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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마의태자에 대한 또 다른 학설을 다룬 <천추태후>
 신라 마의태자에 대한 또 다른 학설을 다룬 <천추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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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방송된 <천추태후>(연출 신창석 황인혁, 극본 손영민 이상민 강영란)에서 드디어 김치양(김석훈 분)의 정체가 공개되었다. 김치양은 본명은 김행이고 신라의 마의태자 손자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런 내용에 대해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역사교과서에는 660년 신라가 멸망하고 신라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끝까지 항복에 반대하다가 결국 개골산에 들어가 베옷을 입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고 저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과 상반되는 학설도 존재한다. <마지막 황제>라는 중국 영화를 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재판장에서 판사가 한 젊은이에게 묻는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젊은이는 대답한다.
"아이신지료 푸이(愛新覺羅 傅儀)."
판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참 이상한 성이구나."
바로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가 모택동에게 재판을 받는 장면이다.

'아이신지료'라는 말은 중국인들에게는 이상한 성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이를 우리 발음으로 읽으면 '애신각라', 즉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라'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청나라 황제가 어찌하여 이런 성을 갖게 된 것일까? 일설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의태자는 항복에 반대하였고 그의 아들 김행은 여진으로 건너가 금나라의 시조가 된다. '금'이라는 이름 역시 신라 왕족의 성인 김씨와 연관된 것이고 금을 계승한 후금(청) 역시 신라를 조상의 나라로 여긴 것이다.

마의태자의 손자 김행으로 밝혀진 김치양
 마의태자의 손자 김행으로 밝혀진 김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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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애신각라를 그들의 성으로 사용하였고 임진왜란 당시 조상의 나라를 돕겠다고 조선에 편지를 보낸 적도 있지만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운 조선은 청나라를 야만인 취급하며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였다.

이런 사실은 금나라 역사서인 <금서>에도 찾아볼 수 있다.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함보는 김행의 법명),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라는 글귀가 그것이다. 또한, 청나라의 역사서인 <흠만주원류고>나 송나라의 <송막기문>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강원도 지역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기록과 좀 다른 전설이 있다. 마의태자 김일은 신라 멸망 이후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강원도 쪽으로 숨어들어 설악산 주위에 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 부활을 꿈꾸었고 설악산 인근지역 토박이들에게는 그에 대한 전설도 많이 내려오고 있다. 또한, 그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까지 있어서 경주김씨 후손들은 지금도 그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부안김씨의 후손들은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여러 정황이나 기록을 미루어 보았을 때 마의태자에 대한 또 다른 학설은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가지고 있고 <천추태후> 제작진에서도 이를 드라마의 내용으로 활용한 것이다. 다만 드라마에서는 마의태자의 손자인 김행이 고려 동주 출신의 김치양 행세를 하며 신라의 부활을 꿈꾸는 것으로 드라마를 각색한 것이다.

어찌되었건 천년을 이어 온 제국 신라에 대한 미스터리를 <천추태후>에서 다루어 그 진실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은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이것이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에 동기부여가 되길 바란다.


태그:#천추태후, #김치양, #김행, #마의태자,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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