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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맥거크 살인사건 특집을 마련한 데일리텔레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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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일리텔레그래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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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총에 맞아 살해됐다. 단 한 발로 성공한 것으로 보아 청부살인업자의 솜씨일 가능성이 높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아들.
언뜻 할리우드 갱영화 같다. 그러나 이는 지난 9월 3일 저녁, 시드니 바닷가의 소문난 부자동네 크레몬에서 발생한 실제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뉴스 파노라마의 서막에 불과했다.
수익률 225%의 고리대금업, 부동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부동산투기, 뇌물공여, 성(性)상납, 고급요트 섹스파티, 녹음테이프 비밀제작, 협박, 철재야구배트 폭력, 방화, 살인. 피살사건 뉴스에 등장한 섬뜩한 단어들이다.
살해된 사람은 부동산 개발업자 마이클 맥거크(45). 사건 발생 1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 호주 언론이 맥거크의 죽음을 주요하게 보도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죽음이 호주 고위층 부패고리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맥거크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어떤 삶을 살았기에. <데일리 텔레그레프>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호주 언론에 소개된 그의 삶을 살펴보자.
스코틀랜드 출신 불법체류자, 가짜 여권으로 새 삶 얻다
9월 3일, 살해사건이 발생한 직후 호주 언론은 일제히 그의 신원을 수백만 달러의 재산을 가진 부동산 개발업자, 마이클 맥거크라고 보도했다. 종종 언론에 스포츠를 즐겼고, 정계와 재계를 망라하는 두터운 인맥을 가진 중견사업가로 소개돼왔던 사람이다.
그러나 얼마 후 그가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인물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름과 생년월일조차 두 개를 가진 '더블 라이프'를 살았던 것. 진짜 이름은 믹 러시포드이고 나이도 45살이 아닌 51살이었다.
믹 러시포드는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20대 초반에 호주로 입국해 오랫동안 불법체류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시드니 시내의 조명가게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다가 이민성 직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피지와 뉴질랜드로 피신했다. 그 과정에서 러시포드는 여권브로커를 만나 가짜 여권을 만든 다음 영주권 비자를 획득했다. 마이클 맥거크의 탄생.
1993년, 호주로 다시 돌아온 러시포드, 아니 맥거크는 더 이상 스코틀랜드 빈민가 출신의 세일즈맨이 아니었다. 그는 뛰어난 세일즈 능력과 타고난 친화력으로 5성급 호텔에 조명기구를 납품하는 성과를 얻어 밑바닥 인생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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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맥거크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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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주국영 abc-TV 화면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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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는 거 별 거 아니군 "나는 돈 많은 부동산 개발업자"
새롭게 태어난 마이클 맥거크의 전성기는 호주의 부동산투기 열풍과 함께 찾아왔다. 호주 최대의 쇼핑센터그룹인 '웨스트필드'의 공동창업자 존 사운더스의 눈에 들어 개발담당 매니저로 발탁된 것. 그는 상류사회로의 진입을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었다.
<시드니모닝헤럴드>에 따르면, 맥거크를 고용한 사람들은 대부분 억만장자들이었고 그들의 주변에는 수많은 개발업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런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맥거크는 억만장자들이 손쉽게 돈을 벌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가 당시의 사업파트너였던 짐 바이런에 한 말은 이랬다.
"그들이 돈 버는 과정을 보니까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보였다, 좋게 말해서 부동산개발이었지, 알고 보면 불법이 난무하는 부동산투기였다. 오전 느지막한 시간에 시내 고급클럽에 모여든 억만장자들은 그들이 고용한 로비스트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먹잇감 사냥에 나섰다."
억만장자들이 합법적으로 고용하는 로비스트는 주로 전직 거물 정치인들이었다. 맥거크는 등록된 로비스트를 연결고리 삼아 개발업자와 정치인들 사이에 엄청난 불법로비가 횡행하고 뇌물이 건너가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일들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결국 그 바닥에 직접 뛰어들었다.
예상대로 그는 단기간에 큰돈을 벌었다. 때마침 보수정당(자유-국민 연립당) 소속의 존 하워드 정부의 무책임한 수수방관으로 부동산투기 광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거크는 400만 달러가 넘는 바닷가 맨션에 살면서 메르세데스 벤츠 S시리즈를 몰고 다녔다. 스코틀랜드 건달 출신이 어느 날 갑자기 부유층 동네로 진입한 것. 그의 네 자녀는 학비가 비싸기로 소문난 사립학교에 다녔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그 스스로는 스포츠 스타들과 어울려서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곤 했다.
추락하는 맥거크... 억만장자의 '은밀한 뒤처리'를 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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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츠자동차 아래 주검으로 누운 맥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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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드니모닝헤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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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호주 '부동산 광풍'의 막차를 탄 불운한 개발업자였다. 무려 28개의 회사를 만들어서 기사회생을 노렸지만, 결과적으로 그에게 돈을 빌려준 억만장자들한테만 좋은 일만 해준 꼴이 되곤 했다. 급기야 벤츠 자동차와 크레몬 맨션의 분할 납부금도 내지 못해 압류당할 위기에 몰렸다.
위기에 처한 매거크에게 손을 내민 것은 부동산 투기와 고리대금업으로 초호화판 생활을 하는 부자들과 부패한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의 성가신 일을 처리해 주면서 푼돈이나 받아쓰는 해결사로 고용한 것.
