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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내정 소감을 밝히기 위해 교수연구실을 나서고 있다.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내정 소감을 밝히기 위해 교수연구실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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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었다. 심대평 의원의 총리 기용 실패를 놓고, 이명박(MB) 대통령이 왜 저럴까 하는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MB는 강소국 연방제 때문에 협상이 깨졌다고 했다. 이회창 선진당 총재는 세종도시법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것이 됐든, 누구 책임이든 어쨌든 충청을 포용하는 데 일단 실패한 기획이었다. 따라서 MB가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것은 아무런 실익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언급했다. 왜 저럴까.

MB는 왜 이회창을 물 먹였을까

주지하듯이, MB는 박근혜 전 대표를 싫어한다. 박 전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에서 압도적인 1위를 누려도 그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기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박 전 대표의 지지기반은 영남과 충청이다. 사실 영남에서 MB는 수도권 대통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진정한 영남후보라는 것이다. 충청은 고(故) 육영수 여사 때문에, 그리고 대표 시절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을 처리해 준 덕분에 박 전 대표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MB는 이회창 총재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뭐 때문에?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MB가 정운찬 전 총장을 총리로 기용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레 풀렸다. MB가 논란을 계속한 것은 정 전 총장을 등장시키기 위한 터 닦기 차원이었다. 충청 대표성을 놓고 경합해야 하는 이 총재를 흠집 내고, 그 틈에 정 전 총장을 충청의 새로운 대표주자로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자유선진당은 분열되었고, 이 총재의 리더십은 적지 않게 훼손당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성공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MB로서는 그 실익이 쏠쏠할 것이다. 현 정권 출범부터 지금까지 '삐딱한' 자세를 보였던 충청 민심에 어느 정도 소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승세인 MB 지지율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충청이 호응하고, 중도층의 편입이 늘어난다면 출범 이후 최고의 지지율을 갱신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에서 최고의 MB 지지율은 취임초의 48%였다. 사실상 독주하는 박 전 대표를 견제하는 효과도 만만치 않은 게 MB로선 큰 이득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MB 입장에서 보면, 정운찬이 정치적 생존을 위해 싸움을 걸어오는 것이 최악이다. 이런 싸움은 개인적 성정의 차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평소의 생각이나 가치 지향성을 보면, MB와 정운찬은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또 박근혜가 정운찬의 싹을 자르기 위해 예의 친이·친박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도 부담이다. 예상되는 이 총재의 비협조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제로섬 관계인 박근혜, 이회창, 정운찬 3인의 이해를 조화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 전 총장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번 선택은 위험한 모험이다. 흔히 정운찬 하면 '꽃가마만 타려 한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과연 총리직이 꽃가마인지부터 회의가 든다. 노무현 정부의 책임총리와 같은 힘과 결정권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한승수 총리의 롤 모델이 여권 내부의 권력게임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면 정 전 총장의 운신 폭은 그리 넓지 않다. 뭔가 해보려 하면 당장 대통령 권력과 부딪힐 것이고, 얼굴마담으로 만족하면 그는 불임 지도자로 전락할 것이다. 총리를 지내고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 경우는 한국에 아직 없다.

2007년 4월 30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2007년 4월 30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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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전 총장의 위험한 선택

'똑똑한' 사람이니 그냥 자리만 덜렁 받았으랴 하는 생각도 든다. 따라서 총리직 제의를 수락하면서 MB와 어떤 합의나 계약을 맺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둘만의 약속으로 남겨져 있는 이상, 그것은 무용지물이다. 앞으로 정 전 총장의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강화도령', 즉 MB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과거 YS 정권 시절, 이홍구나 이수성 전 총리의 길을 걷는 것이다. 당내에서 박 전 대표와 견줄 만한 친이 후보가 없는 마당이기 때문에 여지는 충분하다.

다른 하나의 선택은 이른바 '이회창 루트'다. 총리로서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어느 시점에선가 MB를 공격하면서 결별하는 것이다. 만약에 MB 지지율이 바닥이거나, 국민 여론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정책을 MB가 밀어붙이려 할 경우 '반항효과'는 더 클 것이다. 여론이 호응해 준다면, 정 전 총장은 일거에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할 것이다.

요컨대, '정운찬 카드'는 실익이 적지 않지만, 부담은 더 크다. 당장 표면화되지는 않겠지만, 쉽게 풀 수 없는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가 수도권과 충청 간의 지역이해 대립이다. 현재 양 지역을 가르고 있는 이슈는 세종도시법의 원안 추진여부다. MB나 한나라당은 부정적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미적거리고 있다. 이번의 MB와 이 총재간의 진실공방에서도, 청와대는 세종도시법의 원안 추진 여부에 대해 확답을 안 하고 있다. "세종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미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이 추진돼 행복도시가 건설 중이다. 세종도시법은 진즉에 국회에 상정돼 있다. 기정사실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하는 것은 결국 하기 싫다는 것이다.

