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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OO씨 되시죠? 여기 XX경찰서입니다. 이△△씨 고소 사건으로 조사할 게 있습니다. 좀 나와주셔야겠는데요."

만일 당신이 이런 전화를 받거나 출석통지서를 받게 된다면? 아마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설마 그러겠느냐고? 직접 한번 경험해 보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 해 고소가 50만 건이 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다 보면 수사기관의 소환장을 받는 일은 결코 희귀한 경험이 아니다. 고소를 당했다면 죄를 지었건 안 지었건 조사를 받는 것은 넘어야 할 산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족을 붙인다. 이후에 쓰는 내용은 기자의 주관이 담겨 있기도 하다. 형사사건은 워낙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고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사건에 따라, 시각에 따라 대처방법이 다를 수 있다. 누구도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이 점을 감안하길 바란다.)

고소당했다면 조사를 받는 건 넘어야 할 산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의 부담을 털어내는 것이다.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두려하거나 회피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 현실을 인정하자. 수사기관이 당신을 부른 것은 고소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사실이라면 죄가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당신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아무도 죄없는 당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당신에게 한 가지 희망을 주는 사실이 있다. 고소당한 이들 중에서 실제로 형사 처벌을 받는 사람은 5명 중에 1명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엔 무모한 고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소 사건에 관한 자세한 통계는 상자기사 참조.)

만일 당신이 죄가 없다면 검사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할 것이며, 설사 기소되더라도 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날 길이 있다. 일단은 그렇게 믿자. 반대로 죄가 있다면 그때는 처벌을 피하거나 가벼운 형을 받는 길을 찾아야 한다. (형사사건의 절차에 관해서는 기사 '형사 고소, 홧김에 했다가 큰코 다친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최근 10년간 고소사건의 현황. 한해 50-60만 명이 고소를 당하고 있다. 하지만 고소당한 사람중에서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은 5명중 1명도 되지 않는다. (출처 : 대검찰청 통계)
▲ 10년간 고소 현황 최근 10년간 고소사건의 현황. 한해 50-60만 명이 고소를 당하고 있다. 하지만 고소당한 사람중에서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은 5명중 1명도 되지 않는다. (출처 : 대검찰청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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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고소사건 얼마나 되나?
작년 58만 명 고소당해... 형사처벌은 10만 명선
수사기관은 검문, 현행범 체포, 언론보도나 여론동향을 통해 수사를 하기도 하고 피해자의 고소나 제3자의 고발 신고를 통해 수사를 개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 고소는 형사사건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5년간 형사 사건과 고소사건을 통해 실상을 알아보자.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1년 동안 수사기관에 접수된 총 사건수는 250만여 건이다. 최근 5년을 놓고 볼 때 작년(279만여 건)이 가장 많았고, 2005년(243만여 건)이 그나마 적었다. 이중에서 검사가 기소한 사건은 절반 정도이다. 작년을 기준으로 기소율은 48.1%(131만여건)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한 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는 사람은 250만명 정도 되고, 그 중 절반은 법정에까지 서게 된다는 말이다.

이중에서 고소사건만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한다면 고소 사건이 재판까지 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고소당하는 사람은 50만-60만 명에 이른다. 2004년이 63만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2007년이 55만여 명으로 가장 적었다. 작년엔 58만여 명으로, 우리나라 성인(18대 총선 유권자수 3780만명 기준) 중에서 65명에 1명꼴로 고소를 당한 셈이다. 고소사건은 수사기관의 전체 사건 중에서 20-24% 정도를 차지하며 대다수는 사기, 배임, 횡령 등 재산범죄이다.

고소하면 실제로 처벌받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최근 5년간 고소사건의 기소율은 17-18% 정도였다. 작년 피고소인 58만여 명 중 10만5341명이 기소되었는데 그중에서 정식 재판을 받은 사람은 3만3461명, 약식 기소된 사람은 7만1880명이다. 형사고소당한 사람 중 실제 재판까지 가는 사람은 5명 중 1명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준비없이 조사받다가는 큰코 다친다

수사기관에 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다. 고소 내용을 파악하는 것!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울까. 민사사건이라면 재판 전에 상대방의 서류를 보내주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할 여건이 된다. 하지만 형사사건은 다르다. 경찰서에 물어보아도 누가 무슨 죄로 고소를 했는지 정도밖에 알 수 없다. 그래서 아무런 준비 없이 수사기관의 소환에 응하는 사람이 많다. 이건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만큼 위험하다.

