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픽션>은 심상치 않게 시작하고 있다. 부제가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이다. 이런 부제를 지닌, 또한 '픽션'이라는 과감한 제목으로 등장했던 책이 있었던가. 근래에 이런 책은, 확실히 없었다.

 

제목과 부제만 그런 것도 아니다. <픽션>에 참여한 작가들 하나하나가 화제의 작가다. <하이 피델리티>의 닉 혼비,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조너선 사프란 포어, <신들의 전쟁>의 닐 게이먼, <초보자를 위한 마법>의 켈리 링크 등이 이 책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이니 도저히 평범하다는 말을 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특이한 부제를 지닌 <픽션>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서문을 맡은, <위험한 대결>의 레모니 스니켓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엔 많은 종류의 얘기들이 있지만 그게 여러분 맘에 들든 안 들든 하여튼 지루한 얘긴 없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재밌는 이야기를 쓴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심상치 않은 구석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재밌을까? <픽션>의 첫 번째 소설은 닉 혼비가 맡았다. '작은 나라'의 소년은 국민들 대부분과 달리 축구를 싫어한다. 그건 별다른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축구 선수가 심각한 부상을 당하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작은 나라는 "개울 저쪽은 프랑스"이고 "구멍가게 뒤쪽 울타리 너머는 이탈리아"인, "나라를 횡당하는 데 1분도 안 걸"릴 정도로 정말 작은 나라이며 때문에 인구가 턱없이 부족하고, 때문에 후보 선수도 없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축구 경기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년에게 축구를 하라고 종용한다. 당연히 소년은 거절하고, 그러자 국가는, 소년의 모든 권리를 빼앗는다. 결국 소년은 경기에 나가게 되는데, 결과는 28:0으로 대패다. 다음 경기도 마찬가지. 대패가 예상된다. 하지만 소년이 뭔가를 해서 분위기가 바뀐다. 갑자기 축구를 잘 하거나 하는 건 아니다. 경기 중에 한번 엎어진 것 빼고는 한 일이 없다. 도대체 그 일은 뭘까? '작은 나라'는 작은 나라와 소년, 그리고 이상한 축구 경기로 그만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고 있다.

 

이어지는 소설, 조지 손더스의 '라스 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은 어떨까? 라스 라프는 적당히 소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집이 홀랑 타서 한 줌 재로 남게 된 일을 경험한 뒤에 '겁나 소심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는가. 집안에서 화재가 일어날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고 홍수의 위험성 때문에 지상에서 60m 높이로 집을 올린다.

 

도적을 막기 위해서는 '특별팀'을 구성했고, 혹시나 '특별팀'이 마음이 변할까 봐 그들을 감시할 '도적단 전문 평가단'을 고용하기도 한다. 못 말리는 소심함인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외출하는 가족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래서 라스 라프는 극단의 수를 취한다. 가족들을 통에 넣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 '라스 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은 익살스럽게, 또한 재치 있게 가족의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조지 손더스가 소설가로써의 '구라'를 워낙에 능수능란하게 펼치기 때문일 게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소설가로써, 그들은 다양한 구라를 펼치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총천연색의 소설을 보여주고 있다. 이쯤 되면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심상치 않아 보이는 소설집 <픽션>, 톡톡 튀게, 그러면서 깊은 소설의 맛을 맛보게 해주고 있다.


, ()


태그:#닐 게이먼, #닉 혼비, #조너선 사프란 포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