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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이 또 이명박 정부의 국정 추진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지난 15일,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의 직권상정 움직임을 보이자 "얼마든지 합리적인 안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보는데, 합의해서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라고 하면서, "여론 독점을 막기 위해 한 언론사의 시장 점유율을 매체 합산 30% 이내로 한정"하는 등의 대안을 내놓았다.

이어서 그는 19일, "미디어법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려 참석하게 된다면 반대표를 던지기 위해 참석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한나라당의 직권상정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결정적일 때 파장을 일으키는 박의 정치

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성헌 의원과 얘기하고 있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성헌 의원과 얘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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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뿐 아니라 박 의원의 발언은 번번이 큰 파장을 일으켜왔다. 그의 발언은 매번 언론에 대서특필되어 집권여당의 지도부를 당황시킨 반면 야당으로부터는 일정한 환영을 얻어내기도 했다.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는 지난 16일 당 대표단 회의에서, "미디어법과 관련해 그나마 정치 현실을 아는 사람은 박근혜 의원이 유일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박근혜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 막바지였던 작년 6월 30일, "추가협상 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민의 이해를 구한 후 고시했어야 했다"고 말함으로써 국민 여론 편을 들었고 가뜩이나 수세에 몰려 있던 이명박 정부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그가 행한 발언들은 대체로 상식적이면서도 유용한 것들이었다. 그는 용산참사의 성급하고 무리한 진압을 지적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일단 이런 것은 차기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유력 정치인으로서의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일처럼 비치기도 한다.

이번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그의 발언도 일정 부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국민의 62.9%가 미디어법 자체에 반대하고, 특히 여당의 직권상정에는 78.9%가 반대한다(13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 <한겨레> 보도)는 점을 보아 능히 알 수 있다. 요컨대 그의 주장은 얼핏 보아 국민 여론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직권상정을 할 경우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그의 경고도 결코 무모한 것이 아니다. 이른바 친박 의원들을 약 60명 정도로 계산한다면 그들이 일사분란에게 부표를 행사할 경우 미디어법의 통과는 불확실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실체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미디어법에 관한 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에는 박근혜 의원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데에 있다. 박 의원은 지난 3월 2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미디어법 강행을 위해 농성을 벌이던 국회 로덴더홀에 가서 "한나라당은 할 만큼 했다.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시기를 못 박는 것 정도는 야당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기를 정하지 않고 무한정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었다.

미디어법에 해결을 위해 그는 무엇을 했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가운데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안상수 원내대표가 손범규 의원 자리의 컴퓨터 모니터에 뜬 박 전 대표 관련 기사를 보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가운데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안상수 원내대표가 손범규 의원 자리의 컴퓨터 모니터에 뜬 박 전 대표 관련 기사를 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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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언 이후 야당은 결국 6월 시한을 합의해 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것은 MB에 반대한다고 해서 함부로 자기편으로 간주하는 일이 얼마나 근시안적인가를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비단 야당뿐만이 아니다. 지금 국민 중에도 MB에 반대하면 무조건 선(善)이라는 단순한 사고방식으로 박근혜 의원을 달리 보려는 경향이 생겨나는데 이것이야말로 정작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미디어법의 핵심은 신문의 방송 겸업과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데에 있다. 이 둘  중에서도 더 중요한 현안은 신문의 방송 진출, 단적으로 말해서 조중동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느냐 않느냐에 있다. 그런데 박 의원의 중재안은 독과점을 어느 정도 막자는 의미는 있지만, 조중동의 방송 진출과 관련 명확한 입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박근혜 의원에게 묻고 싶다. 박 의원은 얼마든지 여야가 합리적인 안을 도출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동안 박 의원은 무슨 일을 했는지? 미디어법에 대해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다가  최종적인 여론을 보고는 불쑥 한 마디 던지는 것을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러고 보니 작년 광우병 쇠고기 정국에서도 그가 보인 처신은 이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년 상반기 그에게 최대 현안은 이른바 친박 의원의 복당이었다. 그는 당시 복당만 부르짖으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가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형성되고 정부가 이미 협정을 고시한 연후에라야 마치 지나간 버스 부르듯이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이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정치 행보가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는 것 아닐까? 속된 말로 다 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으려는 정치, 사태의 추이를 살피며 좌고우면하다가 난데없이 출현하여 한 마디 던지는 정치 행보로는 일시적인 주목을 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장기적인 국민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본다.

