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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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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주를 선발하기 위한 최종 라운드인 무술 결승전에 유신(엄태웅 분)과 비담(김남길 분)이 올라간 가운데, 그간 언론에서 '선덕여왕의 최종병기'라고 집중 조명해온 김춘추(유승호 분)가 드디어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했다.

15일에 방영된 <선덕여왕> 제34부에서 첫 선을 보인 김춘추는 시작부터 아주 '까탈스럽게' 등장했다. '국제 감각을 갖춘 외교의 귀재'라는 이미지의 걸맞게 선진국 수나라에서 '중국 조기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말은 무서워서 못 타겠다'느니 '가마는 멀미가 나서 못 타겠다'느니 하며 측근들을 피곤하게 만들다가 결국에는 아무도 몰래 혼자서 왕경에 입성했다.

'선덕-춘추-유신' 삼각편대 등장과 3가지 의미  

이로써 훗날 외교와 군사 방면에서 선덕여왕의 양팔이 될 김춘추와 김유신이 모두 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하게 되었다. 선덕-춘추-유신이라는 삼각편대의 틀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선덕-춘추-유신 삼각편대의 등장은 한국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 차원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의 등장은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한국사와 동아시아사에 크게 3가지의 역사적 의의를 던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첫째, 이들의 등장은, 한민족의 삼국 중 최약체였던 신라가 강대국인 고구려·백제를 꺾고 대동강 이남을 통합하게 된 역사적 이변의 서곡이었다.

둘째, 이들의 등장은, 서북쪽 유목민족들의 중국 침략으로 동아시아가 일대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요동(만주)을 통일하고 중원을 위협하던 고구려의 뒷덜미를 잡아줌으로써 중국측의 숨통을 틔워주는 데에 기여한 역사적 사건의 서곡이었다.

셋째, 이들의 등장은, 종래 요동의 그늘에 가려 동아시아의 변방에 머물렀던 한반도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한 축으로 떠오르게 되는 역사적 과정의 서곡이었다. 1392년 건국 이후의 조선, 918년 건국 이후의 고려,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의 신라가 한반도 같은 좁은 땅을 거점으로 동아시아의 한 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선덕-춘추-유신 시대의 활약으로부터 일정 정도 힘입은 바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세 가지 점들을 고려해보면, 이 삼각편대의 등장은 신라 입장에서는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겠지만, 한민족 전체의 입장에서는 손해가 된 측면도 있고 이익이 된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손해가 된 측면이란 당나라-고구려 대결에서 당나라 쪽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이후 한민족이 차·포를 떼고 중국과 '장기'를 둬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음을 가리키고, 이익이 된 측면이란 한반도 특히 대동강 이남이 지리적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핵심지역 중 하나로 부각될 수 있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선덕-춘추-유신 삼각편대의 등장은 위와 같이 한국사나 동아시아사에 끼친 역사적 의의와 관련해서만 중요성을 띠는 게 아니었다. 등장 시점과 출신성분이라는 측면에서도 이들의 등장에는 눈여겨볼 만한 대목들이 있다.

등장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 선덕-춘추-유신은 신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 출현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 3인조가 등장한 7세기 초반은, 4세기 이래의 5호 16국 시대와 남북조의 분열을 극복하고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가 사방을 향해 대외팽창을 시도함에 따라 동아시아 전체적으로 지각변동이 발생하던 때였다.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신라는 그나마 '이중고'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수나라·당나라의 팍스 시니카(중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항한 고구려-돌궐-백제-일본 연대에서마저 신라는 소외되고 만 것이다. 수나라·당나라라는 슈퍼파워의 출현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나마 슈퍼파워에 대항하는 연대에마저 끼지 못했던 것이다.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는 고통(국제질서의 급변)과 적들에 둘러싸인 고통(고구려 주도 연대와의 대결)을 동시에 겪게 되었으니, 신라 입장에서는 발아래의 땅도 내려다보아야 하고 주변도 동시에 경계해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 처한 셈이다.

