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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설산이 펼쳐진 히말라야'. '네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다. 수많은 등반가들의 꿈을 안겨주고 때론 통째로 삼켜버린 8천m급 봉우리들이 즐비한 곳. 세계 산악인들이 늘 그리워하며 한 번쯤 발자국을 남긴 네팔.

 

국내 여성 산악계의 쌍두마차인 故 고미영 대장이 히말라야 14좌 봉우리 등정 도전 가운데 열 한 번째인 낭가파르바트(8126m) 등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하산하다 안타깝게 추락했고 남은 꿈을 접은 채 주검으로 돌아온 다음날 우리는 카투만두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여성 등반가의 꿈을 삼켜버린 히말라야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2년 전 이맘때쯤 전남 고흥의 한 섬에서 만났던 네팔의 젊은 화가 '조쥬'씨는 생전 처음 바다와 섬을 봤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산봉우리를 보며 살아가는 그 '미지의 세계'가 더 궁금했다.

 

비수기지만 비행기 좌석 빈자리 없어

 

인천공항에서 6시간반을 날아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 튜리듀반공항에 도착했다. 돌아올 때는 히말라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뒤에서 밀어주는 탓에 30분이나 단축됐다.

 

관광국가인 네팔의 성수기는 10월~11월. 우리가 출발한 7월 20일은 비수기라고 하지만 빈 좌석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빈자리가 없었다. 가족단위 여행객과 이주노동자도 눈에 띄었다. 그들이 한국에서 안고 간 보따리는 희망인지, 절망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도착하니 현지시각으로 12시반. 서울 보다 습기가 조금 덜했지만 더위는 별 차이가 없었다. 해발고도 1281m. 네팔 분지 중앙에 위치한 카투만두는 공항청사부터 시내까지 큰 고층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청사를 나서자 네팔여행사협회 회장인 코니씨 일행이 직접 마중을 나와 반갑게 맞아줬다. 귀한 손님에게 표시하는 얇은 나일론 소재의 하얀 목도리를 걸어줬다. 자신이 운영하는 여행사 마크가 인쇄돼 있는데, 귀한 손님에 대한 최대의 예의표시라고 한다.

 

비즈니스 목적으로 떠난 한국의 여행사 대표일행에 묻혀(?) 간 나로서는 극진한 대우에 괜히 우쭐해졌다. 이번 여행의 통역 및 가이드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로 일하며 네팔이주노동자단체를 만들어 이끌었던 어르준(38)씨가 맡았다. 그는 아리안족인으로 네팔로 돌아와 여행사와 가이드, 그리고 인권단체 일을 하고 있었다.

 

'외세의 침략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평화의 나라, 38개 종족·103개의 부족어가 존재하지만 종족 간 다툼이나 갈등이 전혀 없는 나라, 공통어인 네팔어를 모르는 국민이 20%나 되는 나라'. 어르준씨가 호텔로 향하던 차안에서 들려준 네팔의 간략한 특징이다.

 

호텔로 향하는 도로는 상당히 번잡했다. 낡은 중형버스와 일제 스즈키 택시, 오토바이가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고 중앙선까지 넘나들며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신호등도 없지만 서로 경적으로 신호를 보내며 요리조리 잘도 피해간다. 서로 인상을 쓰거나 삿대질하는 일도 없다. '여유만만' 살아가는 그들이 부럽다.

 

도착한 로얄 신지호텔은 붉은 벽돌로 지워진 7층 건물이다. 오면서 보니 여기저기 온통 붉은 벽돌건물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일단 짐을 풀고 함께 동행한 여행사 사장님 친구와 통역가이드도 없이 시내관광에 나섰다. 차량은 현지 여행사에서 내준 작은 승용차로 다행히 운전기사가 간단한 영어는 알아듣는다고 했다.

 

무너진 왕정의 마지막 왕궁은 새로운 관광지

 

우선 지난해 민중봉기로 물러난 마지막 국왕이 살았던 왕궁으로 향했다. 지난 5월부터 개방했다는데,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왕궁은 이제 네팔 국민들의 새로운 관광지로 등장한 듯 내국인들이 더 많았다.

 

마지막 국왕 가족이 살았던 그대로 보존돼 있고 역대 국왕들의 초상화가 인상적이었다. 방문국 귀빈들의 선물이나 기념사진도 잘 보존돼 있다. 무너진 왕국의 초라한 단편이 그대로 공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네팔의 위대한 민중혁명이 궁금했다. 그래도 군인들의 경비는 옛 그대로 인 듯 삼엄하고 사진촬영도 금지돼 있다.

