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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 산길을 일본이 5성급 특급호텔을 지으면서 도로까지 포장해 차량 출입이 용이하다.
▲ 나자르코티 비포장 산길을 일본이 5성급 특급호텔을 지으면서 도로까지 포장해 차량 출입이 용이하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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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500여m의 나자르코티에서 카트만두 시내까지는 1시간40여 분 걸린다. 실제는 더 짧은 길이지만 도로상태가 좋지 않은 탓이다. 나자르코티로 오르는 산길은 도로 폭이 겨우 차량 두 대가 비켜갈 정도로 좁지만 포장은 잘 돼 있다. 얼마 전 일본인이 5성급 특급호텔을 지으면서 포장했다는 것이다.

전력상태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산악휴양지로서 안성맞춤이다. 전날 운무가 가득한 빗속을 오를 때 보지 못했던 산골마을들이 새롭게 나타났다. 오던 길을 다시 내려가 카트만두 인근 도시 파탄시로 향했다. 가는 길에 군부대가 보였다.

가난한 네팔에서는 영국 용병부대인 '구르카'용병으로 선발되기 위해 18세에서 21세까지 많은 지원자들이 학원을 다니며 준비를 한다. 재수, 삼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치열한 입시지옥이 아니라 이곳에서는 '입대지옥'이 등장했다고 해야 할까.

청년들은 가난한 가족을 위해 영어시험과 체력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시험은 네팔에 있는 영국 캠프 안에서 치르는데 합격하면 영주권이 주어지는 등 부와 명예를 갖게 된다. 네팔은 그동안 힌두왕국으로 인도와 같은 카스트제도가 살아 있고 대부분 같은 종족끼리 혼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룡족(구르카)은 혼혈계다.

14~15세기 무렵 인도 무굴제국은 힌두교도들에게 이슬람 개종을 강요했지만 끝까지 버틴 부류가 바로 라자스탄인들이었다. 인도 델리 서부사막지대 부족인 이들은 무굴제국의 박해를 피해 네팔 서부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이주했다. 사막지대에서 눈보라치는 고산지역으로 이주한 라자스탄인들은 원주민인 네하르족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인 뒤 섞여 살게 되면서 나온 혼혈족이 바로 구룡족(구르카)이다.

이들은 다부질 정도로 어깨가 넓고 체격이 좋아 한눈에도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척박한 환경에서 오직 생존만을 위해 싸우며 살아온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독특한 전투기질을 갖게 되는데 이들의 용맹이 서방세계에 널리 알려진 건 19세기 초.

1814년 영국이 인도정복을 끝내고 네팔 정벌에 나서 이 구룡족과 전투를 벌이는데 승승장구하던 영국군에게 잔인한 패배를 안긴다. 야포와 소총으로 무장한 영국군의 캠프에 다가가 '쿠커리'라 불리는 단검으로 병사들의 목을 벤 것이다. 이 단검은 원래 힌두제사에 쓰일 염소의 목을 단칼에 자르도록 고안된 것으로 구룡족의 상징이며 네팔 관광기념품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 전투이후 영국왕실은 그들의 용맹과 전투력에 감복해 용병계약을 맺고 인도 폭동에 투입했는데 잔인한 진압으로 명성을 떨쳤다. 영국은 이들과 영구 용병계약을 맺어 오늘에 이르며 1,2차 세계대전과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항상 최전선을 맡아왔다. 이라크에서 무장단체가 네팔 민간인을 처형했던 사건도 바로 이라크 주둔 영국군의 선봉에 선 이 용병부대 탓이라고 한다. 현재 영국에는 구르카 용병 6개 연대가 배치돼 있다.

카트만두, 박타하르와 함께 3대 왕국을 이뤘던 파탄왕국의 궁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 파탄왕궁 카트만두, 박타하르와 함께 3대 왕국을 이뤘던 파탄왕국의 궁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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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졸고 있는 사이 가이드인 어르존씨가 도착을 알린다. 파탄시내 중심가에 있는 파탄왕궁이다. 카트만두와 바그마티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고대도시 파탄은 카트만두, 박타하르와 함께 3대 왕국을 이루다가 샤왕조시대 통일하면서 흡수된 곳으로 파탄왕궁과 듀발광장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파탄왕궁 일부는 군부대가 사용하고 있지만 듀발광장은 지난해 갸넨드라 국왕을 물러나게 만든 네팔국민들의 대규모 무혈시위가 집결된 민주성지다. 하지만 왕궁과 주변 거리의 차단이 거의 없어 어지러울 정도로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혼잡했다.

