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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어 50%에 육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중도실용 정책과 대통령의 서민행보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율 급등과 대조적으로, 서민생활은 여전히 팍팍하고 나아진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가는 치솟고 집값을 올라가는데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는 진짜 서민들이 과연 어떤 얼굴, 무슨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편집자말]
최근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이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기 회복"을 자신한다.

또 한편으로 정부는 줄기차게 '중도실용·친서민'이란 구호를 내세운다. 이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재래시장을 찾았고, 중도성향의 '케인지안'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지목했다. 진정성 여부를 떠나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취임 후 줄곧 10~20% 사이를 헤매던 이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50%를 넘나들 정도로 치솟았다.

여기저기서 경제가 좋아질 거라고 분위기를 띄운다. 정부도 스스로가 변했다(?)고 자평하며, 정책의 중심은 서민이라고 강조한다. 이젠 정말 서민들이 웃을 일만 남은 것 같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정말로 서민들은 웃고 있을까? 고용불안으로 시달리던 해고자들과 비정규직, 청년 구직자들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라도 생기게 됐을까?

싸늘한 고용지원센터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종합고용지원센터의 오전 9시 풍경. 시작 시간부터 실업급여 등을 신청하려는 실직자들이 꽉 들어찼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종합고용지원센터의 오전 9시 풍경. 시작 시간부터 실업급여 등을 신청하려는 실직자들이 꽉 들어찼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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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의 실상을 파악해보고자,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 각 시도·지역별로 위치한 고용지원센터는 지난해 경제위기 이후 악화된 서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소 중 하나다. 꼭 1년 전 터진 미국 월가의 '금융충격' 이래로 지금까지 줄곧 실직자들과 구직자들로 인해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추석을 앞둔 9월말 고용지원센터의 모습은 여전히 분주하다. 그러면서도 싸늘하다. 업무 시작 시간은 오전 9시. 하지만 이 시각 전부터 약 200여 명의 사람들이 대기 순번표를 뽑아들고 자리에 앉아있다. 대부분은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실직자들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려는 구직자들도 섞여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 부산스럽고 북적댈 분위기가 날 만도 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입은 굳게 닫혀있다. 서로 간의 대화는 전혀 없고, 시선 교환도 잘 보이지 않는다.

싸늘한 공기가 내려앉은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진다.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살며시 옆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며 이야기를 청했다. 

업무시작 30분 전부터 대기 순번표를 뽑아들고 벤치에 앉아있던 주부 한현경(41)씨. 그는 한 관공서에서 계약직으로 7년간 일하다가 지난 6월 말 계약만료로 실직했다. 지난달 말에 실업급여를 처음 받았고, 이날은 두 번째로 받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경기회복?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잘 못 느낀다"

"올해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말들이 많았고, 실제 그런 분위기여서 힘들어도 참고 일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재계약이 안 돼 일자리를 잃게 된 거죠."

한씨는 지난 7월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인해 직장을 잃은 계약직 공공기관 근로자 중 하나였던 것. 그는 "급여는 세금 제외하면 90만 원 정도 받았다, 그래도 자녀 둘을 키우면서 일을 병행할 수 있는 곳이라 좋았는데 이렇게 그만두게 돼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자격증도, 기술도 없는 주부인 한씨는 다른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가장 큰 걱정은 자녀들 사교육비다. 고교생과 중학생 자녀 둘을 둔 한씨. 학년이 오를수록 느는 사교육비는 항상 가족생계를 불안하게 만든다. 넉넉지 않은 남편 수입만으로는 늘 부족하다. 결국 그도 어떻게든 계속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자녀를 키우고 가사 일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정말 어려워요. 솔직히 주부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은 식당 등의 서비스직밖에 없는데, 그건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돼서 집안일과 함께 병행하기가 부담돼 선뜻 하기가 망설여지고요."

그는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나 솔직히 우리 같은 사람들은 거의 못 느낀다"며 "교육비나 생활비 부담이라도 좀 줄여줬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다.

구직? "막막할 뿐"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대기 순번표 앞에 몰려들고 있는 실직자들의 모습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대기 순번표 앞에 몰려들고 있는 실직자들의 모습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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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구직자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센터 한쪽 구석에 위치한 '실버카페'에서 만난 최갑수(가명·61)씨. 그는 자동차 업종 일을 하다 작년 12월로 정년퇴직을 한 후 계속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한다.
"경비직 같은 곳을 원했는데, 이젠 일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문의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네요. 나이가 많다보니 채용도 꺼리는 것 같고…."  

최씨는 7개월간 실업급여를 받아 생활했고, 이젠 지급 기간이 딱 1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당장은 괜찮지만, 지금처럼 계속 일자리가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나이 들면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경제가 좋아진다는데, 젊은 사람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그런 거 잘 모르겠어요. 사실 나 같은 사람이 갈 때는 용역자리 이런 데 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고요."  

젊은 사람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청년 구직자들의 한숨소리도 짙다. 전기 기술직 계통에서 일을 하다가, 이달 10일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김철수(가명·29)씨. 그는 2주 전 실업급여 신청을 했고, 이날 첫 상담을 하고 급여를 받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3년 동안 대학을 다녔지만, 희망이 없어 보여 자퇴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어요. 결국 실패하고 작년 처음으로 직장에 들어갔는데, 딱 1년 일하고 이렇게 잘리게 된 거죠."

