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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회복의 3대 주역, '정부' - '글로벌 대기업' - '외국 금융자본'

하반기 들어 국정운영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이 46퍼센트까지 급상승하는 배경을 업고 '개혁총리'로 정운찬 전 국립 서울대 총장을 선임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하고 있다. 한때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명되던 정운찬 내정자의 변신도 놀랍지만 그를 총리로 과감히(?) 지명한 이명박 대통령도 예사롭지 않다.

때마침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9월 2일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한 단계 높이면서 장단을 맞추어주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최근 대통령의 자신감은 OECD 최고의 경기회복 속도라는 성적표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신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 우리 경제의 기적적인 조기회복(?)이라는 신화 창조를 이끌고 있는 일등 공신을 꼽으라면 당연히 한국정부와 핵심 대기업, 그리고 외국 금융자본이 3대 주역일 것이다.

우선 정부는 초기에는 위기에 몰린 외환시장 안정과 금융회사 구제에 분주하더니 이내 세제지원과 경기부양자금을 대거 풀어 각종 경제지표를 끌어올리는 등 전방위적인 경제개입을 실시했다. 이미 글로벌 기업 수준에 진입한 핵심 대기업들은 경제위기 속에서 환율 호조건을 등에 업고 쟁쟁한 글로벌 경쟁상대를 따돌리고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산업생산과 수출을 지탱하는 역할을 맡는다.

2009년 3월 이후 금융파국이 소강상태를 보이자, 살아남은 월가의 금융자본은 한국정부와 대기업이 잘 다져놓은 한국경제로 다시 발길을 돌렸고, 코스피 시장에서만 3월~8월까지 무려 22조 원의 자금을 순 유입시키면서 단숨에 주가를 1600선 이상으로 끌어올렸다(한국 거래소 통계자료 잠정치).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은 그동안 뭘 했냐고? 실업과 임금삭감 등으로 물가 상승률을 밑도는 고작 1.4퍼센트의 임금인상(노동부 조사 협약임금인상률 기준, 2009.1~7)을 감수하는 사이 주가는 오르고 부동산이 들썩이고 심지어는 경기마저 회복된다는 소식에 마음만 들떠, 줄어든 소득대신 부채를 더 끌어와서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린 것 말고는 없다. 가계부채 700조, 주택담보대출 340조라는 경제지표 작성에 기여한 것이 사실상 전부라고 해야 할까.

새사연은 이미 한국의 국가가 어떻게 경기회복의 기적을 창조해가고 있는지 '한국에서 부활한 국가자본주의의 힘과 한계'(2009.9.2)라는 보고서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삼성과 현대를 필두로 하는 핵심 대기업들은 이명박 정부와 장단을 맞추면서 어떻게 경기회복 국면에 기여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꿈꾸는 한국의 초대기업들

지난 7월 8일, 포츈지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명단에는 삼성전자(40위)와 LG(69위), SK홀딩스(72위), 그리고 현대자동차(87위) 등 4개 회사가 100위권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 이들은 더 이상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서 싸구려 모조품이나 만들고 자기 상표도 못단 채 원가 이하로 수출하는 과거의 기업이 분명 아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60퍼센트, 세계 휴대폰 시장의 30퍼센트를 장악하는 등 반도체, LCD, 자동차, 가전, 휴대폰 등 첨단 제품과 고가 소비재 시장을 자체 기술력으로 확장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 되어 세계를 누비고 있다.

2009년 3월, 극심한 소비위축으로 신음하는 세계시장에서 최초로 LED TV 시장을 창출하여 이미 100만 대 이상을 팔아치우고 연내 200만대 판매를 전망하는 삼성전자, 자동차 선두기업 GM이 생산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가장 핵심적인 부품인 2차 전지를 납품하기로 한 LG화학, 미국 소비자 조사기관인 JD파워가 신차품질 조사에서 일반 브랜드 부분 1위로 선정한 현대 자동차는 더 이상 글로벌 미국 기업의 하청업체도 아니고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별 볼일 없는 기업도 아닌 것이다. 하긴 세계 경제규모가 14위나 되는 나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하나도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한국의 초대기업들은 80년대 후반 3저 호황을 필두로 90년대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생존과 변신을 거듭해왔고 어느덧 글로벌 기업 반열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 초대기업들의 규모는 우리 국민경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문제의 복잡성을 피하기 위해 신자유주의가 선호하는 순이익 기준으로 살펴보자.

