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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탄다. 오랜만이다. 지난 해 여름 속초에서 아바이 마을을 갈 때 갯배를 타고 난 뒤 처음이다. 나그네는 늘 배를 탈 때마다 하늘과 바다가 몸을 부비고 있는 수평선 저 사이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몹시 궁금했다.

 

저 수평선 속으로 들어가면 지도에 나와 있는 그런 땅이 아닌 만인이 꿈꾸는 희망의 땅, 신비의 그 땅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바다 한가운데 나그네가 물결 혹은 파도처럼 떠 있다는 것이 가슴 설레게 했다.

 

저만치 손을 내밀면 금세 한 손으로 꼬옥 쥐고 내 앞으로 끌어당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수평선이 아픈 사랑처럼 다가왔다 멀어지고, 멀어졌다 다가오곤 했다. 그 수평선을 입에 물고 고래등처럼 떠도는 작은 섬들이 내 어지러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곤 했다.   

 

저어기 하늘을 바다 삼아 노 젓는 갈매기도, 저어기 하늘 속으로 피어오르는 뭉개구름도, 저어기 쉴새없이 파도치는 짙푸른 바다도 들어갈 수 없는 수평선 속. 아무도 모르게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그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 세상에 들어가 이 고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해인(海印)을 구하고 싶었다.  

 

바다에 비친 삼라만상의 모습이 마치 도장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해서 부르는 해인. 그 해인을 들고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이 세상을 삼매(三昧, 번뇌를 없애고 우주의 모든 것을 깨닫는 경지)에 들게 하고 싶었다. 바다가 삼라만상을 도장 찍듯이, 이 세상에 있는 온갖 희노애락도 도장을 찍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도 품고 있는 바다가 나그네 마음을 비추다

 

8월 22일(토) 오후 4시쯤, 여수 백야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모래섬'이라 불리는 사도로 간다. 저만치 서쪽으로 기우는 해가 짙푸른 바다 위에 유리가루처럼 하얗게 흩뿌려 놓은 햇살이 눈멀게 반짝인다. 기우는 해를 붙잡으려는 듯 해를 따라 열심히 헤엄치고 있는 작은 섬들이 마치 이 세상을 힘겹게 헤엄치고 있는 나그네 모습처럼 안쓰럽다.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결코 지겹지 않은 바다. 나그네를 태운 배는 사도를 향해 시속 100km 이상으로 힘차게 달린다. 저만치 멀어지는 섬과 섬을 가로 막는 하얀 물보라, 물보라, 물보라...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가도 가도 자꾸만 나타나는 작은 섬을 휘돌아 화두처럼 달려오는 물결, 물결, 물결...

 

그 속에 나그네가 숨 가쁘게 달려오고 있다. 그래. 22일~23일까지 이틀 동안 이어지는 여수 팸투어에 오기 위해 오늘 하루도 얼마나 허우적거렸던가. 살가운 벗들과 어젯밤부터 이른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깜빡 잠이 드는 바람에 오전 10시 10분 김포-여수발 아시아나 비행기조차 놓치지 않았던가.

 

여수 팸투어 주최 측에서 다시 예약해 준 11시 김포-여수발 KAL 비행기도 자칫했으면 놓칠 뻔 했지 않았던가. 그래 놓고도 주최 측에서 여수공항에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고 혼자 얼마나 투덜거렸던가. 여수 박람회 홍보관에서 맛객 김용철, 임현철 등 팸투어 일행들과 만나서도 배가 고파 죽겠다고 호들갑은 또 얼마나 떨었던가.

 

사도로 가는 바다 위에 섬처럼 떠 있고 싶다

 

짙푸른 바다를 가르며 세차게 사도로 달려가는 당두호 선실에는 맛객 김용철 기자와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임현철 기자가 나란히 자리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있다. 이번 '2012 여수세계박람회 성공 개최를 위한 파워블로거 초청 팸투어'에 참가한 누리꾼들은 모두 24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나그네가 처음 만난 분들이지만 아는 사람도 제법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냈던 정운현 선생과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김훤주 기자도 나그네와 함께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이자 여수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오문수 선생은 짐이 한 보따리다.

 

배낭과 카메라 가방까지, 어깨에 메고 손에 든 모습이 참으로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얼굴은 사도로 환히 열린 뱃길처럼 밝다. 당두호에 탄 파워블로거들 대부분은 오늘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래 만난 벗처럼 살갑게 눈인사한다. 이 모두 여수 팸투어가 준 큰 선물이요, 사도로 가는 짙푸른 바다가 주는 또 하나의 은총 아니겠는가.

 

오늘 저녁 일정은 당두호가 사도에 닿으면 공룡발자국 화석 등 사도 관광부터 한다. 이어 저녁을 먹고, 사도 앞바다 모래밭에서 캠파이어를 한 뒤 한옥에서 민박하는 걸로 잡혀 있다. 하지만 나그네는 이대로 사도로 가는 바다 위에 섬처럼 떠 있고 싶다. 아니, 이 바다를 엉금엉금 기는 한 점 섬이 되고 싶다.

             

8개의 섬이 'ㄷ'자로 이어진다

 

사도는 여수에서 27㎞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섬이다. 동북쪽에는 화양면, 북서쪽으로는 고흥반도가 이마를 마주대고 있다. 사도는 바다 한가운데 모래로 쌓은 섬 같다 하여 모래 '사'(沙)와 호수 '호'(湖)를 써서 사호도(沙湖島)라 불렀다. 그 뒤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사도'로 바뀌었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사도는 1896년 돌산군이 생길 때 옥정면 낭도리에 속했다. 그 뒤 1914년에 화개면과 함께 화정면 사도리에 소속되어 지금에 이른다. 이 섬은 임진왜란 때 성주 배씨가 이곳을 지나다가 해초류가 많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다 싶어 이 섬에 내려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유인도가 되었다 한다.

 

이 섬에서 주로 나는 농산물은 보리와 땅콩, 고구마다. 해산물로는 멸치, 쥐치, 전복, 해삼, 청각, 톳 등이며, 미역·김 등은 양식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해마다 음력 2월 15일쯤이면 가까이 있는 추도와 사도 사이에 있는 바다가 쫘악 갈라지면서 섬과 섬을 이어주는 모세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것도 본도, 추도, 간도, 시루섬, 장사도, 나끝, 연목, 진대성 등 8개의 섬이 'ㄷ'자로 이어져 보는 이의 눈을 황홀케 한단다. 마을 사람들은 1년 중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이때 이곳에 나와 낙지와 해삼, 개불, 고둥 등을 줍는다. 사도에는 그밖에도 볼거리가 많다. 하지만 사도는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쓰기로 하고, 오늘은 사도로 가는 뱃길만 쓴다. 

 

 

사도로 가는 뱃머리에 서서 두 손을 입 주변에 대고 큰 소리로 작은 섬들을 부른다. 나그네 목소리가 그물이 되었을까. 작은 섬들이 나그네 목소리를 따라 줄줄이 엮여오는 듯하다. 그래. 세상이 뒤숭숭하고 마음이 뒤숭숭할 때는 사도로 가는 배를 타고 수평선을 입에 문 저 작은 섬들을 큰 소리로 불러보자. 섬이 내가 되고 내가 섬이 되는 순간 '해인'을 가지게 되리라.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논산천안고속도로-순천-여수-백야도-백야도 선착장-사도
*여수여객터미널에서 사도로 가는 배를 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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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도, #백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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