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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고민했다. 흠…, 뭐 딱 들어맞는 말이 없을까. 끙끙댔다. 그러나 도무지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과거로 나아가자'는 민주당

 

그러던 차였다. '지질하다', 문득 이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뜻이 두 개다. "보잘 것 없고, 변변하지 못하다." 정말 하는 짓이 보잘 것 없고, 변변치 않은가. "싫증이 날 만큼 지루하다." 그 얼굴 여전하고, 그 정책 그대로다. 보기 딱할 정도로 변화가 없다. 지루하고, 또 지루하다.

 

애물단지 민주당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반문할 수 있다. 정당 지지율이 12~13%에서 20%대 초반으로 올랐는데, 무슨 희떠운 소리냐.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위태한 켯속이 보인다.

 

우선,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호남을 제외하면 민주당 지지도는 10%대에 불과하다. 호남 외에 수도권 등 전지역에서 열세다. 20%대 초반의 지지율이란 것도 김대중-노무현 전대통령 서거로 인해 얻은 반사이익일 뿐이다. 개혁세력의 중심이던 두 전직 대통령도 없다. 시간도 얼마 없다. 친노 신당이 가시화되고 있다. 불임성은 여전하다. 사회적 기반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뭔가 바꿔보자는 당내 운동(movement)도 없다.

 

반면, MB와 여권은 상승세다. 지지율도 오르고, 사람도 넘친다. 한길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9월 현재 MB 지지율이 53.8%다. 같이 서면 어색해 보이는 사람까지도 끌어들였다. 운 좋게 남북관계도 나아지고 있다. 아직 어설프지만 경제지표도 청신호를 켜고 있다. MB의 운신 폭은 넓어지고, 민주당은 좁아지고 있다. 결국 민주당은 오롯이 위기다.

 

위기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바로 위기의식이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그렇다. 반성의 담론은 넘치나 행위는 없다. 지금 민주당은 한가하다. 고즈넉하고, 평온하다. 저 당이 과연 2004년 17대 총선 승리 이후 숱한 재·보궐 선거와 지방선거,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한 정당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런 정도의 맷집과 무감각이면 동서를 통틀어 단연 최고일 것이다. 아무리 떠들어도 요지부동이다. MB가 마이동풍이라면, 민주당은 우이독경이다.

 

민주당은 지난 16대 대선에서 48.9% 득표했다. 17대 총선에서 152석의 의석에, 비례대표 기준으로 38.3% 득표를 기록했다. 하지만 17대 대선에서는 26.0% 득표하는 데 그쳤다. 22.9% 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거의 반 토막 난 것이다. 총선 득표율은 18대에서 25.2%로 떨어졌다. 13% 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이뿐인가. 2002년 8월 이후 민주당은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연전연패하다가 2009년 4월 근 7년만에 처음 이겼다. 중간에 있었던 지방선거까지 합치면 무려 40 대 0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어떤 요지경인지 그 인물 그대로다. 과거 당의 얼굴과 원내사령탑까지 지낸 사람이 여전히 당대표다. 당의 공식 후보를 부정하고 현재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는 이에게 달려간 사람이 최고위원이다. 수도권 집값 상승을 방치한 인물도 최고위원이요, 지방선거 패배 후 '우리는 정치적으로 사망했다'고 선언했던 분도 버젓이 최고위원이다. 모두 살아 있다. 당에서 공천을 배제했던  분도 정책위의장에 앉혔다. '미래로 돌아간다'(back to the future)는 말에 비유하자면, '과거로 나아가자'(forward to the past)는 꼴이다. 이게 뭔가.

 

김유신과 김춘추가 삼국통일을 이룬 이유는?

 

1979년 영국의 노동당은 총선에서 패배했다. 야당으로 밀려났다. 곧 다시 정권을 되찾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집권한 것은 무려 18년이 지난 뒤였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몰린 탓도 있었지만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IMF를 초래한 무능집단으로, 지지층에게 희생을 강요한 배신세력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런 정당이 변화를 모색하지 않자 대중은 외면으로 응답했다.