우선 외환위기 이후 살아남는 10대 그룹들은 오히려 과거 30대 그룹을 능가하는 규모로 커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순이익을 대부분 독차지하게 된다. 한국의 최고 기업들이 몰려 있는 상장기업 전체를 통틀어도 10대 그룹이 차지하는 순이익 비중은 70퍼센트나 된다. 금융위기 이후 비중이 15퍼센트 이상 늘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의 순이익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은행들을 빼고 계산하면 훨씬 높게 나온다. 상장기업이 휘청거려도 10대 그룹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한파의 정점기였던 2009년 상반기에도 10대 그룹은 무려 11조 4000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그림1] 10대 그룹 당기 순이익 추이(12월 결산법인)
 [그림1] 10대 그룹 당기 순이익 추이(12월 결산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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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0대 그룹 가운데에서도 초대기업인 4대 그룹으로 좁혀보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이들은 2009년 상반기에 최소 9조 6000억 원 이상의 순이익 행진을 계속했고, 물론 10대 그룹 가운데 금호아시아나와 한진그룹의 적자 영향도 컸지만 10대 그룹 전체 순이익의 84퍼센트를 차지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상반기 순이익이 이미 3조에 육박하였고 현대 자동차도 1조 원을 넘어섰다. 삼성전자 1개 기업이 전체 상장기업 순이익의 1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초대기업의 현실이다.

[그림2] 주요 4대 그룹 최근 5년간 순이익 추이/ [그림3]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당기 순이익 추이
 [그림2] 주요 4대 그룹 최근 5년간 순이익 추이/ [그림3]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당기 순이익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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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개 중소기업이 도산 위협에 시달리고, 700여 개의 상장기업들도 적자에 허덕이며 위기의 2009년 상반기를 지냈지만, 핵심 4대 그룹은 지난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이익행진을 이어왔고, 한국 기업 실적지표를 호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외환위기 학습 경험으로 무장한 한국의 초대기업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금융 그룹인 씨티도 무너지고 부동의 1위를 자랑하던 자동차 기업인 GM도 파산하는 마당에 어떻게 한국의 대기업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흑자행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인가.

물론 한국의 대기업들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했던 학습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다. 500퍼센트가 넘는 부채를 끌어와 중복 과잉투자를 일삼다가 외환위기로 혹독한 시련을 맞고 정부에 의해 강제 빅딜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던 대기업들은 그 이후 부채비율 관리에 지극히 신중해진다. 전반적으로 상장기업의 부채비율은 외환위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아졌지만 최근 다시 높아져 2009년 상반기 기준 102.8퍼센트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삼성은 61퍼센트에 불과하고 현대 자동차도 91퍼센트로 전체 평균을 밑돌고 있다. 10대 그룹이 6말 기준으로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 43조를 감안하면 전혀 경영에 위협이 될 것도 없다. 삼성은 이 와중에도 현금성 자산이 10조를 넘고 있고 현대 자동차도 8조 원을 넘는다(한국거래소, <12월결산법인 2009년 상반기 현금성 자산> 2009.8.21).

