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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바람이 불고 있다
▲ 막걸리 막걸리 바람이 불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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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좋아하되 /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 막걸리는 / 아침에 한 병(한 되) 사면 /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 생각날 때만 마시니 /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 맥주는 /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 마누라는 /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 음식으로 /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 다만 이것뿐인데 /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 밥이나 마찬가지다 / 밥일 뿐만 아니라 / 즐거움을 더해주는 /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천상병 '막걸리' 모두

막걸리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넘어 지구촌 곳곳에 막걸리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대로 바람이 더욱 거세지면 프랑스와 유럽이 자랑하는 와인까지 막걸리 소용돌이 속에 빠뜨릴 기세다. 오죽했으면 우리나라 방송 3사가 앞 다투어 막걸리 특집을 다뤄 'TV가 막걸리에 빠졌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근데, 왜 갑자기 막걸리 타령인가. 21세기 들어 웰빙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탓도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막걸리는 죽은 술이 아니라 숨을 새록새록 쉬는 효모가 살아 있는 술이라는 점에 있다. 게다가 건강에도 아주 좋다. 피부미용은 물론 갈증 해소, 당뇨, 배뇨, 암 등 각종 성인병 예방 등에도 탁월하다.  

천상병 시인은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 밥이나 마찬가지"라 했다. 나그네가 어릴 때에도 "탁주 반 되는 밥 한 그릇"이라 하여 막걸리 두어 잔으로 끼니를 때우는 어르신들도 더러 있었다. 나그네 또한 막걸리를 참 좋아한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소주를 마시는 것 빼곤 늘 막걸리만 고집한다. 막걸리를 적당히 마신 다음 날 아침엔 몸이 가볍기 때문이다. 

이 집은 들머리 간판 아래 줄줄이 거꾸로 매달아 촛불을 밝혀 놓은 주전자가 눈에 띈다
▲ 막걸리 이 집은 들머리 간판 아래 줄줄이 거꾸로 매달아 촛불을 밝혀 놓은 주전자가 눈에 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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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천상병 시인이 쓴 막걸리란 시와 소야라는 분이 쓴 '술타령'이란 글이 참 재미있다
▲ 막걸리 저만치 천상병 시인이 쓴 막걸리란 시와 소야라는 분이 쓴 '술타령'이란 글이 참 재미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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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사 입을 돈 있으면 막걸리 사먹지"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

-소야 '술타령' 모두

지난 달 15일(토) 광복절 날 저녁 7시. 시인 효림 스님이 주지로 있는 성남 봉국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행자(시인) 누님과 함께 들렀던 한우물 유산균 생막걸리 전문점. 강남구 대치동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집은 들머리 간판 아래 줄줄이 거꾸로 매달아 촛불을 밝혀 놓은 주전자가 눈에 띤다.

한 가지 특징은 이 집은 저녁시간에 가면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대체 이 집 막걸리가 어떤 맛이기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행여 이 집에서 파는 막걸리가 나그네가 우리나라 막걸리 중 으뜸으로 치는 여수 개도 막걸리는 아닐까. 아니다. 이 집에서 파는 막걸리는 '부자 생술'이란 이름표가 붙은 경기도 화성에서 빚은 막걸리다.   

30여 분을 그렇게 밖에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을까. 스무 평 남짓한 실내 저만치 손님이 일어서자마자 종업원이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잽싸게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자리라도 해봐야 사람 서넛 앉을 수 있는 둥그런 나무탁자에 등받이가 없는 작고 동그란 의자뿐이다.          

밑반찬은 생김치와 파 소송 썰어 넣은 간장 한 종지, 간장에 담긴 양파뿐이다
▲ 막걸리 밑반찬은 생김치와 파 소송 썰어 넣은 간장 한 종지, 간장에 담긴 양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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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생술'을 주전자에 부은 뒤 양푼 잔에 한잔 가득 따라 한 모금 맛을 본다
▲ 막걸리 '부자 생술'을 주전자에 부은 뒤 양푼 잔에 한잔 가득 따라 한 모금 맛을 본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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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병에 든 유산균, 요구르트 100병과 맞먹는다

막걸리와 모듬전을 시킨 뒤 천천히 벽면을 둘러본다. 저만치 천상병 시인이 쓴 막걸리란 시와 소야라는 분이 쓴 '술타령'이란 글이 참 재미있다. 이 집 주인 도희자(64)씨에게 "영업을 한 지 얼마나 되느냐?"라고 묻자 "3~4년 된다"라고 짤막하게 대답한 뒤 또 막걸리 서너병과 주전자, 안주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맞은 편 손님에게 다가간다.