 

다음 행선지는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타밀광장과 시장거리다. 등산용품점과 만다라 판매점, 손재주가 뛰어난 그들의 각종 기념품점, 한 여름인데도 양털로 만든 울 제품을 늘어놓은 점포까지 즐비했다.

 

 

그들은 외국 관광객을 붙잡고 귀찮게 흥정도 하지 않을 정도로 영업방식은 느긋했다. 한참을 돌고 도니 배가 고파 간단한 분식점을 찾았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11시쯤 기내식과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잠들었고 한 시간 넘게 걸어 다녔더니 허기가 진다.

 

겨우 찾은 분식점. 이 나라의 음식이 궁금해 도너츠 튀김을 시켰다. 소스에 찍어 먹지만 속은 텅 비었고 빵도 아닌 튀김도 아닌 것이 겨우 허기진 배를 채워준다. 솔직히 맛은 전혀 못 느낄 정도로 심심한 맛이다.

 

아직 호텔로 돌아가기로 약속한 시간이 남아 카투만두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고지대로 향했다. '원숭이사원'으로 불리는 스와얌부나트 사원이다. 사원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원숭이들이 먹을 것을 노리고 있는 등 온통 원숭이 천국이다. 계단을 오르자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이상한 향내가 코를 찌른다.

 

 

사원으로 올라서니 네팔 분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드넓은 분지에만 5백여만 명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 분지는 원래 거대한 호수였던 것을 4백여 년전 석가모니의 제자 문수보살이 가로 막은 큰 바위산을 칼로 내리쳐 물을 빼내고 도시가 생겼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 분지 안에 수도인 카투만두를 비롯해 파탄 등 몇 개 도시가 공존하고 있다. 10층 이상 고층빌딩은 보이지 않지만 붉은 벽돌로 쌓은 저층건물이 집단을 이루고 있고 군데군데 숲도 보인다. 하지만 하얀 설산은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사원입구부터 마치 운동회 때 걸린 만국기처럼 경전을 깨알처럼 적은 색색의 깃발 '룬다'가 이색적이다. 하얀 석회석 사원은 중세도시로 돌아간 느낌이다. 계속된 향내에 속이 거북해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은 호텔 중국식당에서 코니 회장이 주최하는 만찬이다. 그가 운영하는 여행사 직원 몇몇이 참석했다. 네팔은 많은 민족이 공존하는 사회지만 석가와 같은 아키족을 비롯해 아리안족, 몽골계인 구룡족, 티벳족 등 4개 민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 힌두왕국 무너지고 공화국 정부 등장

 

얼마 전까지 네팔은 수 천년을 이어온 왕정국가였다. 친형인 비렌드라v국왕 가족을 암살하고 권력을 차지한 동생 갸넨드라 국왕은 마오주의 반군진압을 명분으로 군대를 5만에서 10만v명으로 늘려 독재정권을 유지하다가 민심을 잃었다. 결국 국민봉기에 부딪혀 지난해 5월 마침내 왕정이 폐지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네팔 민중들의 위대한 승리였다. 7개 정당이 연합해 마오주의 반군과 평화협약을 맺었지만 국왕은 인정하지 않았고 총파업 19일 동안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제 본격적인 공화정이 시작된 지 겨우 1년이 조금 넘은 셈이다.

 

하지만 왕족들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아 네팔국민들은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왕정시대에는 적당히 국민들에게 베풀면서 달랬지만 새로 들어선 정부는 국고가 바닥나 민중들의 생활이 궁핍해지면서 다시 왕정을 그리워하는 국민들도 생기고 있다는 것이 오늘의 네팔 현실이었다.

 

힌두교가 80%가 넘는 네팔은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자유 종교국가를 선언했다. 이로써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힌두교 왕국은 사라졌다. 네팔은 석가모니의 탄생지 룸비니가 있고 비록 난민 신세지만 중국의 핍박을 피해 히말리야를 넘어온 티벳족들이 정치와 종교지도자인 달라이라마를 내세운 티벳불교가 융성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취재에 협조해주신 네팔 간다키여행사와 서울 한네인여행사측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어서 <나마스테! 네팔을 만나러 가다>2-부끄러운 듯 드러낸 히말라야 설산.


태그:#네팔, #카투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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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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