세계문화유산임에도 사실상 방치된 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것은 네팔의 경제사정과도 맞물려 있다. 국제사회가 나서서 개발과 관리를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자본만 투자하고 그 일은 자국민들이 해야 한다고 맞설 정도로 그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곳 광장은 갸네드라 국왕의 독재타도를 부르짖었던 대규모 시위가 열렸던 곳으로 유명하다.
▲ 듀발광장 이곳 광장은 갸네드라 국왕의 독재타도를 부르짖었던 대규모 시위가 열렸던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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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가 사는 사원으로 맨 윗층에서 하루에 두번 시민에게 공개된다.
▲ 쿠마리초크 네팔의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가 사는 사원으로 맨 윗층에서 하루에 두번 시민에게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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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한 곳의 처마 밑에 섬세하게 조각된 목조형상. 1500여년전에도 현대와 다름없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 파탄왕궁 왕궁 한 곳의 처마 밑에 섬세하게 조각된 목조형상. 1500여년전에도 현대와 다름없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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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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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필

이 왕궁주변에는 석가와 같은 사카족 거주지가 대부분이다. 오전, 오후 하루 두 번 시민들에게 공개한다는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가 사는 '쿠마리 초크'도 이곳에 있다. 4살 정도의 여자 아이들 중에 간택해 초경이 시작되면 그 여신의 직위를 박탈당한다. 그동안 이곳에서 사실상 갇힌 채 생활하며 스승으로부터 교육도 받지만 초경이 되면 신성이 사라지고 인성이 생긴다고 믿어 부정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치장을 하고 붉은 꽃과 비단을 두른 쿠마리를 향해 사진을 찍는 것도 금지돼 있다. 외부인과 접촉 및 대화도 할 수 없고 학교도 가지 못한다. 쿠마리가 되는 조건은 32가지로 매우 까다롭다. 완벽한 건강은 기본이고 검은 눈동자, 검은 머리, 그리고 별도의 테스트를 거칠 정도로 겁이 없어야 한다.

여신의 직위를 박탈당하면 아직 미성년으로 이곳을 떠나지만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불운을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 남편이 일찍 죽는다는 속설 탓에 결혼도 하지 못한다.

얼마 전 국제인권단체에서 아동학대라고 몰아세우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의 독특한 문화로 이해해야 할지 쉽게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한 종족의 종교라는 힘이 지배하는 나라 네팔의 오랜 악습이 만들어낸 슬픈 현실이다. 그래도 쿠마리로 지낸 동안 추앙받는 여신이다.

세상의 모든 신들이 모여사는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원숭이상 등 다양한 신들이 광장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듀발광장 한쪽에는 '나무의 집'이라는 뜻의 '카스트만덕'이 있다. 언뜻 보면 큰 정자처럼 보이지만, 수도 카트만두의 지명도 이곳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 목재건물은 문수보살이 분지의 물을 빼내고 큰 나무 한 그루를 잘라 만든 최초의 집이라고 전해온다.

이곳 파탄왕궁은 보기에도 무질서가 존재했다.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왕궁건물의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광장 곳곳에는 비둘기 떼들이 즐비했다. 여행사 사장님이 한 작은 목조건물로 안내했다. 이 건물 처마 밑에 고대의 성행위를 담은 목조형상이 시야에 잡혔다. 현대와 다름없는 형상이 섬세하게 조각돼 있다.

성스러운 마르모티강가 화장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시신이 태워지고 있다.
▲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 성스러운 마르모티강가 화장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시신이 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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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마르모티강을 건너 카트만두 시내로 들어갔다. 도착한 곳은 공항근처인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이다. 이곳 힌두사원의 화장터(버닝가트)에서 흘러내린 성스러운 강이 바로 바그마티강이다. 인도의 독실한 힌두교도들조차 이곳에 찾아와 죽음을 맞는다는 성지다.

매표소를 지나자 살갗 타는 노린내가 코를 찔러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꺼냈다. 작은 강 넘어 강가 화장터에는 나무 더미 위에 시신이 놓여 있고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있다. 작은 타원형 다리를 경계로 아래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그 위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신분제도인 카스트 탓이다.

돈이 많은 가족들은 충분한 장작을 구입해 시신을 덮어 태우지만, 가난한 가족들은 그렇지 못해 팔이 보일 정도이고 타다 남은 사체를 그대로 강물에 버리기도 한다. 웅장한 힌두사원은 신도가 아니면 출입할 수 없고 때가 되면 죽음을 맞기 위해 잠시 거주하는 경로당 건물도 즐비하다. 결국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때가 되면 식음을 전폐하고 스스로 죽음을 맞는 그들만의 종교적 구도 목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곡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경건하게 치르는 광경이 너무도 생소하고 충격적이다. 한쪽에는 기일을 맞아 제를 지내고 가족들이 둘러 앉아 음식을 먹는 모습도 보인다. 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에는 구경나온 외국관광객이나 시민들도 강 건너편에 앉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힌두교에서 불교는 한 종파로 본다"는 어느 종교학자의 주장처럼 힌두사원 입구에 세워진 우상은 어느 절에서 본 불상과 많이 닮아 있다. 이외에도 힌두교사원에서 불교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생활자체가 종교라는 힌두교나 머리를 깎으면 승려이고 결혼하면 신도로 구분된다는 티베트 불교나 모두가 한 줄기에서 파생된 것일까. 아니면 한 성인의 종교적 반성에서 탄생한 새로운 종파일까. 의문만 더해간다.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나서면서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힌두사원 뒷산에 장례를 치르러 가는 길이다. 카톨릭인지 개신교인지 알 수 없지만 산에서 내려온 네팔 소떼들이 몰려와 한바탕 소란도 펼쳐졌다.

