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8월 15일, 광복절이다. 우리에게는 나라를 다시 찾은 광복절이지만 일본에게는 '대일본제국'이라는 허황된 꿈이 무너진 '패전일'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오는 곳이 있다. 바로 일본의 전범들이 '모셔져' 있다는 야스쿠니 신사다.

일본 총리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이 참배를 하고 우익 단체들은 일본 전범들을 기리는 시위를 야스쿠니 앞에서 한다. 야스쿠니를 반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야스쿠니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8월 15일 무렵의 야스쿠니 앞은 늘 시끌벅적하다.

국내에서도 광복절을 전후해서 일본을 규탄하는 이야기를 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일본 전범들의 만행을 공개하기도 한다. 야스쿠니에 합사한 한국인들의 유족들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뿐이다. 그 때 일본인들의 만행을 찬양했던 친일파들이 여전히 활개치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인 감독 리잉은 '일본들에게 야스쿠니는 어떤 의미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10년의 취재 기간을 거치며 2005년,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 논란이 불거질 시점에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벌어진 일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서 일본 장교들이 차고 다녔던 '야스쿠니도'를 만들고 있는 92세의 장인 가리아 나오하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광복절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에서 이 영화가 우리에게 공개된다. 객관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다큐멘터리 <야스쿠니>다.

야스쿠니, 그곳은 작은 '대일본제국'이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하는 우익단체 사람들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하는 우익단체 사람들 ⓒ 위드시네마


영화는 가리아 나오하루를 비롯해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지만 인터뷰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인터뷰에 초점을 너무 맞추게 되면 자칫 재미를 잃을 수가 있는데 <야스쿠니>는 인터뷰에서 주제를 찾아내기보다는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을 토대로 주제를 찾아나간다.

8월의 야스쿠니 신사 앞은 그야말로 '광란'의 물결이다. 우익단체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거창하게 참배를 하고 대일본제국을 그리워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일본도로 '포로 100명 목베기 내기'를 한 두 명의 장교가 전범이 아니라는 서명운동도 야스쿠니 앞에서 펼쳐진다. 물론 이 두 장교도 야스쿠니에 있다.

어느 날 한 미국인이 성조기와 일장기를 들면서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1인 시위를 한다. 이를 보는 일본 노인들의 모습은 둘로 나누어진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미국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핵폭탄을 터트린 주범'이라며 미국을 욕하는 사람도 있다. 여하튼 여전히 대일본제국의 향수에 빠진 이들은 야스쿠니를 신성시한다.

한편, 이 곳에는 징용으로 끌려가 끝내 사망한 한국인, 대만인, 중국인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합사되어 있다. 유족들은 시신을 돌려받으려 하지만 야스쿠니는 침묵만 지키고 있다. 야스쿠니는 이처럼 죽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 속에 살아숨쉬는 작은 '대일본제국'인 셈이다.

객관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

 야스쿠니도를 만드는 가리아 나오하루

야스쿠니도를 만드는 가리아 나오하루 ⓒ 위드시네마


리잉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일본의 치부를 드러내고 만행을 규탄하기보다는 '왜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를 계속 지키려하는가?'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풀어간다. 이 점이 자칫 일본의 만행을 파헤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객관성의 유지는 이 영화를 통해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의 관객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며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감독은 야스쿠니 신사로 대표되는 일본의 군국주의는 결국 '천황제'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천황의 뜻이라면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일본에서 당시의 일왕 히로히토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 후에는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을 들여보냈다. 그러면서 야스쿠니를 작은 '대일본제국'으로, 영원히 제국을 꿈꾸는 곳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거기에 일본 우익들은 이 야스쿠니 신사를 지키며 자신들의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8월 15일, 마침내 고이즈미는 신사참배를 하고 우익들은 기념 행사를 한다.

그 순간 이를 방해하는 중국 청년이 나타나고 청년은 일본인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일본인들의 멸시도 받는다. 적어도 식민지 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상황이 야스쿠니 앞에서는 일상처럼 펼쳐진다.

일본인을 무조건 욕할 수 없었던 이유

 일본인들에게 폭행당한 중국인 청년

일본인들에게 폭행당한 중국인 청년 ⓒ 위드시네마


영화의 마지막은 2차대전 당시의 자료화면과 함께 전쟁을 일으킨 히로히토(裕仁)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여기서 떠오른 말이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죽기 직전에 한 말이다.

"유인(裕仁)아, 유인아, 네가 정말 큰 죄를 지었구나!"

<야스쿠니>는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언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천황제, 그로 인해 파생된 군국주의, 그리고 그로 인해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일본인들은 그 때문에 지금도 범죄자 취급을 받고 반성하지 않는 민족으로 지금까지 비난받고 있다. 잘못을 시인하는 일본인들도 분명히 있지만 우익의 방해 공작 속에 묻혀지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리잉 감독 또한 결국 일본 우익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상영됐고 일본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야스쿠니의 진실을 제대로 알리겠다는 마음이 일본인들에게도 통한 것이다.

한국 관객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본 우익들의 행동을 보며 '저런, 반성할 줄 모르는 놈들'이라고 흥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이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 존재하고 있고 그들은 과거의 부끄러움도 모른 채 오히려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야스쿠니>를 보면서 일본인들을 싸잡아 비난하기 어려웠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야스쿠니 리잉 광복절 히로히토 고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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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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