정 전 총장의 정치기반은 없다. 단 1표라도 국민으로부터 검증받은 게 없다. 굳이 찾자면 충청이라는 지역연고뿐이다. 따라서 여기에 긴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종도시가 문제다. MB가 정 전 총장에게 세종도시법 원안 처리를 선물로 주기 위해, 그를 띄우기 위한 부양책으로 남겨두기 위해 이 총재의 제안을 거절했을 수도 있다. 총리가 된 후 세종도시법을 원안대로 관철시킨다면 정 전 총장이 충청을 자신의 정치기반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수도권과는 등을 지게 된다.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는 MB가 순순히 양보할 것 같지도 않지만, 설사 양보하더라도 정 전 총장에게 '반(反)수도권' 이미지가 덧씌워질 우려가 있다. 

한편, 만약 정 전 총장이 세종도시법을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충청과는 무관한 인물이 되고 만다. 정치기반 없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를 대권주자로 밀어 올릴 동력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세종도시법을 적당한 선에서 축소하면서 수도권과 충청의 이해대립을 격화시키지 않고 넘어가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면 이 총재나 자유선진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정 전 총장을 계속 압박할 수밖에 없다. 대권경쟁에서 다퉈야 하는 박 전 대표도 정 전 총장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다.

정 전 총장의 성패는 다음 지방선거에서 가름될 것이다. 현재 충청의 광역단체장은 전부 한나라당 소속이다. 내년 지방선거 결과, 한나라당이 충청에서 몰락한다면 정 전 총장의 꿈도 허망하게 사그라질 것이다. 이홍구 전 총리가 노동법 날치기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듯이 말이다. 일장춘몽에 남가일몽, 한단지몽이다. MB도 그의 효용가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패전지장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MB의 실용주의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비판을 했으나, 참여는 한다?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지인들로부터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신임 국무총리에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지인들로부터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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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정 전 총장이 현재의 MB 지지율 때문에 총리직 제안을 수용한 것일 수도 있다. 중도실용이나 친서민 행보를 진심이라 믿고 운명을 함께하기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운찬은 '바보'다.  

어떤 글에서 정 전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해 "감세가 실제 경제 효과 없이 소수 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의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라며 "경제이론으로는 효력을 상실한 레이건 정부 시절의 공급 경제학에 기대어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위기의 해법으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한 노동자 소득기반 강화, 교육 개혁을 통한 분배구조 개선, 금융 건전성 규제 강화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정 전 총장이 비판한 현 정부의 정책레짐(policy regime)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그가 비판했던 강만수 특보는 여전히 MB 곁에 있다. 부자감세는 요지부동이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친서민 행보에 진정성이 있겠는가. 이걸 안다면 그의 선택은 변절이다. 모른다면 바보다. 날치기하고, 야당과 대화하지 않는데 어떤 관점에서 그것이 중도실용으로 보일까.

이유는 또 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대패한 이유는 양극화 때문이었다. 맡겨놨더니 없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했다는 정서가 핵심 패인이었다. 이웃 일본의 경우에도 양극화 때문에 54년 만에 자민당 정권이 무너졌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전면화한 고이즈미 때문에 지난 8월 30일 아소가 굴욕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MB가 기존의 정책기조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이상, 'MB의 남자'로서 정 전 총장은 분노한 민심의 주타깃이 될 것이다. 

현재의 구도상 정 전 총장의 상징어는 개혁이 아니라 지역이다. MB는 수도권·영남연합정권이다. 민주당은 호남정당이고, 범민주당의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정동영 의원이나 정세균 대표는 호남 출신이다. 박 전 대표는 영남 출신이다. 여기에 충청이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대결 구도로 짜이면 정 전 총장의 지지기반은 대단히 협소해질 것이다. 가장 결집도가 낮고, 규모가 작은 지역의 대표성에 국한되는 것은 실익이 없어 보인다.     

김준엽과 정운찬, 그들의 다른 길

김준엽이란 인물이 있다. 정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대학총장을 지냈다. 김구와 함께 일제 독립운동을 한, 장준하의 친구다. 이런 인물이니 그에게 총리직을 제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매번 거절했다. 전두환 때문에 대학총장직에서 쫓겨난 그였기에 화려한 복귀에 대한 미련이 왜 없었으랴. 하지만 그는 아닌 길을 가지 않았다.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역사의 신'을 두렵게 여겼다.

'정운찬 카드'야 성공하든 말든, 정운찬이 평소 했던 약속만큼은 지켰으면 좋겠다. 그가 말했다. "인생의 가치는 자신의 몫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느냐에 달려 있다."

돈 없고,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핍박받거나 손해 보거나 삶을 힘겨워하지 않도록 몫을 나누는 일에 매진했으면 좋겠다.


태그:#정운찬, #MB, #박근혜, #총리, #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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