어쩔 수 없이 여기(고소인과 죄명)에서 단서를 찾자. 고소인이 아는 사람이라면 무슨 내용으로 고소했는지 대충 파악할 수 있으리라. 예를 들어 서로 돈거래를 했다거나, 동업을 하다가 다투었다거나, 몸싸움을 한 적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단 정확한 사실 관계를 정리해보고 경찰 조사에서 답변할 내용을 미리 준비한다. 고소 내용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나 증거(예컨대 돈문제로 고소당했다면 거래내역이나 영수증, 참고인 등)가 있다면 반드시 확보한다.

죄를 인정한다면 당사자와 합의가 상책

고소 내용이 만일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죄가 되는가는 별개 문제이다. 고소사건은 대개 돈 문제에 집중된다. 쉬운 예로 돈을 제때 갚지 못했다거나 혹은 사업이 실패하여 빚쟁이들로부터 고소당했다고 치자. 이것이 범죄가 되기 위해선 처음부터 돈을 갚을 능력과 의사가 없었다거나 돈을 빼돌릴 생각으로 사업을 벌였어야 한다. 단지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져서 빚을 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

반면, 자기 재산도 없이 사업을 벌였다가(쉬운 예로 은행대출과 분양대금만으로 상가 분양사업을 하다가) 실패해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범죄(사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법률적인 문제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여력이 있다면 법률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보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당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면(예를 들어 일방적으로 폭행을 했거나 명백한 사기거래를 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고소인과 합의를 보는 것이다. 범죄 중에는 마음씨 고운 피해자의 뜻에 따라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죄가 있으니 바로 친고죄, 반의사불벌죄이다. (친고죄 등에 관해서는 상자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친고죄 등이 아니더라도 피해자와의 합의는 재판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합의를 본다는 것은 다소 체면을 구기는 구차한 일일 수 있으나 전과자가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형사 피의자의 중요한 권리를 알고 가자

이제 경찰(또는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막상 조사를 받으면 긴장하게 되고, 당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 개인 경험을 얘기해 본다면 2차례 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 모두 피해자 자격이었다. 경찰과 편안한 상태로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조사 기간 내내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죄를 지었다고 의심을 받는 '피의자'는 오죽할까 싶었다.

그래서 제안한다. 가능하다면 나름대로 사실관계를 정리한 서류를 들고 가자. 기억력에 의존해서 답변을 했다가는 불리한 얘기가 나올 수도 있고 진술이 오락가락할 수 있다. 질문에 서면을 보고 준비된 답변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반드시 메모지와 펜을 준비하라. 조사 도중 중요한 사항이나 의문난 점을 적어둔다. 빈손으로 가서 조사를 받고 나오면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메모한 내용을 토대로 방어책을 마련하고 주변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당신이 피의자의 자격으로 경찰서에 간다면 형사 피의자의 권리를 알고 가는 것이 좋다. 피의자는 무죄로 추정되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변호사와 함께 조사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더 중요한 권리로 진술거부권이 있다. 헌법상 권리이다. 수사기관도 피의자를 조사하기 전에 "진술의 전부나 일부를 거부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알려주게 되어 있다. (진술거부권에 대해서는 조만간 별도의 기사로 정리해볼 예정이다.)

진술거부권을 적절히 활용하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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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을 때 어떻게 진술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유리한 내용은 강조해서 얘기하고, 불리하거나 불확실한 내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같지만 어렵다. 생각해보라. 당신의 범죄를 추궁하는 형사나 검사 앞에서 '계획된 진술'을 하기가 쉽겠는가. 그래서 앞서 사전준비를 강조한 것이다.

경찰은 당신의 인적사항 등 사소한 사항부터 범죄에 관한 내용까지 질문할 것이다. 어떤 경우는 고소인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중에서 증거가 명백하거나 드러난 사실까지 부인할 필요는 없다. 증거가 명백한 것은 나중에 법률적인 부분에 대해 다툴 수도 있다.