그렇다면 이들 초 대기업들은 전혀 투자를 하지 않고 부채비율 관리나 주가관리만 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2006년 기준으로 전체 상장기업들의 연구개발비는 14조 5000억 원으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중은 2.3퍼센트 대였다.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비중이다. 투자를 기피하고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 경영행태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림4] 연구개발비 상위 10대 기업(2006년 기준) / [그림5] 연구개발비 매출액 대비 비중
 [그림4] 연구개발비 상위 10대 기업(2006년 기준) / [그림5] 연구개발비 매출액 대비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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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가운데 상위 10개 대기업의 연구개발비는 8조 7000억 원 이상을 차지하여 전체의 60퍼센트였다. 특히 삼성전자 일개 기업의 연구개발비만 5조 5000억 원, 매출액 대비 비중은 9.46퍼센트, 현대자동차는 1조 원, 매출액 대비 비중이 3.83퍼센트, 엘지 전자가 9800억 원, 매출액 대비 4.23퍼센트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한 개 기업의 연구개발비가 전체 상장기업 연구개발비의 40퍼센트 가까이 된다는 것이다. 2005년에도, 2004년에도 그랬다. 적어도 한국의 초 대기업들은 자체 기술경쟁력을 갖기 위해 이익의 상당부분을 투자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기업들의 최근 경쟁력이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인정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이번 금융위기로 쓰러지는 글로벌 기업들을 보면 한국 대기업들이 얻은 특별한 혜택도 있다. 글로벌 금융화 추세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촌놈' 행세를 했던 것이 오히려 행운을 안겨줬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과 서비스 산업 중심이 아니라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당시의 글로벌 추세에 비추어보면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전통적인 제조업 기업이 주력부문의 경쟁력을 키우지 않고 글로벌 추세에 맞추어 금융 수익을 좇다가 파산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GM이다. GM은 90년대 전반기만 해도 GMAC라고 하는 금융회사의 이익이 20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이후 점점 GMAC 이익에 의존하게 되었고 2000년에 접어들면서는 아예 자동차 부문의 적자를 GMAC의 이익으로 메우는 경영으로 일관하다가 금융위기로 GMAC가 일시에 적자 늪에 빠지자 GM 전체가 파산한 경우다.

그런데 한국은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인 2009년 2월 자본시장 통합법이 시행되면서 비로소 뒤늦게 이런 길이 열린 것이다. 만약 한국의 자본시장 통합법이 수년 전에 발효되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같은 전통 제조업 기업들이 투자은행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미국을 뒤늦게 따라가려다 이익을 보는 경우가 생긴 것이라고 할까.

위기가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인가

위와 같은 내적 역량을 기반으로 한국의 초 대기업들은 경제위기 속에서 유수의 글로벌 경쟁자들을 제치고 시장 지배력을 높여가고 있다. 미국에서, 중국에서 한국 대기업들이 선전하는 모습이 매일같이 언론보도를 장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년 사이 미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점유율은 8.5퍼센트나 확대되었고 중국시장에서도 2.4퍼센트가 늘어나 국내 대기업의 선방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일각에서는 이른바 '역(逆)샌드위치론'을 주장하며 한국 기업들이 선진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고 들떠 있는 분위기도 감지된다(엘지경제연구원, <우리나라 수출경쟁력 진단>, 2009.7.1). 원래 샌드위치론이란 2007년 1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샌드위치 신세"라고 주장한 뒤, 정체 상태에 놓인 한국 경제를 표현하는 상징 용어가 된 바 있다. 그런데 "2008년 이후에는 여전히 개도국으로부터 시장을 빼앗기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선진국의 몫을 더 많이 잠식하는" 역샌드위치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전이 순전히 국내 초 대기업들의 내적 역량으로만 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환율 효과가 상당히 큰 영향을 주었다. 이는 우리 주력 제품의 가장 큰 경쟁국가인 일본과의 관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일본 도요타보다 현대 자동차가 갑자기 기술력이나 마케팅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도요타가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보는 와중에 현대 자동차가 흑자행진을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환율 효과인데, 2009년 1월~4월 기준으로 한국의 원화 가치는 지난해에 비해 약 43퍼센트가 절하되었다. 이에 비해 일본의 엔화는 동일한 기간 동안 8.3퍼센트가 평가 절상되어 그 차이만큼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유리하게 된 것이다. 이는 소비위축이 극심한 환경에서 일본기업들의 수출 실적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각국 정부의 일시적인 경기부양정책이 한국의 대기업에게 상대적인 수혜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 정부의 세제감면이 5, 6월 자동차 내수판매 급증을 가져온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언론은 한국 자동차가 불황을 뚫고 미국시장에서 사상 최대의 판매실적을 올렸다고 앞 다투어 보도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8월 판매량이 작년 대비 47퍼센트나 증가한 6만467대를 기록했고, 기아차는 무려 60.4퍼센트나 급증한 4만 198대를 판매해 미국시장 진출이후 최대 실적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8월 24일로 기간이 이미 종료된 신차 보조금 정책을 위해 미국 정부가 한 달 동안 30억 달러를 쏟아 부은 일시적 효과임을 감안해야 한다. 소비능력이 떨어진 미국 시민들이 정부의 신차 보조금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연비가 좋은 소형차를 구입했는데 여기에서 한국 자동차가 혜택을 많이 본 것이다.

