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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 꼭 돈벌레 같아."
"......."

전화기 너머로 들려 온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 꼭 돈벌레 같아"라고 모질게 쏘아붙인 딸아이의 한 마디를 들은 시아는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에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아이에게서 엄마가 돈벌레라는 말을 들은 시아는 전화를 끊고 털썩 주저앉아 꺽꺽 울부짖었다. 주인집 꼬마들이 무슨 일인지 놀라서 급하게 달려왔다.

딸아이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철이 들만큼 들 나이다. 시아는 딸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에 인도네시아를 떠났다. 몇 해 동안 아침마다 아이의 머리를 땋아 올리고, 교복을 반듯하게 다려서 학교에 보내던 그녀는, 어느 날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홍콩으로 출국했다. 변변한 일거리가 없는 시골에서 정기적인 벌이라곤 없는 아이 아빠를 믿고 아이를 키우기엔 살림이 너무 빠듯했다. 출국 당시만 해도 시아는 한 삼년만 가사노동자로 일하기로 작정하고 모질게 마음을 먹었었다.

시아가 일하게 된 곳은 맞벌이 가정이었는데, 그들에겐 이제 막 걸음마를 익힌 딸아이가 하나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고용주는 친절했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리 낯선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삼년을 지내고 귀국하려 할 즈음에 고용주의 부인이 임신을 하였다. 고용주는 한 해만 더 있어 줄 것을 간청했다. 다행히 홍콩은 고용주의 동의만 있으면 체류 연장이 가능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를 연장한 것이 벌써 8년이 넘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엔 한 해에 한 번씩 갔다 왔고, 그때마다 시아는 아이가 커가는 모습에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남들처럼 곁에서 돌봐주지 못해 늘 안쓰러움이 있었지만, 시아는 해외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해서라도 아이 교육을 시킬 수 있어서 행복했다. 시아는 그런 자신의 입장을 딸아이도 잘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엄마가 고생하며 자신을 키우고 있는 줄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딸아이의 한 마디는 그녀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말았다. 자식 제대로 키우려고 남의 자식 키우는 부모 심정을 사춘기 딸애는 코털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내 새끼도 키우다 보면 속이 터지고, 미울 때가 많을 텐데, 남의 자식 키우느라 고생 많지. 그게 다 나 때문이잖아, 나중에 내가 엄마 잘 모실게요"라며 살갑게 엄마를 위로해 줄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모질게 엄마를 쏘아붙일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시아는 며칠을 끙끙 앓아누웠다.

"이제 그만 귀국할까? 아니야, 아이가 이제 고등학생인데, 최소한 졸업할 때까진 확실한 돈벌이가 있어야지. 아냐. 이렇게 고생하면 뭐 해? 제 자식 키우려고 남의 자식 젖 물린 엄마 심정을 십분의 일이라도 알아주기나 해?"

세상엔 머리로만 이해할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이라고 했던가?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 되고서도 부모 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를 낳고 키워본 적이 없는 어린 아이 투정이려니 하면 좋으련만 시아는 딸아이의 한 마디가 사무치고 또 사무쳤다.

시아는 남의 자식 키운다고 제 자식 뒤로 하고 떠난 부모 심정을 어디 가서 하소연하려 해도 누구 하나 편들어 주는 이 없었다. 다들 "일이년도 아니고, 팔년이면 됐어. 이제 들어 와. 거기서 십년 일한다고 부자 될 것 같아? 얘가 엄마 없이 삐뚤어진 거 말고 달라진 거 하나 없어. 그러니까 어서 들어 와."

시아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홍콩에서 십년 일한다고 부자 되지도 않고, 애가 엄마 없이 삐뚤어진 거 말고는 달라진 거 하나 없다'고 빈정대는 사람들이 더 야속했다. 그 동안 자신이 벌어서 보낸 돈이 한두 푼이 아닐 텐데, 그 돈을 누가 다 썼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8년이라는 세월 동안 시아를 해외 이주노동으로 떠민 건 가난이라는 현실이기도 했지만, 시아가 가사노동자로 일해서 번 돈을 가볍게 홀짝홀짝 받아먹던 사람들의 무언의 압력이기도 했다.

이제 시아가 인도네시아로 귀국하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돈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매몰차게 자신을 비난만 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맡길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태그:#이주노동, #가사노동자,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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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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