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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호떡과 똑같다.
▲ 꿀맛 뿌뿌사(pupusa) 아무리 봐도 호떡과 똑같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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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문화, 다른 생각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 하지만 때론 너무나 비슷한 생활, 똑같은 생각 때문에 신기할 때가 적지 않다. 언어도 다르고 피부도 다른 지구 반대편에서 나는 감정선을 따라 종종 웃기도, 울기도 한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서 나는 그만 포복절도 하고 말았다. 익숙함이 어느 덧 그리움이 된 하나의 음식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웬 호떡이야?"

정말이었다. 호떡이었다. 배고픔 때문에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지만 그래도 시신경이 제 구실을 하고 있다면 수정체에 비친 것은 분명 호떡 맞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외딴 길 옆 빈궁한 노점에서 파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흔한 간식이었다. 외국인이라 쑥스러운지 단돈 1달러에 8개라고 흘리는 말에 얇은 귀가 팔랑팔랑. 

간신히 가랑비나 피할 수 있는 빈궁한 이곳에서 나는 엘살바도르 호떡, 뿌뿌사를 만났다.
 간신히 가랑비나 피할 수 있는 빈궁한 이곳에서 나는 엘살바도르 호떡, 뿌뿌사를 만났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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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판 위에 곱게 익어가는 냄새가 내 안에 잠든 식신본능을 일깨운다. 누런 종이를 건네기도 전에 이미 손으로 들어 올려 한 입 베어 물었다. 와우! 꿀이 흘러나왔다. 뜨거운 것도 잊은 채 나머지 남은 부분을 두 입 더해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이따금 오토바이나 차가 지나가다 호떡을 사기도 했다. 허름한 가게 옆에 서서 살사 소스를 찍어 먹는 나는 처지에 상관없이 뭐가 좋다고 싱글벙글.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감동의 굴레에 속박시켜 버렸다.

"주스는 무료랍니다."

투 고(to go)가 아닌 직접 먹는 사람에게는 주스 한 잔이 덤으로 주어진단다. 보통 중미의 서민 식당에서 주스는 기본 옵션으로 나오다. 그런데 여기도 그만한 서비스가 제공된다니 그저 황홀할 뿐. 그래도 싼 가격에 호떡을 양껏 먹고 주스까지 먹으려니 되레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어느 덧 8개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이 얇은 반죽 속에 주머니 사정에 따라 고기나 치즈, 콩을 넣어 먹는다. 쌀음료 맛을 내는 오차타와 같이 먹으면 최고.
▲ 가난한 서민들의 음식 이 얇은 반죽 속에 주머니 사정에 따라 고기나 치즈, 콩을 넣어 먹는다. 쌀음료 맛을 내는 오차타와 같이 먹으면 최고.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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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뿌사(pupusa). 이렇게 불리는 호떡 동생은 엘살바도르 서민들의 주식이다. 그저 한입거리 간식처럼 보이지만 이른 아침 시장통 노점상에는 이 뿌뿌사 서너 개로 아침을 때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뿌뿌사와 오차타(쌀음료 비슷한 맛이 난다)면 햄버거에 콜라와는 비견조차 거부하는 최고의 식사 콤보가 된다.

가난한 서민들의 대표 음식 뿌뿌사. 만드는 방법은 호떡과 흡사하다. 얇은 옥수수 반죽(Corn masa)에 고기나 치즈, 혹은 콩을 넣어 기름에 올려놓으면 그만이다. 하얀 몸통 속에 있는 까만 내용물이 진해지면 그 때가 다 익었다는 신호가 된다. 그러면 손님은 다 된 식탁 접시에 손가락만 얹으면 된다. 

도로 옆에 곡물을 말리는 모습. 우리 농촌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로 옆에 곡물을 말리는 모습. 우리 농촌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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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뿌뿌사는 엘살바도르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온두라스에서도 대중적 음식으로 애용되고 있다. 만들어 먹는 음식 중에 재료비가 가장 적게 들기 때문이다. 내가 먹은 1달러에 8개라고 했던 CD 크기의 뿌뿌사 속에는 콩이 들어가 있었다. 가난한 주인이 고기나 치즈를 넣을 재료가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아침 시장이나 동네 식당에서 마주할 수 있는 뿌뿌사에는 치즈나 고기가 들어가 있다. 당연히 가격이 두 배 이상이거나 양이 반 이하로 줄어든다. 이 엘살바도르판 호떡은 매콤한 살사 소스와 곁들여도 좋지만 설탕에 찍어먹어도 맛이 기가 막히다. 그리고 마지막 손가락에 남은 단맛의 잔향까지 훑어야 비로소 식사가 마무리 된다.

서민들의 고단한 체취가 묻어나는 곳. 이곳에서 먹는 한 끼 식사가 여행의 진정한 맛이다.
▲ 시장 서민들의 고단한 체취가 묻어나는 곳. 이곳에서 먹는 한 끼 식사가 여행의 진정한 맛이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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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에서 뿌뿌사의 맛을 느껴보고자 한다면 길거리 노점상에 가거나 허름한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서민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특별히 콩으로 가난하게 차린 뿌뿌사 한 입 물어 젖히고는 주어진 내 삶을 깊이 감사해 보자.

그들의 고된 체취가 목구멍을 타고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T본 스테이크도 결코 줄 수 없는 평담해진 자아를 감득할 것이다. 참, 센스 만점 여행자라면 절대 나이프와 포크 가지고 깔끔 떨지 않는다. 손이 진리다. 그것이 제대로 맛을 보는 포인트다.

허름한 자전거 여행자를 보던 노점 아주머니의 후덕한 인심이 더 기억에 남던 뿌뿌사, 엘살바도르의 잔잔한 추억에 연신 입맛만 다셔본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홈페이지 - http://www.vision-trip.net



태그:#엘살바도르,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PUPUSA, #중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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