박근혜 행보, 이미지 정치만 부각시킬 수 있어

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과 얘기하고 있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과 얘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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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박근혜 의원은 이런 특유의 정치 행보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여당 내 유일 지도자'라는 이름값을 계속 유지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발언은 매번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차기 대선의 여론 지지선 30%를 거의 변함없이 방어하고 있는 것은 이런 정치적 행보의 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그는 아주 독특한 자기 관리법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이 잘 안 풀릴 때에는 예고 없이 칩거 또는 침묵하는 정치 행보를 보인다. 언론이 그의 칩거나 침묵을 이슈화하면 그는 나와서 언론에 차가운 표정을 잠시 노출한다. 그러다가 아주 적절하고도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단발성 발언을 한다.

지난 정권 시절 그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제안을 한 노무현에게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쏘아 붙였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발언은 조중동으로부터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노무현이 기자실 통폐합을 추진하자 그는 "한 마디로 말해 나라의 수치다"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그는 연상의 이재오 의원에게 "오만의 극치다"라고 내지르기도 했다.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18대 총선 공천에 대해 그가 불만을 표출한 발언이었다. 그는 지난 재보궐선거 때 이상득 의원의 경주 지역 공천 사퇴 종용 건에 대해 '한마디로 말해 정치의 수치다"라고 날카롭게 말하기도 했다.

이런 '외마디 정치'는 무엇보다 우리 정치를 황폐하게 만든다. 콘텐츠는 없고 이미지만 존재하는 정치. 논리는 상실된 채 촌철살인만 난무하는 정치, 부드러움 대신에 냉혹함을 선호하는 정치는 이 사회를 더욱 척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박근혜 의원은 당시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전방은 별 일 없는지요?"라고 물었다고 해서 그의 애국심과 냉철함이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그의 내면에 일찍부터 '나는 대통령'이라는 심리가 잠재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면도 있다. 당시 박근혜는 20대로서 대통령의 딸일 뿐이었다.

정치인으로서 대권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그의 대권 행보를 비판할 수는 없다. 이번 미디어법 처리 반대 표명도 청와대에서 친박 의원들을 입각시키려 하자 그가 계파 결속용으로 내 놓은 자구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권을 쟁취하는 데에는 더러 투쟁이 필요하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박 의원처럼 매사를 오로지 대권만을 염두에 둔 것 같은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조중동 방송 진출을 막아야 하는 이유

박 의원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노무현 정부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내겠다"고 공언하며 끝내 뜻을 관철시켰다. 그는 훗날 "그때 국가보안법을 안 지켰더라면 스파이들의 천국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국가보안법이 분단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면 현행 미디어법(언론관련법) 역시 분단의 산물로서 국가보안법과는 반대급부로 우리가 지킬 수밖에 없는 성격을 띠고 있다.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한 통일에 반대하고 민족을 분열시키려는 세력의 여론 책동은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단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한 조중동의 방송 진출은 결코 허용돼서는 안되는 역사적 당위성을 갖는다. 우리는 박근혜 의원 식의 어정쩡한 절충안이 오히려 미디어법 반대 의견을 희석시키는 수 있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권주자 시절 한나라당 내에서 비교적 진보적인 처신을 보임으로써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국민들은 이명박이 되면 민주주의나 남북관계 등의 중차대한 현안에 그다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방심했었다. 하지만 그가 영락없는 반민주 수구 성향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근혜 의원이 이명박 정부 들어 짐짓 야당 편을 들기도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각성한 시민이라고 할 수 없다. 박근혜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보다 보수적이 아니라거나 기득권적이 아니라는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의 보수와 기득권층은 보수언론과 재벌의 영향력에서 헤어날 수 없다. MB에게 그렇게 당해 놓고 또 박근혜는 괜찮다는 것인가? 


태그:#미디어법,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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