대신 당신에게 아주 불리한 내용이거나 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문은 준비되지 않았다면 답변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럴 때는 "더 확인하고 답변하겠다"거나 "이번에는 진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당신의 권리인 진술거부권을 적절히 활용하라는 말이다. 즉흥적인 답변을 피하라. 한 번의 말실수가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경찰에서 질문한 내용은 대부분 검찰에서 다시 물어본다. 이러한 내용은 재판에서 다시 확인과정을 거친다. 물론 경찰에서 한 진술은 검찰에서 번복할 수 있고, 법원에서 또다른 진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꾸 진술이 바뀌다 보면 결코 믿음을 줄 수 없다. 그러니 첫단추부터 잘 끼워야 한다.

피의자의 진술은 서류로 남기게 되는데 이를 피의자 신문조서라고 한다. 이 조서는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본인의 확인을 거치게 되어 있다. 아무리 조사를 잘 받았더라도 그런 내용이 조서에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피의자는 조서를 보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진술과 다르게 표현된 부분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어렵더라도 조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반드시 제대로 읽어보고 본인에게 불리하게 적힌 내용은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 수정이 안된다면 이의를 제기한 근거를 조서에 남겨두어야 한다. 경찰이 난색을 표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도장이 한 번 찍히면 당신은 조서에 나온 대로 말한 것이 되니까.

죄가 없다면 당당하게 임하라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 경찰이나 검찰에 미리부터 적대적인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당신의 사건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거나 시국 사건이 아닌 이상 수사기관도 선입견을 갖고 당신을 대할 이유는 없다. 그들 대부분은 법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는 공무원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불필요하게 경찰조사를 거부하거나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기만족이 될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확실한 것은 당신을 법원에 기소하느냐 마느냐는 수사기관이 결정한다. 일단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조사에는 협조하는 것이 현명하다. 수사기관에 대한 비판은 당신이 재판에서 진 다음에, 그때 실컷 해도 늦지 않다.  

이제 정리해보자.

1. 고소를 당했는데 죄를 인정한다면 우선 피해자와 합의하라.
2.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기 전에 반드시 사전준비를 하라.
3. 조사받을 때는 준비된 답변만을 하고 불리한 내용은 진술을 삼가라.
4. 피의자신문조서는 반드시 꼼꼼하게 확인하고 도장을 찍어라.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당신이 죄가 없다면 조사에 당당하게 임하라!

합의하면 처벌 안받는 죄도 있다?
-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란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는 때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수사를 종결시키고, 재판은 중지시킬 수도 있다. 특히 피해자의 의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범죄가 있는데 바로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다. 이런 죄는 합의가 관건이다. 

친고죄란 고소가 공소제기 요건인 죄를 말한다. 쉽게 말해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으면 검사는 기소할 수 없고, 판사도 유무죄를 판단할 수 없는 죄가 친고죄다. 간통, 강간, 강제추행, 혼인빙자간음, 모욕죄 등이 해당한다. 친고죄에 성범죄가 많은 이유는 피해자의 뜻과는 무관하게 사건이 알려지는 것이 오히려 피해자 명예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성범죄 중에서도 강간 상해, 집단 강간, 13세미만 성폭력 등 중범죄는 친고죄가 아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죄를 논할 수 없는 죄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 처벌할 수 없다. 친고죄와 달리 고소가 없어도 수사를 하고 재판을 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순간에 사건은 종결된다. (존속)폭행, 과실상해, 협박죄, 명예훼손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명예훼손은 인터넷상이나 언론, 출판물에 의한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범죄인 (존속)학대, 상해죄, 집단·상습폭행 등은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다.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수사기관(재판중이면 법원)에 고소 취하서나 처벌불원서(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서류)를 내면 기소할 수 없고, 재판중일 때는 공소기각 판결을 하게 된다. 만일 고소인과 합의를 보았다면 반드시 합의서를 작성하고, 그 내용에는 수사기관(또는 법원)에 취하서나 처벌불원서(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서류)를 제출한다는 조항을 넣는다.     

한편, 친고죄 등이 아니더라도 피해자와의 합의는 판사가 형을 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절도, 사기, 횡령 등 금전 범죄는 피해 회복 여부가 감옥에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때도 있다. 따라서 만일 상대방에게 손해를 입혔고 피해액이 많지 않다면 변호사를 선임할 돈으로 합의금을 주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피해자가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여 합의가 되지 않았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일정한 금액을 공탁하면 양형에 참작이 된다.


태그:#고소, #친고죄, #진술거부권,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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