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정운찬 후보자가 거듭 세종시 건설사업의 원안이 비효율적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국회 총리 후보자 청문회 자리에서다. 

그는 "행정부처가 두 군데로 떨어져 있으면 장관모임, 차관모임 등 여러 가지 모임을 할 때 많은 인력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며 "독일은 본과 베를린으로 행정이 나뉘어져 있어 혼란과 비효율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제가 그 지역 사람이니 오히려 용감하게 이 문제를 '원안대로 하자, 하지 말자' '수정하자, 하지 말자'는 이런 얘기보다 자족도시 부분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니 (다시) 논의하자는 뜻으로 운을 띄운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세종시 관련 발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 마디로 정 후보자는 '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너무 쉽게 무너뜨렸다. 기자 또한 경제학자답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을 놓고 공공기관이전효과와 건설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보았더니 서울에 남아 있는 것보다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지 않더라'는 정도의 분석이 뒤따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이유라는 게 고작 여러 가지 모임을 할 때 많은 인력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란다. 행정수도가 관습법상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결 근거보다 허술한 논리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처방은 간단하다. 9부2처2청에 국한하지 말고 통일·외교·국방·법무·행정자치·여성 부처까지 모두 세종시로 옮기면 될 일이다. 서울에 남기로 한 재경부의 산하기관인 금융감독위(금감원 포함)와 감사원까지 옮긴다면 한 자리 앉아 모두 회의를 할 수 있으니 경제효율성은 그만큼 커진다. 헌법재판소가 관습법상 행정수도를 옮기면 안 된다고 했으니 관행적으로 시민들과 소통이 꽉 막혀 있는 청와대와 국회, 헌재는 서울에 남겨두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 후보자는 '정부행정기관이 모두 서울에 있을 때' 외에 '정부행정기관이 모두 지방으로 이전했을 경우'에 대해서는 경제적으로 연구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연구 대상이 두 군데로 떨어져 있으면 여러 가지 자료를 구할 때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때문에 본과 베를린으로 행정이 나뉘어져 있는 독일은 판단자료에 들어있지만 행정수도를 통째로 푸트라자야로 옮겨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말레이시아 사례는 빼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정 후보자가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89년 국토 균형발전과 균등한 지역발전을 위해 8청 1소속기관 1공기업을 대전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일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 통계청, 병무청, 조달청, 관세청, 산림청, 중소기업청, 문화재청 등이 대전정부청사에서 10년 넘게 행정업무를 보고 있다. 학자시절 중소기업청이 대전에 있어 경제관련 연구 자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일까?

궁금하다. 정 후보자는 왜 그동안에는 8개 청이 대전에 있어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나? 정말  문화재청이 정부대전청사로 이전하는 바람에 '숭례문'이 불탔고, 때문에 복원 또한 비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대선당시 범 여권 대선후보로 오르내리는 와중에도 정 후보자는 참여정부의 핵심 사업인 '행정도시 이전'에 대해 아무런 비판적 언급이 없었다. 적어도 수긍했다는 얘기다.

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정운영의 철학과 방향에 '어느 날 갑자기' 동조하게 된 배경을 캐내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정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면접시험 또한 쟁점은 세종시 건설과 4대 강 정비 등에 대한 견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후보자는 고심 끝에 세종시 원안추진에 대해서는 '부정론'을, 4대 강 정비에 대해서는 '긍정론'을 제기해 청와대 면접을 단숨에 통과했다. 감세 정책 등 현 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에 대해서도 대부분 '수긍'하거나 '용인'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세종시 수정 발언으로 충청권 민심을 들끓게 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양승조, 이상민, 이시종 의원과 행정도시무산음모저지 충청권비상대책위원회가 2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인준 거부를 요구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 발언으로 충청권 민심을 들끓게 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양승조, 이상민, 이시종 의원과 행정도시무산음모저지 충청권비상대책위원회가 2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인준 거부를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청와대는 세종시 논란에 대해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정 후보자에게 사전 제시한 세종시 모범답안을 유추해 보기는 어렵지 않다. 마침 자유선진당 이회창 후보의 증언도 있다. 이 총재는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국무총리 입각 교섭 과정에서 청와대가 세종시의 원안 추진 조건에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말하고 있다. 정 총리 후보자가 이명박 대통령과 잘 안맞다는 '궁합'을 단숨에 맞춘 배경에 모범답안을 놓고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충청권 시민들의 눈 흘김은 이 때문이다.

정 후보자는 청문회 과정에서 "(세종시가) 자족도시 부분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니 (다시) 논의하자는 뜻으로 운을 띄운 것"이라고 답했다. 맞다. 세종시가 자족도시를 갖출 수 있을 지 여부가 핵심이다. 하지만 자족도시를 염려한다면 정 후보자의 접근법은 틀렸다.

정부기관이 원안대로 이전해도 자족도시를 갖출 수 없으니 다시 논의하자는 것은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에게 '고기 맛을 보게 되면 입맛을 버릴 수 있으니 먹던 대로 먹으라'는 얘기와 같다.        

제대로 된 접근법이라면 그동안 먹던 음식으로는 영양이 부족하니 골고루 더 먹으라고 권했어야 옳다.

'정부기관이 원안대로 이전하고 여기에 다른 부가 기능을 얹어야 자족기능을 갖출 수 있다'는 답안은 충청민을 비롯 지방민들의 원하는 답안이다.

정 후보자는 청와대 면접관이 제시한 답안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학 박사답게 고향 사람들과 지방민들에게 배척받더라도 청와대에게 칭찬받는 편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셈법인 듯하다.


태그:#정운찬 , #세종시, #청문회, #효율성, #행정수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