북쪽의 고구려, 서쪽의 백제, 동쪽의 일본에 둘러싸인 신라의 위기감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국제질서의 격변 와중에 웬만한 나라들은 강대국에 의해 쉽게 멸망하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 신라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를 들어야 할 정도로 위태로웠다.

진평왕 집권 후반기인 서기 602년부터 신라가 고구려·백제의 일상적인 침공에 시달린 것은 신라가 처한 그 같은 위기를 잘 반영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출현한 것이 바로 선덕-춘추-유신의 삼각편대였다. 이것은 위기에 처한 신라가 살아남기 위해 내놓은 '극약처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낯선 카드가 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을까

그런데 우리는 신라가 위기극복을 위해 내놓은 선덕-춘추-유신 카드가 기존의 신라사회에서는 상당히 낯선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그들의 출신성분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의 출신성분에서 공통적인 것은 세 사람 모두 다 일종의 '마이너 리거'였다는 점이다.

우선, 선덕여왕은 종래의 신라 정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최초의 여성 국왕이었다. 공주의 신분을 갖고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남성 위주의 신라 정치질서 속에서 그는 정치적으로 소외된 계층인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드라마 <선덕여왕> 속의 미실을 보면서 '신라에서는 여성의 정치적 지위가 꽤 높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품을 수도 있지만, 필사본 <화랑세기>에 나타난 미실의 정치적 활약상은 분명히 드라마보다는 몇 단계 아래였다. 

다음으로, 김춘추는 정치적으로 소외된 왕족의 일원이었다. 그는 579년에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였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의 기록이 제각각이라서 그의 아버지가 김용수인지 김용춘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폐주 진지왕의 손자인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다. 거기에다가 어머니인 천명공주 역시 덕만공주에게 밀려 왕궁을 떠난 몸이기 때문에, 김춘추는 부계로 보나 모계로 보나 분명히 정치적으로 소외된 왕족이었다. 

마지막으로, 김유신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치적으로 소외된 가야 출신의 일원이었다. 물론 어머니인 만명부인을 기준으로 하면 진골정통의 왕비족이지만, 아버지인 김서현을 기준으로 하면 그는 가야출신의 비주류 귀족에 불과한 인물이었다.

신라의 정치질서는 남성 위주로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정치활동에서는 왕비족이라는 요소보다는 가야 출신이라는 요소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 풍월주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신라판 '인간극장'에 충분히 출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처럼 한결같이 '마이너 리거'들에 불과했던 선덕(소외된 성별), 춘추(소외된 왕족), 유신(소외된 귀족)이 신라의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시대가 동아시아 전체적으로 위기감이 감돌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이들의 정치적 성공은 훨씬 더 큰 장애에 직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상황 속에서 개인의 능력이 이전보다 더 강조되던 시대 분위기 덕분에, 이들은 비주류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신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선덕-춘추-유신의 등장에서 잘 나타나는 바와 같이, 미증유의 위기에 처한 서기 7세기의 신라인들은 기존의 '대표팀'을 전면적으로 물갈이하고 비주류들을 과감히 기용하는 혁신적인 '세대교체'를 통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 점은 당시의 고구려·백제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위기상황 앞에서 과거의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에 믿음을 걸었다는 점에서만큼은, 당시의 신라가 고구려·백제보다 앞섰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7세기의 신라인들은 '삽질' 수준에 머무는 기존의 '대표팀'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거두고,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정치실험을 단행했던 것이다. 

마이너 리거들의 동맹인 선덕-춘추-유신 삼각편대의 등장이 현대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이것이다. 그것은 한국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치경제적 과제를 성취하려면, 기존 기득권층의 권력독점을 과감히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대표팀'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기존의 '대표팀'과 기존의 기득권층으로는 도저히 나라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진 이상, 한국 역시 이제는 과감히 새로운 정치실험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선덕-춘추-유신의 등장으로부터 우리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태그:#선덕여왕, #덕만, #김춘추,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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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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