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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건강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빨리 쾌유하기를 기도하면서 오랜 전(1994년) 샀던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이다. 나온지 넉 달만에 59쇄를 찍었으니 많이 팔렸던 것 같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패배한 1년 후인 1993년 12월에 나온 책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1993년까지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자신이 경험한 삶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인류격변기를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함이라고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의미있는 말을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 도전과 응전의 숙명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도전에 끝까지 응전해 나가는 사람은 성공적으로 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7쪽)

 

죽는 순간까지 도전과 응전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생명이 경각에 달한 상태로 알고 있는 이 때 이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더 조여 온다. 이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 앞에서는 목놓아 울었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이 외침이 그를 짓눌렀고, 지금 병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던 그가 살아온 삶은 민주주의를 위한 끝없는 저항이었다. 김대중 개인은 약했지만 함께 민주주의를 향해 뭉치면 강했다. 반민주세력이 강해 두려워도 주저앉지 않으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무리 강해도 약합니다. 두렵다고, 겁이 난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무리 약해도 강합니다.(69쪽)

 

두렵다고, 겁이 난다고 주저 앉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달걀로 바위 치기다. 너 혼자 나서봤자 너만 손해야. 그만 눈감고 넘어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권력이 민중을 세뇌시킨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다. 민중은 이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 세뇌 교육에 저항해야 한다. 저항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인민의 것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 역사가 바로 인민 주권을 위해 저항한 역사이다. 권력은 인민에게 주권을 그대로 내어준 일이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바로 이것을 주문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저항하라, 그러면 인민이 주인이 될 것이고. 인민 주권 사상이 제대로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새로운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세기 역사는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독재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의 역사"라고 말한다. 탁견이다. 독재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 지금 우리 시대를 보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망각하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 승리했다고 생각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재와 민주주의 관점에 바라보았다. 우리가 새겨야 할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일 히틀러와 일본 군국주의를 그 예로 들었다. 이들 국가는 공산국가가 아니었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대결에서 민주주의는 승리한다. 우리가 새겨야 할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민주주의 역사가 오롯이 있다고 말한다. 만적의 난, 충주 노예 발란, <홍길동전>을 통한 허균의 저항, 진주 민란, 홍경래의 난을 예로 들면서 이들은 한결같이 천부인권 획득을 위해 싸웠다고 말한다. 이름없는 광대와 장돌뱅이들이 만든 '판소리 춘향전'에도 춘향이의 인권의 주장과 투쟁이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다면서 춘향이 말한 "기생도 사람이다"라면서 부르짖었던 말을 사람들에게 기억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으로 장대한 인권과 여권의 선언이며 목숨을 바친 저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거기에는 그 당신 민중들의 자유 연애관이 분명히 드러나는데, 이 도령과 춘향의 첫날밤의 사랑의 장면이 나타났다.(123쪽)

 

우리는 춘향전을 오로지 한 남자만을 위한 여성의 정절로 이해하지만 김대중은 춘향전을 민중들의 인권과 저항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놀랍다. 좋은 정치를 통해서 억압받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굶주린 사람에게 직장과 먹을 것을 주고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에 정치를 '예술'이라고 말했다.

 

정치 혐오증을 강조하는 이들과 정치를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과 비교하면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다. 정치 혐오증을 강조하는 이들 대부분은 인민을 위한 정치보다는 자신들 권력을 위한 정치를 더 많이 한다. 그렇게 하고 정치 혐오증을 부추긴다. 정치하는 놈들은 똑같다고.

 

이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가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과 권력부패, 쿠테타 같은 사건을 너무 쉽게 넘어간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거세게 항의하고 비판하던 국민들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흐지부지 넘어간다는 것이다. 시시비비가 없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자라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민권력을 강조하면서 각성하는 시민이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국민이 잘나야 하며, 국민이 현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민족의 정통성, 민주 정통성, 정의사회, 양심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제값을 가지고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시시비비를 먹고 자란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시시비비를 무시한다. 민주주의가 시시비비의 장인데도 거부한다.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판을 받아들지 않는 정권이 바로 독재정권이고 성공하지 못한다.

 

"현대 정치는 국민에 의한 정치입니다. 국민을 무시하고 앞질러 갈 수도 없고, 국민에게 뒤쳐저서 낙오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국민의 손을 잡고 같이 가야 합니다. 국민으로부터 고립된 뜀박질은 실패할 뜀박질입니다. 국민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달려간 역사상의 그 어떤 독재자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172쪽)

덧붙이는 글 | <김대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김대중 지음 ㅣ 김영사 펴냄 ㅣ 4,900원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 개정판

김대중 지음, 김영사(2005)


태그:#김대중,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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