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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고대 로마 시내에는 생활의 근거지였던 7개의 언덕이 있었다. 여러 언덕 중에서 로마인들에게 가장 신성시되었던 곳은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이었고, 현재 영어에서 수도의 의미로 사용되는 '캐피털(Capital)'의 어원이 되는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천천히 캄피돌리오 언덕을 올랐다. 요새 같은 높이의 이 언덕에서 로물루스(Romulus)는 로마의 건국신화를 남겼다.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은 전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이 언덕에는 주피터 신전(Temple of Jupiter) 등 각 신을 모시는 신전이 25개나 있었다고 한다.

광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청동상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년) 황제의 청동 기마상이다.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그는 로마의 황제이면서 철학자로도 널리 알려진 특이한 경력의 통치자였다.

나는 고등학교 때 그가 전쟁의 현장에서 남겼다는 <명상록>을 잠깐 보고 적잖이 놀란 기억이 있었다. 어떻게 2천 년 전의 로마 황제가 이렇게 내면으로 정교한 글을 남겼을까? 지금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책을 남긴 그가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기마상에 남은 실제 그의 모습은 곱슬머리에 수염이 더부룩하고 얼굴은 평범했다.

 

  "아빠! 아우렐리우스 황제 얼굴이 내가 생각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데?"

 

  나의 딸은 아직 어리지만 15세 관람가인 영화, '글레디에이터(Gladiator)'를 집에서 DVD로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상태였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 늙은 황제로 나왔던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모습이 네 머릿속에 깊게 남았기 때문일 거야. 실제 황제의 모습은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는 않았을 거야. 그리고 황제의 키도 현대의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크지는 않았을 거야.

 

로마 황제의 수많았을 기마상 중에 유일하게 남았다는 그의 기마상은 그의 생전 얼굴 모습을 아마도 그대로 남겼을 것이다. 당시의 겉모습도 현재까지 남아있고 머리에 가득 찼던 사상까지도 지금까지 전해지는 황제는 아마도 그가 유일할 것이다.

 

 

아래에서 올려본 황제의 굵은 팔뚝과 다리의 실감나는 근육은 수많은 전장에서 단련된 그의 삶이 엿보였다. 그는 키는 조금 작고 팔다리가 탄탄한 체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황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신비롭기까지 했다.

나는 기마상을 받치고 있는 광장의 바닥을 둘러보았다. 약간의 무늬만 있는 평범한 돌바닥이다. 서울에서 보행자가 다니는 인도의 보도 블록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보이는 바닥이다. 그러나 이 바닥에 명장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년)의 재치가 숨어 있다.

나는 딸을 데리고 광장의 한쪽 끝에 서 보았다. 어렴풋이 광장 바닥이 어떤 기하학적 문양을 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5백년 전에 만들어진 그 무늬는 현대에 봐도 전혀 세월의 흔적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세련되어 있었다.

나는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캄피돌리오 광장의 위성사진 지도를 검색해 보았다. 위성사진은 도시의 모습을 위에서 찍은 사진이기 때문에 미켈란젤로가 숨겨 놓은 코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현장에서 보면 꺾인 직선 몇 개로 보이는 광장 바닥의 무늬가 마치 곡선같이 보였다.

하늘에서 보기 좋은 이 바닥 무늬는 화려한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모습 같았고 다이아몬드가 마치 여러 개 겹쳐져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미켈란젤로는 하늘에서 봤을 때의 모습을 생각해서 바닥 문양을 만들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정녕 천재라고 하지만 나는 그 표현도 부족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광장 아래로는 코르도나타(cordonata)라고 불리는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계단을 설계한 사람도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였다. 나는 큰 바위 얼굴을 한 2개의 석상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 보았다. 계단은 유난히도 넓게 보였고 멀리서 보면 계단이 아닌 것 같이 보였다. 미켈란젤로가 이 계단을 설계할 때에 아래쪽에서 언덕 위로 올수록 계단 폭을 넓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계단 아래에서 가족과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리들을 찾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하루 동안 신청한 로마시내 지식 가이드가 이어폰을 통해 우리를 찾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가이드를 불렀다. 우리 가족이 너무 일찍 계단을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이 아가씨 가이드는 하루 동안의 인연을 함께 하는 여행팀에서 유일한 우리 가족에게 참 친절했다. 대학생들이 대부분인 여행팀에 가족이 함께 하는 모습이 좋게 보인 모양이다. 그 아가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로마시내 일일 가이드 투어에 한국에서 온 가족들이 합류하기 시작했어요. 정말이지 너무 반가워요."

 

  나는 가족 여행자들이 가이드 여행에 합류한 시점이 1세대 배낭족들이 아빠가 되고 그의 아이들이 같이 여행할 한 나이가 된 시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16년 전 유럽여행의 너무나 아름다웠던 추억을 찾아 가족들과 이곳에 다시 왔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괜히 잘난 척 하는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다.

 

 

  나는 가족과 함께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꽤 높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계단이지만 마음이 편안하고 부담이 없다. 계단은 마치 계단이 아닌 것 같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고 마치 낮은 경사면 같이 가깝게 보였다. 계단의 폭은 왕들이 탄 말의 보폭에 맞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왕이 이 계단을 마차로 오를 때 언덕이 높고 멀다고 불평을 하자 언덕이 가까워 보이는 계단 설계가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계단이 왜 이렇게 짧게 보이지?"

  "계단의 길이가 짧게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야. 가파른 계단이 완만하게 보이고 보는 이의 마음도 편해지는 것이 마치 불가사의 같지만 그건 천재 미켈란젤로가 파악한 과학의 힘 때문이지. 원근법에 의하면 물체는 멀리 있을수록 작아 보이는데 미켈란젤로는 높게 올라갈수록 계단을 넓게 설계했지. 미켈란젤로는 중세시대에 산 사람이지만 그의 생각의 폭은 현대인보다 오히려 앞섰던 위인이야."

 

  계단을 올라 캄피돌리오 광장에 다시 올라서자 바로크 양식의 시청사가 정면으로 보였다. 현재 로마 시의회와 로마 시장의 집무실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과거에 세나토리오(Senatorio) 궁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이 건물의 정면은 평범해 보이지만 건물 뒷면은 이 지구상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의회 건물의 가장 아래 기층부는 고대 로마의 폐허이다. 그 위에 중세시대의 건축물이 올라섰고 흙으로 덮여 있던 이 건물 위에 르네상스 시기인 1592년에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선 것이다. 1592년이면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발생한 해인데 그 당시에 만들어진 건축물이 여기에서는 신참 취급을 받고 있다.

시청사의 앞모습은 멀쩡하지만 포로 로마노 쪽의 건물 뒷면은 갑자기 높이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건물상을 보여준다. 짜깁기 하듯이 위층으로 이어진 건축물들은 강한 역사적 내음을 풍긴다. 땅속에 묻혀 있던 고대의 건물을 기초로 하여 계속 건물을 지어나갔던 것인데, 땅 속에 묻혔던 부분을 파헤치자 지금과 같은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무언가 부조화스러운 건물이지만 전혀 어색하지는 않다.

그 앞에는 포로 로마노 전체가 바라보이는 기가 막힌 전망대가 있었다. 캄피돌리오 광장의 시청사 옆 골목길을 지나자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포로 로마노가 다가섰다. 미켈란젤로에 반했던 나는 갑자기 로마제국의 영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마는 정말이지 매력적인 도시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로마, #캄피돌리오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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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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