계약직으로 일했다는 김씨. 일하는 중에도 항상 불안감이 컸다고 한다. 이제는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이제 곧 추석이지만)백수한테 무슨 명절이 있겠냐"며 "빨리 이 생활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쓰게 웃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는 솔직히 없습니다. 언제는 뭐 제대로 해줬습니까.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그저 개인적으로 열심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죠 뭐."
   
"실업급여, 도움 되지만 받아도 여전히 불안"

평일 오후 2시면 진행되는 실업급여 신청 설명회 풍경. 추석을 앞둔 9월 마지막주에도 매일같이 만석인 모습이다.
 평일 오후 2시면 진행되는 실업급여 신청 설명회 풍경. 추석을 앞둔 9월 마지막주에도 매일같이 만석인 모습이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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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후, 오후 2시경 다시 찾은 고용지원센터. 매일 이 시각에는 실업급여 신청 설명회가 진행된다. 이날도 100평가량 되는 설명회장은 금세 만석이 됐다.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찬 400여명의 실직자들은 아무 말 없이 상담강사의 말만을 경청하고 있었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9개월간 공공근로를 하다 이달 25일로 계약이 만료돼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온 이현웅(57)씨는 이날 교육을 통해 3개월 간 86만4천원의 급여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씨는 "앞으로 다시 무슨 일을 시작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답답한 생각만 들지만, 일단 한숨은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실업급여로 인해 한시름 덜었지만,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회사 경영악화로 권고사직을 받았다는 이기준(가명·42)씨는 "월100만원 안팎 돈으로 가족생계를 유지해나가자니 솔직히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며 "어디든 빨리 재취업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실업급여는 납부한 고용보험액에 따라 월 최대 12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업급여 최대 액(120만원)은 4인 가족 최저생계비(132만원)에도 못 미친다. 90일~240일에 불과한 짧은 지급기간도 향후 취업전망이 불투명한 실직자들에게는 큰 불안거리다.

수급자격 안 되는 실직자들은 더 '막막'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종합고용센터에서 구직공고를 살피고 있는 한 실직자의 모습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종합고용센터에서 구직공고를 살피고 있는 한 실직자의 모습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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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자격이 안 돼 실업급여마저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실직자들의 표정은 더욱 어둡다.
30대 남성이라고만 밝힌 한 실직자는 다니던 직장에서 월급여가 예정보다 보름이상 지연되는 상황이 두 달째 지속됐고, 향후 전망도 불투명해 퇴사했다고 했다.

"월급도 불안하게 나오고, 동료들도 많이 퇴사한 상태라 이대로 가다간 어차피 여기서 오래 일 못할 것 같아서 그만뒀습니다. 전에는 두 사람 이상이 하던 일을 최근엔 계속 혼자 떠맡아 하다 보니 업무도 너무 힘들었고요. 하지만 제 경우는 자발적으로 그만둔 상태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하네요."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 180일 이상인 근로자가 경영상 해고·권고사직·계약만료  등으로 불가피한 사유로 직장을 그만 둔 상태여야만 지급된다. '자발적 퇴사자'로 분류되는 경우, 특정 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급여를 받을 수 없다.

이씨는 "회사서도 개인사유로 그만두는 거라며 권고사직 처리를 못해주겠다고 한다"며 "실업 관련 정보들을 미리 알았어야 하는데, 내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될 줄은 생각도 안했던지라…"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는 또 "언제 다시 취업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실업급여마저 못 받게 됐으니 막막할 따름"이라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정책의 실질적 초점, 서민생활 안정에 둬야"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실업급여 수급자는 지난 8월을 기점으로 100만2809명을 기록했다. 1996년 제도시행 이후 100만 돌파는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72만3347명과 비교하면 38.6%나 증가했다. 올해 8월까지 지급된 실업급여액도 2조7736억 원에 달한다. 이는 2008년 한 해 동안 지급된 총 실업급여(2조8653억 원)와 엇비슷한 액수다.

고용지원센터를 통한 구인인원도 크게 늘었다. 지난 8월 신규 구인인원은 12만 명으로, 7월(10만5천명)보다 14.3%(1만5천명)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3.3% 증가했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 속에 각종 경제지표들이 뚜렷한 개선조짐을 보이고 있음에도, 서민들 삶의 질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고용상황은 여전히 악화일로임을 보여주는 수치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경기회복 조짐과 다르게 체감 실업률이 11%를 넘고 있고, 내년 최저생계비는 사실상 삭감되는 등 서민생활은 곤두박질 치고 있다. 그러나 실업·일자리 관련 예산을 보면 공공근로·청년인턴 등 한시적인 땜질 수준에 그치는 것들이 많다"며 "정부는 중도실용·친서민을 외치면서 내년 민생복지예산을 삭감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일게 아니라, 정책과 예산의 실질적인 초점을 서민생활 안정에 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그:#고용지원센터, #실업급여, #서민, #실직자,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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