한 명도 없다. 완벽하게 왕따가 된것이다! 사방이 유리로 된 학생식당에 혼자 앉아 스프와 빵을 먹다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첫눈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비참하고 슬플 때 내리는 첫눈… 그래서 더 기억에 남게된 것 같다.

 

그 이후 도저히 오후 수업에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아 첫눈을 맞으며 그냥 집에 와버렸다. 3일동안 무생채를 먹은 내 몸에서 나는 마늘 냄새가 그들에게는 숨을 멎게 만들 만큼 역겨운 냄새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 마늘이 들어간 한국 음식을 먹을 때는 조심조심, 그야말로 맛보는 정도로만 그것도 주말에만 먹었다.

 

※네덜란드 사람들도 한국여자를 아내로 맞은 경우 김치맛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역시 주말에만 먹는다고 하며 나에게 절대 먹고 밖에 나가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다. 홈파티에 초대받아 갔을 때 조그만 병에 담아서 한 조각씩 맛보는 정도로 즐기는 수준이다. 마늘을 싫어하는 드라큘라 이야기는 실제로는 그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마늘 냄새를 맡으면 죽으려고 한다.

 


태그:#김치, #유럽, #자취, #유학, #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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