이날 네팔관광청 장관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휴무일로 결정되면서 계획은 빗나갔고 저녁에는 네팔여행사협회 코니 회장 자택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가 이번에 네팔관광청 특보로 임명됐다는 소식과 함께 그의 자택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빈손으로 갈 수 없어 호텔 앞 꽃집에서 꽃다발도 준비했다. 코니씨 부인과 간다키여행사 아지만 전무가 반갑게 맞아준다. 음료, 술, 네팔음식이 차례대로 나왔다.

잠시 후 초대한 코니 회장과 직원들도 도착하고 그의 친구들도 초대됐다. 귀한 손님이 오면 지인들도 함께 불러 인사를 시키는 것이 풍습인지 모르지만 덕분에 네팔의 거물급 인사들도 만나게 됐다.

네팔항공 림부 회장, 네팔관광청 국장(차관급)인 쉬레스타씨, 잠시 귀국했다는 중국대사까지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또 잠시 다른 방으로 옮겨 관광청 쉬레스타 국장과 간단한 인터뷰도 가졌다.

다음날 우리는 1시20분 비행기로 귀국길에 올랐다. 코니 회장이 차량까지 보냈고 공항까지 환송을 나왔다. 너무 짧은 여정 탓에 룸비니, 포카라 등을 둘러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왕정국가를 벗어나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네팔의 활기찬 모습이 희망으로 다가왔다.

아직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고대유산을 제대로 관리하고 활용한다면 히말라야를 넘어 관광부국의 길도 멀지 않아 보였다.

[인터뷰] 네팔관광청 쉬레스타 국장
네팔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 어르존 사무국장의 통역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네팔관광청 쉬레스타 국장 네팔 아시아인권문화개발포럼 어르존 사무국장의 통역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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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관광청 차관급인 쉬레스타 국장과 네팔 관광에 대한 인터뷰를 가졌다. 관광청 장관과의 인터뷰가 성사되지 못해 실제 업무를 관장하는 직업공무원인 그의 답변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오는 2011년을 네팔 관광의 해로 정했는데 해외 홍보는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가?
"우리는 50만~100만 명의 해외관광객을 목표로 하고 있다. 히말라야 외에 덜 알려진 관광지와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 등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숙박시설 등 관광인프라는 1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 곧 한국 언론사도 초청해 홍보세미나도 열 계획이다."

- 현재 네팔의 정치적 안정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정치지도자들의 관광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비록 11년간의 내전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왕정을 폐지시키고 안정적인 공화국 정부로 탈바꿈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인정을 이루고 있다. 그동안 내전 중에도 외국인의 안전은 보장해왔고 많은 등반가들과 외국인들이 네팔을 방문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006년 9월에 정치지도자들이 모여 합의한 것이 관광 우선 정책이다. 지난 총선에서도 25개 정당 모두가 관광산업을 우선으로 공약할 정도다. 최근 네팔의 정치 변혁을 배우러 오는 관광객들도 있다."

- 전문 등반가들과 트레킹 관광객들이 네팔을 많이 찾고 있는데 앞으로 이들에 대한 정책은 변동이 없는가?
"히말라야 산맥이 동서로 800km에 걸쳐져 있고 6천 이상 봉우리만 1500개나 된다. 또 8천m 봉우리 14개 중에 8개가 네팔 땅에 있다. 그동안 등반가들 사이에서 8천m급 봉우리에만 집중적으로 관심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6천m~ 7천m급 봉우리도 서서히 인기를 얻고 있어 이를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8천m 급이 아닌 봉우리 몇 곳은 무료입장도 허용하고 있다. 트레킹에는 제한이 없다."

- 네팔관광청의 규모나 활동은?
"7년 전 민과 관이 주도해 창립한 정부기관이다. 현재 60명 정도 직원이 홍보 및 연구활동과 각종 관광민원과 중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여행의 취재에 협조해주신 네팔 간다키여행사와 서울 한네인여행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네팔친선협회 창립식이 8월 13일 오후7시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립니다.



태그:#네팔, #카투만두, #파탄왕궁, #파슈파티나트, #쿠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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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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