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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이 용산참사를 해결한다.'

'MB가 무상의료보험을 도입한다.'

 

이명박(MB) 정부의 '중도실용·친서민'이 어디까지 갈지를 놓고 나오는 말들이다. 과연 가능할까?

 

대처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가 성공한 이유

 

지난 9월 18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재밌는 기사를 실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노조를 분쇄할(hobble)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내용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은 노동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약 70%라고 전망했다.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죽이기'는 사실 신자유주의의 핵심정책이다. 대처도 그랬고, 레이건도 그랬다. 그 여자는 광부 파업을 압살했고, 그 남자는 항공노조 파업을 제압했다. 노조로 대변되는 노동의 힘을 꺾어 버린 것이다. 그럼으로써 기업권력의 시대를 열었다. 강자 생존의 시장만 존재하게 됐다. 사회·정치적 역관계에서 노동은 쪼그라들었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기업지배의 사회체제다. 기업은 온갖 혜택을 누리고, 노조는 갖은 핍박에 시달린다. 기업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이다. 미국의 찰스 더버 교수가 말하는 코포크라시(corpocracy)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런 체제는 정치나 국가에 의해 보호돼야 유지된다는 것이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보수정당이 언제나 이기거나, 선거를 아예 없애버리면 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방법은 정치와 국가권력의 주체인 유력정당(relevant party)을 순치하는 것이다. 소외된 삶이나 경제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옥죄는 것이다. 실제로 대처나 레이건 시절 영국의 노동당과 미국의 민주당은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보수의 전략이 먹힌 것은 아무래도 기존 복지국가 모델이 많은 문제를 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정치 전략으로 보면, 애국주의의 동원이 주효했다. 대처가 만약 포클랜드 전쟁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그의 장기집권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레이건에게는 실패한 암살기도가 호재였다. 반공을 명분으로 인구 11만 명에 불과한 카리브해(海)의 조그만 나라 그라나다를 침공했다. '스타워즈'도 추진했다. 아들 부시에게 9.11 테러가 없었다면 2006년까지 그가 누린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본질은 부자사회(plutocracy)다. 부자는 돈 때문에 즐겁고, 빈자는 돈 때문에 힘들다. 헌데 부자에게 퍼주다 보니 국가재정이 파탄난다. 엄청난 재정적자가 불가피하다. 피할 수 없는 약점이다. 미국은 기축 통화의 나라라는 이점으로 버텼다. 영국은 공기업 민영화와 북해 석유 개발로 풀었다. 고세훈의 설명이다.

 

대처가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그렇게 혹독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해석유가 주는 횡재(약 1000억 파운드)와 더불어 방대한 국유재산 매각(900억 파운드)을 통해 얻은 재정적 지원의 덕이 컸다.

 

MB의 중도실용·친서민, 과연 어디까지 갈까

 

이제, 이런 질문을 던질 때다. 과연 MB에게 대처와 레이건이 누린 이점이 허락될 수 있을까? 이것은 곧 '중도실용·친서민'의 운신폭에 대한 타산이기도 하다. 애국주의를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 변수를 활용하기 어렵게 됐다. 북한이 유화적으로 바뀌었다. 오바마 정부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새로 등장한 일본의 하토야마 정권도 대북 강경노선이 아니다.

 

한편, 사회적 역관계는 여권에게 유리하다. 시민단체 등 개혁·진보 진영은 많이 위축됐다. 특히 무력한 야권의 존재는 더할 나위 없는 이점이다. 이런 와중에 변수가 생겨났다. 지난 22일 3개 공무원 노조가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을 의결했다. 조합원 11만 명의 거대노조의 가입으로 민주노총은 활력을 얻었다. 반대로 정부는 급해졌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주문한 그대로, 개혁이란 명분하에 '노조 죽이기'에 나설 필요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어쨌든 MB 정부와 노동 간의 대결, 그리고 이 싸움에서 민주당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MB 정부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MB를 힘들게 할 또 하나의 난제는 비용 문제다. 무릇 정책은 돈이다. 당연히 '친서민'도 돈이 든다. 들어도 많이 든다. "감세정책으로 들어올 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친서민 노선의 정부 지출을 크게 늘리면 재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영선 연구원의 말이다.

 

이전 점에서 공기업 민영화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대처가 그랬듯, 부자 감세로 구멍 뚫린 재정을 민영화로 메우려 시도할 것이다. "자산이 30-40조 원에 이르는 네트워크 산업(전기, 철도, 수도, 가스, 우편 등)을 민영화할 경우 1년에 하나씩만 팔아도 한 해 재정적자분은 메울 수 있다." 정태인의 설명이다.

 

민영화는 민주노총 산하 14만 명이 넘는 공공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온다. 게다가 공기업 민영화는 대기업에게 주어지는 수익 덩어리다. 사회공공연구소 오건호의 분석에 따르면, 무상의료보험을 실시하려면 13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이 중에서 노동자와 사용자(기업)의 몫은 각각 5조원이고, 정부의 몫은 2조원이다. 기왕에 기업이 원한 규제완화를 대부분 들어준 마당이니, 민영화를 수단으로 기업의 추가 부담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무상의료보험을 MB가 전격 도입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논리적 가능성과 현실적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다.

 

용산 참사 해결은 어떨까? 우선 정운찬 총리 내정자가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는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총리가 되면 다른 것보다 용산 참사 유족 분들을 한번 만나 위로하고 실상을 파악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말 적극적으로 풀도록 노력하겠다"는 결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곧이곧대로만 들으면, 금방 뭔가 할 태세다.

 

MB 정권은 무애(无涯)정권이 아니다

 

정운찬이 총리로서 나서도 용산철거민살인진압대책위원회의 주장을 정부가 100% 다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부분 해결을 시도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국민의 눈에 정부가 양보하고, 해결에 나서는 모양새로 비치게 하는 그림을 만들려 할 것이다. 떠밀려서 하는 구도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유혹을 느낄 만하다. 그렇게 하면 지지율 상승세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어쩌면 정운찬이 총리로 취임한 후 첫 작품으로 용산참사 해결을 시도할 수도 있겠다 싶다.

 

자칭 국보라고 하던 인물이 양주동이다. 그의 호가 무애(无涯)다. 없을 무(无)에, 끝 애(涯)다. 끝이 없다는 뜻이다. 스스로 부추기는 이런 촌티는 웃어주면 된다. 하지만 MB 정권을 무애정권이라고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MB가 아무리 본데없다고 해도 정권의 기본 정체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자감세를 포기하지 않는 데서 보듯, 정책레버리지에 한계가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개혁·진보 진영, 너무 움츠릴 필요 없다.


태그:#이명박, #중도실용, #친서민, #신자유주의, #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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