10대 시절 스코틀랜드에서 깡패생활을 했던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거친 일이 전부였다. 불량채권 해결사, 라이벌 사업가 협박하기, 상류사회에 콜걸을 공급하는 뚜쟁이, 심지어는 공개입찰에서 이긴 개발업자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사업가의 명함만 갖고 있었지 맥거크는 범죄조직의 행동대원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이런 맥거크의 '위험한 해결사 노릇'은 똑같은 방식으로 그에게 되돌아왔다. 물론, 죽음을 맡기 전에 '만일'을 위해 그가 했던 조치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자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비위나 부패 현장을 담은 테이프를 다량 제작한 것.
"부자들과 고위직의 부패비리, 내가 다 찍어뒀다"
1985년, 고급 콜걸 버지니아 파거가 호화판 요트에서 노동당 실력자였던 그래함 리처드슨, 그와 친밀한 기업인들 여럿과 어울려서 벌인 섹스파티 사건이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이는 일명 '러브보트 스캔들'로, 호주 정치사에 오점을 남긴 사건이기도 하다.
호주국영 abc-TV는 "새로운 러브 보트 스캔들인가"라는 코너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맥거크가 전세 낸 고급요트에도 콜걸을 대동한 부패한 정치인과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타고 있었다"며 "매거크는 신분노출을 꺼리는 기업인, 정치인, 스포츠 스타들을 상대로 은밀한 매춘사업을 주선하고, 자신이 설립한 스포츠 에이전시를 활용해 고급 콜걸에게 선불을 지불하고 나중에 수금했다"고 보도했다.
9월 15일자 <데일리텔레그래프>는 맥거크 피살사건 보도에 '러브보트 스캔들'의 주인공인 리처드슨 전 의원의 이름을 넣었다.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론 메디치의 로비스트가 바로 그였던 것.
맥거크는 리처드슨 전 의원과 메디치의 뇌물 공여 장면 등이 담긴 테이프를 들고 NSW주 국회의사당으로 가서 "이 테이프가 공개되면 적어도 두 명의 장관이 위험해진다, NSW주 노동당 정부는 끝장난다"고 말한 적도 있다.
또 부동산개발업자뿐 아니라 정치인들과의 대화도 비밀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14일자는 "그는 호텔 라운지,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성당 부속실과 의사당 카페까지 이용해서 녹음을 시도했다. 특히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세인트 메리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호주국영 abc-TV에 출연한 맥클레이몬트 기자는 "결과적으로 그 협박이 그의 명을 단축시켰다, 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맥거크가 자신들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안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게다가 상류사회의 절대 금기사항인 비밀녹음테이프 같은 블랙메일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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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거크의 장례식을 보도한 데일리텔레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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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일리텔레그래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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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빠'와 '호주 최악의 사업가'가 같은 인물이라니
9월 12일 아침, 호주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 중의 한 곳인 모스만의 한 가톨릭성당에서 맥거크의 장례식이 열렸다. 같은 날짜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조문객이 600여명이나 모여든 성당에서 아무도 '살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어서 "미사를 공동 집전한 사제들도 그가 훌륭한 아들, 아버지, 남편이었고 좋은 이웃이었다고 추모했다"면서 "성당에서 운영하는 가톨릭학교의 한 학부형은 맥거크가 연간 30만 호주달러(약 3억 원)의 학교발전 기부금을 조성한 사실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한편 9월 12일자 <데일리텔레그래프>는 "그는 최고의 아빠였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 맥거크의 최후를 목격한 아들 류크가 아버지의 영전에 바친 글을 소개했다.
"아빠는 내가 축구시합을 할 때마다 항상 사이드라인에서 큰소리로 응원했고, 누나가 뛴 농구코트에서도 가장 열심히 응원했다. 특히 우리가 잘 못할 때에도 잘 하도록 가르쳐주었을 뿐 나무라지 않았다" -류크
한편, 호주 언론은 이번 사건을 두고 호주 정계와 재계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로 연일 크게 보도하면서 사법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 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부패방지독립위원회(ICAC)의 수사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조사에 이어 9월 19일부터는 ICAC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아울러 의회차원의 조사와 로열 커미션(한국의 특별검사 제도와 비슷한 기구)의 구성도 예상된다. 또한 공무원 부패사건에 대한 끈질긴 추적조사로 정평이 난 호주 언론들도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한 TV채널에서 맥거크가 남긴 또 다른 녹음테이프를 근거로 호주 부동산개발업계의 비리를 폭로할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국민들은 '이 세상 최고의 아빠'가 '호주 최악의 사업가'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다. 자기 가족의 안온한 삶을 위해서 그악스럽게 더 많은 돈을 벌어야하는 아빠, 그는 철재야구방망이를 휘둘렀고 다른 사람의 가정에 불을 질렀다. 다음은 abc-TV <블랙퍼스트>의 공동 진행자 조 오브라인언의 클로징 코멘트다.
"9살짜리 아들 앞에서 총탄에 맞아 쓰러진 마이클 맥거크의 시체가 벤츠자동차 아래 누워있는 보도사진을 보면서 오직 돈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이 끔찍해졌다. 먹고 살만 한데도, 더 많은 돈을 벌어야 좋은 아빠가 되는 것처럼 오해하는 현대사회의 사업가들이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마이클 맥거크가 정말 최고의 아빠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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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니 하버 사이드의 부자 동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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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여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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