환율이나 세제혜택 같은 일시적인 효과는 그 혜택이 제거되면 사라진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구조적 문제는 글로벌 차원의 과잉생산체제와 과잉소비체제가 이번 경제위기로 한계점을 맞으면서 상당 기간 절대적 시장 규모 축소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경제위기의 핵심은 다수 국민의 소득을 정체시킨 상태에서 빚만 늘려 소비를 확대시켜온 '차입경제'의 한계가 드러난 데 있다. 여기에서 이번 위기의 주범인 금융회사들은 금융공급을 '무제한'으로 팽창시켜 고수익 행진을 이어가면서 '차입경제'의 한 축을 지탱해왔던 것이고, 전 세계 제조업들은 객관적인 소비능력을 뛰어넘는 '과잉생산'으로 차입에 의한 소비에 화답하며 수익행진을 이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제위기로 향후 경기 회복 여부와 관계 없이 '차입경제 시스템'은 사실상 무너졌으며, 살아남은 금융회사들도 무제한 금융공급을 조만간 재개하기는 어렵다. 소비자들도 줄어드는 소득 가운데 빚 갚고 저축하느라 소비를 급격히 팽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글로벌 기업들의 '과잉생산'체제를 축소하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The Economist에 따르면 전 세계 자동차산업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1년에 약 9400만 대에 이르지만, 2009년 현재 소비 여력은 6000만 대에 그쳐 3000만 대 이상의 과잉생산 체제가 된 실정이다. 글로벌 생산축소와 구조조정이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축소되는 시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치킨게임이 벌어지게 되고 여기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업계 5위의 독일 키몬다(Qimonda)가 2009년 1월 자금압박으로 파산하면서 한국의 반도체 업계의 주가가 올라간 바 있다. 그러나 세계시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1등 금융기업 씨티그룹이 무너지고 1등 자동차기업 GM이 무너지는 것을 올해 상반기라는 짧은 시간에 모두 목격하지 않았는가. 일시적인 환경 요인에 의한 상승세로 과잉생산체제 축소기의 치킨게임에서 매번 승리할 수는 없다. 과거 일본이 80년대 이래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잠식하며 미국의 Big3을 사실상 몰락지경에까지 몰아간 것은 일시적인 요인 때문만이 아니다. 그래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기에는 한국 초 대기업들이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다.

한국의 삼성이 잘나가면 한국 국민도 잘 나가는가

삼성과 현대 등의 초 대기업들이 위기를 기회로 되살려 도약하는 것 그 자체는 두 손을 들어 박수칠 일이다. 해당 기업의 직원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며 국가적으로 보아도 국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신용도를 호전시키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협력업체들에게도 나쁜 소식이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이 기왕이면 골프나 수영, 피겨 등의 종목에서 자기 실력으로 세계적인 선수 반열에 들어가고 우승하는 것을 온 국민이 열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계 피겨 정상권자 김연아와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 삼성은 그런 점에서 모두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김연아와 삼성이 다른 것이 있다. 삼성, 현대, LG 등은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다. 국민경제의 핵심적인 일원이면서 동시에 다수의 중소기업, 노동자와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경제를 함께 움직여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73조, 5.5조, 55조, 8만 4500명"

