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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2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군 기무사가 업무 범위를 벗어나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고 폭로했다. 기무사 대위 신모씨는 쌍용차 관련 집회장면을 몰래 촬영하다가 발각됐는데, 신 대위의 수첩과 동영상에는 민주노동당 당직자와 시민단체 활동가 등의 사생활을 미행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군 관련 업무만을 하도록 되어 있는 군 정보기관 기무사가 법까지 무시하며 민간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미행하고 기록해 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그것도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사실이 폭로되어 이름까지 바꾸고, 민간인 사찰을 엄격하게 금지한 지 20여년만의 일이다.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 후퇴로도 모자라, 이제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악습과 폐해마저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언론에서는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조중동은 13일과 14일자 보도에서 민노당의 '기무사 민간인 사찰 폭로'를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한겨레, 경향신문이 이틀에 걸쳐 기무사 민간인 사찰의 문제점을 사설과 기사로 적극 보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방송도 다르지 않았다. 12일 방송3사는 메인뉴스에서 관련 사실을 보도하긴 했지만,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기사 배치나 기사량에 있어서 비중이 높지 않았다. 보도 내용에서도 KBS는 이번 사안을 '진실공방'으로 접근하며 오히려 기무사 쪽 반박에 비중을 두는 영상화면을 내보냈다. KBS는 제목부터 <'민간사찰' 진실공방>(하준수 기자)으로 뽑고, 앵커멘트와 보도내용에서도 "진실공방이 뜨겁다",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진실공방'으로 몰아갔다. 보도 영상에서는 "(신모 대위가) 평택역 집회 당시 적법한 수사활동을 벌이다 시위대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뒤 빼앗긴 것"이라며 폭행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기무사 측의 반박을 전하며 자료화면으로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 및 충돌장면을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기무사 쪽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마저 엿보였다.
심지어 13일 KBS와 SBS는 아예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고, MBC만 보도했다. 이날 MBC는 <"무차별 사찰">(임명현 기자)에서 기무사가 주로 미행했던 민노당 당직자 이석희 씨는 군과 관련 없는 40대의 중반의 일반인이며, 이 씨 외에도 군과 관련성이 없는 약사와 여성 연극인을 기무사가 감시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KBS와 SBS는 '말복' 운운하며 날씨소식을 전했는데,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소식이 '무더위'보다도 뉴스가치가 없는 사안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조중동이 '친정부'·'친MB' 신문이라 해도 기무사 민간인 사찰 폭로까지 뭉개는 모습에 진저리가 난다. 민간인 사찰 증거와 정황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에 있었던 가장 저질스러운 여론조작 방법이다. 이명박 정권을 두둔하고 감싼다고 해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군 정보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이런 사실을 보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것이며, 사회와 권력을 비판·감시하는 언론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알리고 싶은 내용만 알리고, 이명박 정권을 옹호하고 찬양하는 일만 하는 신문을 '언론'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조중동 방송까지 만들어 전파까지 낭비할 이유는 더더군다나 없다.
원래 구제불능 집단인 조중동은 차치하더라도, KBS와 SBS의 보도행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KBS의 공방처리식 물타기 보도태도와 SBS의 소극적 보도 태도는 방송법이 정한 방송의 의무를 현저히 이탈한 반사회적이며 기회주의적 행태이다. 지상파는 KBS와 SBS 경영진의 개인적 소유물이 아니다. 당연히 지상파 방송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기무사 민간인 사찰 폭로를 보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감싸고 국민들의 눈을 가리겠다는 얄팍한 눈속임일 뿐이다.

 

특히, 기무사를 은연중에 편들어주는 화면 편집까지 선보인 공영방송 KBS의 '이명박 정권 감싸기'는 처절해보이기까지 한다. 이러니 KBS의 신뢰도가 연일 추락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KBS 보도국에서는 신뢰도 하락을 우려하는 KBS시청자위원들에게 "KBS는 매일 시청률에서 상대사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며 '시청률이 시청자의 평가결과'라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메인뉴스 시청률이 앞 시간대에 방송하는 드라마의 시청률에 영향을 받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KBS가 '시청률'만 갖고 시청자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고 하는 것은 억지다. 정연주 사장 시절 신뢰도 1위를 놓치지 않았던 KBS가 사장이 바뀌자마자, 여러 여론조사에서 신뢰도가 덜어진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취재현장에서도 쫓겨나고,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다면 남은 것은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뿐이다.
아울러 이명박 정권에게 경고한다. 군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은 군사법원법 제44조에 따라 업무범위를 벗어난 심각 중대한 사안이다. 국민을 지배통치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행위이이자 헌법이 정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정면 부정하고 파괴하는 행위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시급하게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를 엄중 처벌하라. 지금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친서민' 운운하며 오뎅 먹고, 쌀국수 먹자며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만 하고 있다. 그리고는 촛불시위대와 인터넷 누리꾼들을 잡아들이고, 그것도 모자라 기무사까지 동원해 국민들을 감시·억압하고 나선 것인가? 눈가리고 아웅식의 '쇼'로 국민들을 속일 생각하지 말고, 기무사 민간인 사찰문제부터 제대로 사과하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언련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민언련, #논평, #기무사민간사찰, #KBS,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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