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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80년 신군부로부터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수로 복역하기도 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80년 신군부로부터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수로 복역하기도 했다.
ⓒ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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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신군부세력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주동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목하여 내란혐의로 기소하였고 결국 김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다. 그러나 사형 확정 후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정치인·지식인·문화인들의 김대중 구명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당시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리처드 앨런(Richard V. Allen) 전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2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방송된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 구명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미국 "DJ사형, 한국뿐만 아니라 한미관계에 있어서 재앙"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내려진 사형선고에 대해 앨런은 이렇게 말했다.

"구명운동은 수주간에 걸친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를 만나러 미국을 방문한 한국의 특사는 저에게 사형이 예정대로 집행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에 머스키(Ed Muskie) 국무장관과 미국 국무부, 카터 대통령, 그리고 미국의 정보부 모두가 김대중 대통령이 사형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구명운동에 나선 것일까? 이에 대해 앨런은 "레이건 대통령은 사형이  집행된다면 이것은 윤리적인 범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한미관계에 있어서 재앙이 될 것"이란 외교적 이유를 제시했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풀려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희는 일반적인 외교 채널과 비공식 채널을 통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이와 같은 것을 요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비공식적으로 말했습니다."

전두환과 레이건의 만남, '최초'도 '정상회담'도 아니다

1981년 1월22일자 조선일보. 그 당시 국내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 후 맞은 첫 외국 원수로 알려졌었다. 정부에서는 미국이 한국 군부정권을 인정한 것이라고 알렸었다.
 1981년 1월22일자 조선일보. 그 당시 국내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 후 맞은 첫 외국 원수로 알려졌었다. 정부에서는 미국이 한국 군부정권을 인정한 것이라고 알렸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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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정말 "한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앨런은 "다만 우리가 한 일은 전두환 대통령이 레이건 행정부 초기에 레이건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라고 밝혔다.

그 당시 국내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 후 맞은 첫 외국 원수로 알려졌었다. 정부에서는 미국이 한국 군부정권을 인정한 것이라고 알렸다. 앨런은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레이건이 독재자를 도왔다라고 하는 심각한 오해를 해왔다"고 말했다. 앨런은 그간 국내에 알려진 것과는 상반되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전두환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을 방문한 첫 외국인 방문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이와 관련해 잘못 알려진 사실과 역사의 왜곡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첫째로 정상회담이 아니었음에도 한국에서는 정상회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둘째 국빈방문이 아니었습니다. 셋째 그 방문은 공식의전이 아닌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와 관련해 알려진 내용은 부정확합니다. 이 때문에 심각한 오해가 발생했고, 수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독재자를 도왔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레이건 행정부 최초의 외국방문객이 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제가 직접 당시 자메이카의 에드워드 세아가(Edward Seaga) 총리를 초청했습니다. 세아가 총리가 최초의 방문객이었습니다. 사실을 확인하지 않으면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만남은 정상회담도 아니었고 국빈방문도 아니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만남은 '처음'도 아니었고 '정상회담'도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앨런은 오히려 "사실인즉 레이건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닌 김대중을 지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한국의 학자들, 기자들 그리고 논평가들은 지속적으로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평하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실이 사람들이 미국과 한미관계에 대해서 자신들이 유지하길 원하는 환상"만을 따르려는 것이 아닌가란 의문을 제기했다.

레이건 여사 만난 DJ, 생명을 구해준 데 대해 사의 표해

어쨌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으로 망명한 1982년 이후로도 수년동안 레이건이 독재자를 도운 것으로 생각해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앨런은 "김대중 대통령은 진실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김 대통령이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에 김 대통령의 여의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그간의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자 김 대통령은 매우 놀랐고 저에게 다음 날 이 사실을 자기 당 의원들에게 얘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앨런에 의하면, 김 전 대통령은 결국 '진실'을 알게 됐고 이후 방미시 레이건 대통령을 만나려고도 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당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매우 위중했고 그를 만날 형편이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대통령을 한번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저의 제안을 받아들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낸시 레이건 여사를 자택에서 만나서 레이건 대통령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데 대해 사의를 표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나온 앨런의 말들은 그가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의 참모였다는 점을 참고하여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실이 아닌 주장, 역사가 아닌 단순 회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꺼낸 말들은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던 '사실'을 거슬러 새로운 이야기들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과 한미관계에 대한 환상"을 언급한 그의 지적이 날카롭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실이 사람들이 미국과 한미관계에 대해서 자신들이 유지하길 원하는 환상과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태그:#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레이건, #전두환 , #리처드 앨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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