어떤 숫자인지 아는가. 한국 1위 기업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작년 말 기준으로 73조 원이고, 당기 순이익이 5조 5000억 원이며, 이익잉여금 누적 액이 55조 원이고, 직원 수자가 8만 4500명이라는 것이다. 김연아의 우승 기록 208점은 세계 신기록 달성 그것으로 끝일 뿐 더 해석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삼성의 수치는 다르다.

우선 그것은 대한민국 4800만 국민 가운데에서 최고의 핵심 인력들을 선별해서 기술개발과 상품을 만들고 그 상품을 국내 소비자들이 충분히(?) 벤치마킹해준 다음에 각종 국가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로 진출해 달성한 기록이다. 따라서 그 결과를 삼성, 또는 삼성의 대주주가 독식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경제 구성원들인 중소기업들과 노동자들, 그리고 국가재정으로 다시 순환되는 것이 마땅하며, 그래야만 그 결과가 다시 삼성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경기침체가 바닥으로 질주하는 동안에도 대기업들이 수익행진을 계속했던 2009년 상반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2009년 초입인 2월 25일,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이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에 합의하며 발표한 내용은,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최고 28퍼센트까지 삭감하기로 하고, 기존 직원의 임금조정(삭감)을 통해 만들어진 자금으로 신규직원이나 인턴을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경제위기의 고통을 같이 분담하자는 취지였다. 이미 연초부터 법인세는 당초 최고세율 25퍼센트에서 22퍼센트로 3퍼센트를 감세해주기 한 것이 시행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임금삭감 보상(?)으로 30대 그룹이 2009년 상반기 집행한 투자금액(32조 6000억 원)은 전년대비 -15.7퍼센트 감소했고, 신규 고용(3만 500명, 30대 그룹 전체 직원의 3퍼센트)은 이보다 훨씬 줄어서 -32.6퍼센트 감소로 나왔다. 2009년 하반기에 약간 개선은 되겠지만 큰 차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지 않는다(<매일경제> 2009.7.2). 차라리 외국인들이 2009년 상반기에 전년대비 2.1퍼센트가 늘어난 직접투자를 했던 것이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지식경제부 발표, 2009.7.2).

감세와 임금삭감까지 지원받으며, 더욱이 자동차는 세제감면혜택까지 덤으로 받으면서 흑자 행진 결과를 국내 설비투자나 고용확대로 돌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결국 재정지출 여력을 소진한 이명박 정부가 초조해진 나머지, 하반기가 시작되자마자 7월 1일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이 투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투자를 촉구했고 다음날에는 <일자리 창출과 경기회복을 위한 투자촉진 방안>을 발표하며 지원책을 쏟아내야 했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도 민간 대기업들이 미덥지 않았던지 한국도로공사, 수자원공사, 농어촌공사와 같은 애꿎은 공기업들을 다그쳐 당초 계획보다 무려 16퍼센트 가깝게 늘어난 1조 원 이상의 추가투자를 지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던 것이다(<연합뉴스> 2009.7.2).

그런데 반도체는 그렇다 치고 생산확대에 따라 그만큼의 인력 확대가 수반되는 자동차 산업에서, 일시적이나마 내수가 폭발하고 수출이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어째서 고용을 늘리지 않았던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해외 현지 공장에서 현지인들을 고용하여 현지에서 판매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 자동차 회사들은 2009년 7월 기준으로 내수 판매를 약 12만 대, 국내에서 생산하여 수출판매를 약 18만 대, 해외 현지에서 생산하여 해외판매를 약 17만 대를 했던 것이다. 작년에 비해 수출은 -30퍼센트 이상 줄었지만 해외 생산은 오히려 7퍼센트 이상 늘어났다(한국자동차공업협회, <자동차산업동향>). 그러니 고용이 늘었다면 해외 고용이 늘었을 뿐 수출 감소로 국내 고용은 거꾸로 줄어들 요인만 생긴 것이다.

