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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한국은 정말 전세계가 시샘하는 '인터넷 강국'일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한국은 정말 전세계가 시샘하는 '인터넷 강국'일까?
ⓒ 오마이뉴스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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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자. 당신은 정보기술에 관심이 있는가? '그렇다'고 답했다면 한 가지 질문이 더 기다리고 있다. 한국인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불행한 사람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한국은 모든 나라가 시샘하는 '인터넷 강국' 아니던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나라 중 하나고, 한국 기업이 만든 휴대전화가 세계를 휩쓸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미래가 곧 정보통신 기술의 미래가 아닌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세계적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사용자는 많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인터넷 환경을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다. 특정 웹브라우저 아니면 인터넷 서점에서 책 하나 주문 못 하고, 개인의 치명적 정보가 담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게시판에 댓글 하나 못 다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우울한 이야기를 보태야 할 것 같다. 한국은 인터넷 환경뿐 아니라, 정보통신 산업의 미래조차 매우 어둡다. 한국기업이 자랑하는 정보기술의 경쟁력은 제조기술, 즉 '하드웨어'에 한정되어 있다. 문제는 세계 정보통신 산업의 축이 이미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 변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애플의 아이폰과 아마존의 전자책 '킨들'이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보조수단이 되다

애플의 아이폰은 전화회사의 간섭 없이 탄생한 첫 번째 휴대전화기였다.
 애플의 아이폰은 전화회사의 간섭 없이 탄생한 첫 번째 휴대전화기였다.
ⓒ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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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작동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정반대로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을 구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아이폰은 전화회사의 간섭 없이 탄생한 첫 번째 휴대전화기였다. 그 때문에 '전화기'라는 하드웨어의 틀을 넘어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에 따라 기능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었다.
아이폰은 나침반에서 동영상편집기에 이르기까지 수백 가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으며, 이 순간에도 기능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프트웨어는 한국 정보통신산업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소프트웨어는 창의력, 그리고 한 사회의 '생활양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성과를 얻을 수 없다. (당연히 대통령이 관료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왜 이런 거 못 만드느냐'고 호통쳐서 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가 국제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휴대폰은 한국기업이 경쟁력을 갖춘 상품이지만, 이 경쟁력은 휴대폰이 인터넷과 분리되어 있던 환경에서 얻어진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앱스토어(App Store)',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이 보여주듯 휴대폰은 이제 '인터넷 기술'이라는 소프트웨어의 영역 속으로 진입했다. 짧은 글로 소통하고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트위터'의 인기는 모바일 인터넷이 어떻게 인터넷 전체의 소통방식을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구글 긴장시키는 페이스북의 힘, 어디서 오나

하드웨어의 위상이 변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더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소프트웨어의 영역이다. 소프트웨어는 더 이상 전문가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모든 사용자가 기여하는 공동참여의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집단지성'이나 '민주적 소통 공간'으로서 인터넷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정보통신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인터넷을 둘러싼 가장 볼만한 싸움은 구글과 페이스북 사이에서 벌어지는 암투다. 25세 청년이 최고경영자인 페이스북은 적자도 못 면한 신생기업이지만, 그 막강한 구글마저 떨게 할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를 눈치챈 마이크로소프트는 2007년 페이스북에 2억 4천만 달러(3천억 원)를 투자했다. 페이스북에 눈독을 들이던 구글은 뒤통수를 맞았다.

페이스북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매력적인 것일까? 바로 일반 사용자다. 2억 명이 넘는 사용자들이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글·사진·링크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이 정보는 구글 검색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정보의 질 면에서도 구글과 차별성을 갖는다. 제삼자의 글을 기계적으로 긁어오는 구글과 달리 페이스북은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와이어드>의 프레드 보겔스타인도 지적했듯, 페이스북은 이미 '제2의 인터넷'을 구성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어떻게 이런 역량을 갖게 되었을까? 이유는 하나다. 사용자들이 쉽고, 편리하고, 안전하게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것뿐이다. 물론, 이런 환경을 제공할 수 있던 데에는 인터넷상의 발언을 보호하는 미국의 법적·제도적 장치가 있었다. 앞서 '소프트웨어'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양식'의 문제라고 말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터넷 사용자로 하여금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게 하려면, 어떤 정보를 공개하고 어떤 정보를 숨길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 감시사회에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주커버그의 말이다.

인터넷의 오지, 한국을 보다

지난 2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은 과천정부청사를 방문해 '현장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닌텐도 게임기를 우리 초등학생들이 많이 갖고 있는데 이런 것을 개발할 수 없느냐"고 말했다.
 지난 2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은 과천정부청사를 방문해 '현장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닌텐도 게임기를 우리 초등학생들이 많이 갖고 있는데 이런 것을 개발할 수 없느냐"고 말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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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보통신에 관심을 가진 한국인은 불행하다'는 말이 아주 뜬금없는 소리는 아님을 이해했을 것이다. 여기서 '정보통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일반 사용자뿐 아니라, 정보통신사업자와 뉴미디어를 연구하는 학자 모두에 해당한다. 한국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외국의 인터넷 환경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본인 확인이 안 되면 이메일이나 미니홈피 신청이 불가능하고,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 글이 법적 제재를 당하는 것은 물론, 이메일조차 언제든 압수수색할 수 있는 나라에 살면서 국제환경의 보편적 상식을 익히기가 쉽겠는가? (한국 검찰은 개인의 이메일을 '물건'으로 간주한다. '하드웨어 마인드'는 한국 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1년 반 동안 펼쳐진 온라인 정책을 볼 때, '민주주의'나 '소통' 차원에서 인터넷을 말하는 것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현 정부의 유일한 관심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돈' 말이다. 현재의 인터넷 환경이 계속 된다면 (사이버 모욕죄 신설 이전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민주적 소통은 고사하고, 한국 정보통신산업 자체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것이다.

앞으로 6회의 기획기사를 통해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세계 정보통신 환경을 살필 계획이다.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또는 '공짜경제학(freeconomics)'으로 불리는 인터넷의 변화과정을 분석하면서, 한국 기업과 시민사회의 대처 방안에 대해 논해 보려고 한다. 

[목록] 연재될 기사의 주제와 순서
2) '세계에는 단 한 대의 컴퓨터만 존재한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빛과 어둠
3) 마이크로소프트는 왜 야후 인수에 목을 맸을까?: 재편되는 인터넷 광고시장과 돈줄의 흐름
4) 페이스북과 트위터, 왜 인기일까?: 구글을 위협하는 '친근한 정보'의 시대
5) '가상현실'은 없다: 물리적 현실로 찾아온 디지털 기술 '닌텐도 위'와 '기타영웅(Guitar Heroes)'
6)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명텐도'는 왜 '닌텐도'가 될 수 없는가?
7) 기술이 사회를 바꾸는가, 사회가 기술을 바꾸는가?: 인터넷 대안매체의 한계와 가능성


태그:#뉴미디어, #인터넷,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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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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