묻고 싶은 말이 있으면 들머리 왼편 벽에 붙어 있는 글을 참조하라는 투다. 그 벽면에는 "이것이 배상면 주가의 배혜정 누룩도가에서 자신 있게 만든 '부자 생술' 유산균 생막걸리다!"라는 글이 붙어 있다. 그 아래 "막걸리 한 병 유산균, 요구르트 100병 맞먹는다. 막걸리는 알콜 든 영양제?"라는 글도 재미있다.  

그렇게 1분쯤 지났을까. '부자 생술'이란 이름표가 붙은 생막걸리와 주전자, 모듬전이 탁자 위에 놓인다. 밑반찬은 생김치와 파 소송 썰어 넣은 간장 한 종지, 간장에 담긴 양파뿐이다. 이 집 모듬전에는 기름에 살짝 튀긴 두부, 녹두전, 호박전, 새송이버섯전, 고기완자, 생굴전 등이 담겨 있다.

'부자 생술'을 주전자에 부은 뒤 양푼 잔에 한잔 가득 따라 한 모금 맛을 본다. 흙맛이 살짝 감돌면서 달착지근하게 입에 달라붙는다. 하지만 이 집 막걸리는 톡 쏘는 신맛이 약해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서울 생막걸리'가 첫맛은 톡 쏘고, 뒷맛이 달착지근하다면 '부자 생술'은 첫 맛이 달착지근하고 뒷맛이 샘물처럼 깔끔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 모듬전에는 기름에 살짝 튀긴 두부, 녹두전, 호박전, 새송이버섯전, 고기완자, 생굴전 등이 담겨 있다
▲ 막걸리 이 집 모듬전에는 기름에 살짝 튀긴 두부, 녹두전, 호박전, 새송이버섯전, 고기완자, 생굴전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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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막걸리는 톡 쏘는 신맛이 약해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 막걸리 이 집 막걸리는 톡 쏘는 신맛이 약해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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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오면 누구나 막걸리에 중독된다   

"막걸리는 식이섬유 덩어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막걸리는 물이 80%, 식이섬유가 10% 안팎 들어 있다. 막걸리 한 사발에는 이른 바 식이음료와 같은 양과 비교해 100~1000배 이상 많은 식이섬유가 들어 있다. 식이섬유는 대장운동을 활발하게 해 변비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효과가 크다"-배상면주가연구소 정창민 박사

'부자 생술'에 곁들여 간장에 찍어 먹는 모듬전도 입에 넣으면 바삭거리는 게 고소하다. 가끔 집어먹는 생김치는 새콤달콤한 게 더욱 막걸리 맛을 부추기고, 간장에 담긴 양파는 텁텁한 입 속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손님이 너무 많고 시끄러워서 상대편과 대화조차 나누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행자 누님은 "가끔 막걸리에 모듬전을 먹고 싶을 때마다 이 집에 온다"고 말한다. 누님은 "이 집에 와서 막걸리 한 잔 먹고 있으면 시끌벅적 막걸리가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잘 모르긴 해도 사람 사는 내음이 난다"며 "이 집에 오면 누구나 막걸리에 중독되고 마는 것 같다. 이 집 막걸리를 사 들고 가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 귀띔했다.

어릴 때 논에서 일하시는 아버지 중참으로 들고 가다가 주전자에 입을 대고 쫄쫄 빨아먹었던 막걸리. 그 시큼 달큼했던 막걸리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대치동으로 가서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마셔 보라. 아무리 몸부림쳐도 텁텁하기만 한 우리네 인생에 막걸리가 닿는 순간 달착지근하게 바뀌리라.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부자생술, #막걸리, #모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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