 

1980년 미국의 민주당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레이건을 앞세운 보수 세력의 거침없는 진군에 민주당과 진보 세력은 움츠려들었다. 자기들끼리 따따부따 하느라 세월을 허송하고, 왈가왈부 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그 사이 어렵게 구축한 뉴딜체제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민주당은 12년이란 비싼 대가를 치른 끝에야 어렵게 다시 정권을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제 정신 못 차리는 정당에게 국민은 언제나 매몰차다.

 

김유신과 김춘추, 이 양김(兩金)은 역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 통일국가를 건설했다. 고구려, 백제와 경합하는 가운데 신라는 가장 약한 나라였다. 그런 신라가 어떻게 승자가 됐을까? 역사가 이덕일은 두 가지를 꼽는다. 양김이 통일 아젠다를 제기하고, 신라의 지도층이 그에 걸맞는 자기희생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김은 신라사회에서 비주류였다. 비주류에게는 숙명이 있다. 그냥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존재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주류에게 변화는 당위가 된다. 실제로 양김은 익숙한 생각을 털어내고 과감하게 발상했다. 삼국 통일을 기획하고, 시도한 것이다. 관창(官昌)의 예가 말해주듯, 신라는 전쟁터에서 먼저 희생하는 헌신을 통해 열세를 극복해냈다. 그런 그들에게 역사의 신이 통일을 허락한 것이다.

 

정치는 무엇을 드러내고,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싸움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은 젬병이다. 자신들만의 아젠다가 없다. 끌려 다니기 바쁘다. 무조건 반대하기 바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여권이 그 반대를 수용해 버리면 말문이 막혀버린다. "이명박 정부를 악으로 규정하면 기대 수준을 너무 낮춰 조금만 잘 하더라도 평가를 크게 높여버릴 수 있다." 최장집의 이 말은 전적으로 옳다.

 

민주당에게는 자기희생도 없다. 기묘하게도 실패의 주역과 반성 또는 재건의 주역을 자처하고 있다. 물론 반성이나 재건도 말뿐이다. 최근에는 지난 총선에서 낙선했던 리더들이 지역구를 바꾸는 편법으로 복귀했거나, 하려고 한다. 새 피를 수혈하기는커녕 흘러간 물만 밀려들고, OB(old boy)들만 달려들고 있다. 이런 걸 사투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야 도대체 뭐다냐?'

 

MB, 한나라당은 상승세다. 훨훨 날고 있다. 민주당은 바닥이다. 빡빡 기고 있다. 이쯤 되면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이제 접어야 하는 게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어떤 계산을 해봐도 다수연합(majority coalition)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대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은 쉽다. 모르면 어렵고, 알면 쉽다. 우선 세 가지를 권하고 싶다.

 

민주당이 생각해야 할 세 가지

 

민주당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선 한나라당과의 차이를 어떻게 선명하게 드러내느냐 하는 것이다. 지역별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가 분절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정당체제의 이념적 거리가 작기 때문이다. 사르토리의 설명이다. 표의 지역적 분절성은 계층적 이해관계가 정당에 의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때 나타난다. 샤츠슈나이더의 분석이다. 그렇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손에 잡히게 제시해야 한다.

 

민주당이 생각해야 할 두 번째 것은 반대만으로 안 된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만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정당으로 조직된 대안들이 유권자에 앞서 존재한다." 립세과 로칸의 통찰이다. "진보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으면 반드시 보수화 경향이 나타난다." 최장집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반대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 대안을 통해 반대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세 번째 것은 노동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나 기업이 갖는 자원의 우위, 그들이 누리는 권력의 우위는 주어진 현실이다. 그 사회가 자본주의인 이상 이것은 불가피하다. 사회적 역관계에서 자본·노동에 비해 언제나 강자다. 따라서 사회적 역관계를 바꿔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 그래야 복지국가가 도입·정착될 수 있다. 민주당은 노동을 비롯해 경제적 약자, 사회적 열패자들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입법, 이른바 노동정치 혹은 복지정치에 집중해야 한다.

 

시인 신동엽이 일갈했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동학도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고 했다. 그런 다음에도 아직 못미더워서인지 이어서 다시 한 번 더 이렇게 외쳤다.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민주당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일락서산(日落-西山)이요, 일모도원(日暮途遠)이다. 길이 멀다. 서둘러야 할 것이다.


태그:#민주당, #MB, #정당 지지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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