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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주 경합 제3라운드의 결승전에 진출한 유신(엄태웅 분)과 비담(김남길 분).
 풍월주 경합 제3라운드의 결승전에 진출한 유신(엄태웅 분)과 비담(김남길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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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제15세 풍월주(대표 화랑) 선발전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제3라운드인 검술 심사의 결승전에서 유신(엄태웅 분)과 비담(김남길 분)의 시합이 '이상하게' 질질 끄는 양상을 보이자 '이미 1승을 확보한 유신에게 1승을 보태주려는 승부조작이 아닌가?'라고 의심한 칠숙(안길강 분)이 '타임'을 걸고 나오는 바람에 결승전이 잠시 중단되고 말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드라마 속의 풍월주 경합에서는 관찰력(제1단계), 지식(제2단계), 검술(제3단계)이 핵심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서는 후보들의 외모 역시 무시 못할 기준으로 작용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준수한 외모를 가진 배우들이 드라마 <선덕여왕>의 화랑 역을 맡는 데에는 크게 2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최근의 '꽃미남' 혹은 '꽃남' 열풍을 드라마가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어느 시대든지 간에 화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는 기본적으로 배우의 얼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다. 왜냐하면, 화랑(花郞)이란 말 자체가 꽃미남 혹은 꽃남으로 번역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라의 화랑들, 그중에서도 '화랑 중의 화랑'인 풍월주들 가운데 드라마 속의 배우들처럼 정말로 꽃미남이었던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그 꽃미남 풍월주들 중에서도 누가 최고의 꽃미남이었을까? 이 점을 살펴보기 위해, 드라마 <선덕여왕>이 핵심 준거로 활용하고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를 열어보기로 하겠다.

서기 540년부터 681년까지 재임한 역대 풍월주 32명의 외모에 관한 <화랑세기>의 묘사를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아래 내용은, 풍월주들의 특성을 요약한 부분 가운데에서 외모에 관한 표현만 따로 발췌한 것이다.

<화랑세기>의 각 편에 소개된 풍월주들의 외모.
 <화랑세기>의 각 편에 소개된 풍월주들의 외모.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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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 풍월주는 몇 명이었으며 그중에서 누가 최고의 꽃미남이었는지를 가리기에 앞서, 위의 표에서 얻을 수 있는 세 가지의 흥미로운 사실을 먼저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첫째, 전반기(제1세~제16세) 풍월주들의 경우에는 외모에 관한 묘사가 꽤 많은 데에 비해, 후반기(제17세~제32세) 풍월주들의 경우에는 그에 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는 점이다. 해당 풍월주의 외모가 준수한 경우에만 그 외모를 소개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외모에 관한 묘사가 없다는 것은 해당 풍월주의 외모가 '별로'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전반기 풍월주들의 외모가 상대적으로 더 나은 것은, 이 시기에는 나이 어린 10대들을 중심으로 조직이 구성된 탓에 후천적 요인(정치력·업무능력 등)보다는 선천적 요인(신분·외모 등)이 조직 안에서의 출세에 더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후반기로 갈수록 조직이 복잡해지고 현실 정치와 깊이 연루되다 보니 풍월주들의 나이도 훨씬 더 많아지고, 또 그러다 보니 선천적 요인보다는 후천적 요인들이 출세에 더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제8세 풍월주인 문노 이후로 풍월주의 외모에 관한 묘사가 뜸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쳇말로 하면, 문노 이후로 풍월주들의 '물'이 안 좋아진 셈이다. 문노 이후로 화랑도 조직 안에서 외모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노 시대에 화랑도의 제도가 정비된 점, 문노가 검술과 화랑도 정신을 중시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에, 문노 이후로 조직운용 능력이나 검술·정신 등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외모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이른 바 '미실의 남자들'의 외모에서 공통분모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제5세~제7세 풍월주인 사다함·세종·설원의 외모에서 공통적인 것은 다들 한결같이 풍채가 좋았다는 점이다. 특히 남편인 세종의 경우에는 단아하면서도 풍채가 아름다웠다고 했다.

이는 미실의 남자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실은 얼굴이 잘 생긴 남자보다는 풍채가 좋은 남자, 다시 말하면 전체적인 느낌이 좋은 남자를 더 선호했던 것이다.

다시 본래의 논의로 돌아가서, 풍월주들 중에서 몇 명이나 꽃미남이었으며 그중에서 누가 '미스터 화랑' 혹은 '미스터 풍월주'였는지를 가려보기로 한다.