결국 현대와 기아자동차의 기록적인 미국판매 실적은 한국경제 고용 증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자동차 생산의 초국적화가 한국의 자동차 회사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한국의 초 대기업들이 비록 국내 설비투자나 고용을 크게 늘리지는 않았지만, 위기 와중에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으로 상당 규모의 법인세를 납부하여 국가의 재정지출에 기여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겠는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도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부분 대기업들은 2008년 기준으로 벌어들인 수익 가운데 15퍼센트에서 심지어 100퍼센트 이상을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지급했었다. 그리고 다시 그 배당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43퍼센트, 현대자동차는 26퍼센트를 외국인 배당으로 돌렸다.

반면 이들에게 적용될 법인세 최고세율은 2008년에 25퍼센트였지만 각종 감면혜택 등으로 줄고 줄어서 삼성전자는 고작 6.5퍼센트, 현대자동차도 19.3퍼센트, SK텔레콤은 15.2퍼센트밖에 실제 법인세를 내지 않았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이익을 내서 외국인 배당으로 준 금액이나 국가에 법인세로 낸 세금이 거의 같은 수준이 되었고 SK텔레콤은 아예 국가에 낸 세금보다 외국인에게 배당으로 준 금액이 높은 상황까지 연출된 것이다. 그나마 2008년에는 외국인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여 전년대비 외국인 배당금이 절반으로 줄었기에 이 정도이지 평년이었으면 법인세보다 훨씬 커졌을 것이고, 올해에 외국인 주식 비중이 다시 30퍼센트를 넘어서고 있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올해 역시 수치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그림6] 주요 대기업 배당 금액과 법인세 납부액(2008년)
 [그림6] 주요 대기업 배당 금액과 법인세 납부액(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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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 5000억 당기 순이익, 8000억 배당금, 3500억 외국인 배당금, 3800억 세금 납부, 1조 세액공제 감면 금액"

삼성의 또 다른 기록들이다. 돈 벌어서 국내 설비투자도 제대로 안하고, 국내 고용기여도 보잘것없고 그나마 세금도 외국인 배당 정도밖에 안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부가 대기업 투자확대를 가져올 것이라며 그토록 집요하게 추진했던 감세정책의 결과는 대기업의 투자확대가 아니라 순이익과 현금유보 확대로 귀결되고 국가의 재정적자 확대로 귀결될 가능성을 똑똑히 보게 된다.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김연아가 우승하면 한국 국민은 기쁘다. 그러나 "삼성이 잘나가면 한국 국민도 잘 나갈까?"

글로벌 기업으로 접근할수록 국민경제와는 멀어진다

외환위기 직후 정책결정자들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대기업들을 살리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면서 이른바 '아랫목, 윗목' 주장을 폈었다. "아랫목이 따뜻해진 다음에 곧 윗목이 따뜻해질 것이니 기다려라"는 논지였다. 그러나 이후 사회 양극화 현상이 단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듯이, 우리 국민은 지난 10여 년간의 체험을 통해 "아랫목은 영원한 아랫목, 윗목은 영원한 윗목"이 진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국민경제라는 같은 방 안에 사는 것도 아니고 "4대 그룹을 위한 따뜻한 안방과 4000만을 위한 싸늘한 곁방"이 따로 갈라서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4대 그룹에게 초일류 기업으로 비상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는 4000만에게 과거의 양극화 이상의 고통을 감수하게 하는 최악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과장된 것일까.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를 분기점으로 삼성과 현대를 필두로 한 한국의 초 대기업들은 또 한 번의 도약과 변신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명백한 것이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보건대 그들이 더 큰 글로벌 기업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 국민경제, 그리고 우리 국민과의 간격은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 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기업, #삼성, #현대, #경제회복, #국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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