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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8일 오후. 아무리 휴가철이라 하지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고향마을에 잠들어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찾아뵙지 않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봉하 마을에 갔다.

 

장례기간동안 외지인들로 북적이던 마을 회관 옆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형걸개 그림이 걸려있다. 평일에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 낮이라 주차장은 한산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묘소로 이동했다. 이글거리는 8월의 태양은 불볕이었다. 푹푹 찌는 대지의 복사열이 폐부를 파고든다. 묘소에는 가족단위 참배객들이 예를 올리고 있었다.

 

일반인의 묘지보다 초라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보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분을 이렇게 모셔도 되는 건가? 그것도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반란 군인의 수괴도 아니고 국민의 선택에 의해 대통령에 오르셨던 분을..."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봉화산을 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이 투신했던 부엉이 바위에 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위해서다. 감나무 밭 사이로 조성된 계단이 가파르다. 죽음을 예비하고 이 계단을 오를 때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은 어땠을까? 뚜벅뚜벅 걷던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더위와 맞물려 숨이 턱에 찬다. 이 때였다. 휴대폰 진동이 울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확인했다. 문자였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지인의 문자였다. 다리가 풀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망연자실 바로 그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였을 때 "나의 반쪽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던 당신마저 가신다면 우리 백성들은 전부가 떨어져 나간 것과 같은 상실감에 공황을 느낄 건데 어떻게 하라고 가셨다는 말입니까? 더구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지적하시던 현 시점에서는 가실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서둘러 상경 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을 되새겨보았다.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민당 경선에서 김영삼 총무를 따돌리고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돼 박정희와 맞붙은 김대중 후보는 전국 유세 중에 종로 낙원상가 북쪽에 있던 교동국민학교에 들렀다.

 

"3선 개헌을 획책하면 박정권에 조종이 울릴 것이다"라고 박정희 후보에게 엄중 경고하던 김대중 후보. 국민 여러분이 이번 대선에서 제대로 투표하지 않으면 직선제 대통령 선거는 사라지고 대만처럼 총통제가 될 것이라고 국민을 설득하던 김대중 후보.

 

평화통일을 주장했던 조봉암씨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주변 4강이 남북한을 교차 승인하여 남북한 평화를 정착시키자던 김대중 후보.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는다는 박정희 후보와 맞붙어 연방제를 주장하던 김대중 후보. 그 중에서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대중경제론'이었다.

 

재벌과 유착한 개발독재가 당연시 되던 시대에 "재벌을 해체하고 서민경제를 펼치겠다." 돈 없는 사람은 병원에도 못가고 죽어가던 의료보험마저 없던 시대에 "4대 보험을 정착하여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겠다." "여성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김대중 후보의 경제 공약은 지금은 대부분 실현된 흘러간 정책이지만 당시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 마디로 멋있는 정치인이었다.

 

94만 표차로 석패한 김대중 후보는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납치. 수장 위기, 동교동 연금 내내 님은 내 가슴에 살아있는 우상이었다. 서울의 봄도 잠깐, 광주학살에 이어 투옥, 사형선고, 미국 망명. 등등 역경을 헤치며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초심을 잃지 않는 그분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말씀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85년, 미국에서 망명 생활하던 님이 귀국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만사 제쳐놓고 김포공항으로 달려갔다. 손을 뻗으면 잡아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그 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동교동까지 행동을 같이 했다. 이렇게 질긴 인연을 갖고 있는 분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10분의 대통령을 모셨다. 훌륭한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통한 심정으로 보내드린 것도 마음 아프지만 내 생애 이토록 애통하게 보내드릴 대통령이 다시는 없을 것 같아 가슴 아프다.

 




태그:#김대중대통령, #노무현대통령, #봉하마을, #대중경제론,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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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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