표에 따르면, 외모에 관한 기록이 남은 풍월주는 전체 32명 가운데에서 총 15명이다. 전반기에 10명, 후반기에 5명이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외모에 관한 기록이 남았다는 것은 해당 풍월주의 외모가 꽤 준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32명 가운데에 15명의 외모가 준수했다면, 풍월주들의 절반가량은 꽃미남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화랑도 조직 안에서 얼굴이 상당히 중시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관공서나 학교에 걸린 역대 단체장이나 교장·총장들의 사진을 둘러보면서 '이 중의 절반은 꽃미남이구나'라는 느낌을 갖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역대 풍월주들의 경우에는 그중 절반이 꽃미남이었으니, 화랑도 조직 안에서 얼굴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노 이후로 외모의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풍월주 중에서 꽃미남의 비율은 훨씬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럼, 15명의 꽃미남 풍월주들 중에서도 누가 최고의 꽃미남이었을까? 이를 가리기 위해 <화랑세기>의 표현을 좀 더 세밀하게 검토해 보기로 한다.

꽃미남 풍월주 15명의 외모에 관한 기록을 읽다 보면, 우리는 크게 4가지의 인상적인 표현에 접하게 된다. 첫째는 옥(제1세·제4세·제16세·제18세), 둘째는 꽃(제4세·제24세), 셋째는 풍채(제5세·제6세·제7세·제17세·제26세), 넷째는 태양(제15세)이다.

그런데 제15세 풍월주인 유신의 외모가 "태양과 같았다"는 표현은 그의 얼굴이 잘 생겼다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풍모가 태양처럼 빛났다는 뜻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태양'을 '풍채'에 포함시켜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라인들이 남자의 외모를 평가할 때에 사용한 표현 중에서 옥·꽃·풍채라는 요소가 가장 중요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옥·꽃·풍채 중에서 풍채는 얼굴보다는 몸 전체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꽃미남을 가리는 데에 사용된 표현은 옥과 꽃 두 가지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옥과 꽃 중에서는 어느 쪽이 더 중요했을까?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고대 동아시아인들에게 옥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중요했다는 점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 이후로 옥은 중국에서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적으로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예를 들어, 하나라 수도였던 은허에서 발굴된 하나라 왕후의 무덤에서 755개의 옥기(玉器)가 발견된 사실은 옥이 고대 동아시아에서 가진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꽃보다는 옥이 상대적으로 더 좋은 표현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우리는 '얼굴이 옥과 같았다'라는 평가를 받은 네 명의 풍월주에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제1세 위화, 제4세 이화, 제16세 보종, 제18세 김춘추가 바로 그 '최후의 4인'이다. 이들 중에서 보종과 김춘추는 현재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얼굴이 옥과 같았다'는 평가를 받은 네 명 중에서 제4세 이화의 경우에는 얼굴이 옥과 같았다는 게 아니라 피부가 옥과 같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얼굴 전체가 옥과 같았다는 평가를 받은 위화·보종·춘추가 '최후의 3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 명을 놓고 굳이 순위를 매긴다면, 아무래도 제1세 풍월주인 위화에게 시선이 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얼굴이 백옥 같았을 뿐만 아니라 입술은 붉은 연지 같고 눈동자는 맑고 이는 하얗다'라는 화려한 평가를 받은 위화가 최고의 꽃미남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꽃미남 풍월주' 위화에 관한 <화랑세기>의 묘사는, 수많은 사랑 노래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솔로몬의 사랑 노래 즉 성경 아가서의 시를 연상케 한다. 아가서 제4장에서 솔로몬은 자신의 연인을 두고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라면서 '네 눈은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염소 같고 네 입술은 홍색 실 같으며 네 뺨은 석류 한쪽 같다'고 한 뒤에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라며 정말로 대단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만약 위화의 연인도 솔로몬 같은 시인이었다면, 그 역시 위화의 얼굴을 이처럼 아름답게 묘사하지 않았을까. 같은 남자가 평가했기 때문에 '고작' 얼굴은 백옥 같고 입술은 붉은 연지 같고 눈동자는 맑고 이는 하얗다 하는 정도의 평가밖에 받지 못한 게 아닐까. 이처럼 적어도 기록에 의거할 때에는, 초대 풍월주인 위화가 신라 최고의 꽃미남 풍월주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선덕여왕, #풍월주, #화랑, #꽃미남, #꽃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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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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