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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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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진지왕·진평왕 3대를 경과하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세월의 흐름을 반영하여 주요 배역의 연기자들이 이미 한두 차례씩 바뀌었다. 주인공인 덕만(선덕여왕, 이요원 분)을 비롯해서 진평왕·천명공주·김유신 등의 배역은 아역 연기자에서 성인 연기자에게 넘어갔거나, 아니면 갓난아기에서 아역 연기자에게로 다시 아역 연기자에서 성인 연기자에게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주요 배역 가운데서 변함없는 불로(不老)의 역할들이 있다. 미실(고현정 분)을 포함해서 그의 남편인 세종(독고영재 분)과 정부인 설원(전노민 분)이 그들이다. 미실의 역할은 30대 후반의 연기자에 의해, 세종 및 설원의 역할은 중년 연기자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미실뿐만 아니라 세종·설원 역의 연기자까지 바뀌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동일한 연기자가 미실 역할을 계속 맡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남편이나 정부의 역할을 도중에 다른 연령대의 연기자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한지라, <선덕여왕>의 시청자들은 미실의 나이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 처음에 어린아이로 나온 진평왕(조민기 분)이 청소년을 거쳐 이미 중년의 얼굴로 바뀌었는데도 미실은 여전히 30대 후반의 얼굴을 갖고 있고, 처음에 갓난아이나 10대로 나왔던 천명·덕만·김유신이 이미 서른에 가깝거나 서른을 훌쩍 넘은 얼굴을 갖고 있는데도 미실은 한결같이 30대 후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장편 사극에서 이와 같이 한 연기자가 특정 배역을 계속 맡을 경우에는 배역의 개성을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세월의 흐름에 따른 배역의 색깔 변화, 예컨대 권력자의 정치스타일 변화 같은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30년 동안 30대 얼굴 고수한 <선덕여왕> 속 '미실'

정권이 몇 년마다 정기적으로 바뀌는 오늘날과 달리, 옛날에는 한 권력자의 정권이 몇 십 년씩 부정기적으로 유지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에는 연령의 변화에 따라 권력자의 정치스타일도 함께 바뀌기 마련이었다. 젊었을 때는 도전적이고 패기가 넘치던 권력자도 나이가 들수록 점차 안정적이고 노련해지다가 세월이 좀 더 흘러 병석에 자주 드러눕는 나이가 되면 종종 변덕스럽기까지 한 정치스타일을 보이는 예가 많았다.

제24대 진흥왕 사후인 제25대 진지왕 및 제26대 진평왕 시기에 미실이란 인물이 오랫동안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실제 미실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정치스타일의 변화를 보였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극중 세월이 벌써 30년이 훨씬 넘게 지났는데도 30대 후반의 연기자가 계속해서 미실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로서는 세월의 변화에 따른 미실의 정치스타일 변화를 제대로 포착해내기 힘들다. 또 시청자들로서는 미실의 극중 나이가 현재 몇 살인지를 분간해내기도 어렵다.

이러한 점들은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에 관한 시청자들의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전개되는 인간의 행위인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시간'이라는 요소와 관련된 인물들의 생몰연대나 연령대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550년생 미생보다 늙고, 545년생 사다함 보다 어려

그럼,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극중 나이는 현재 몇 살일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점을 확실히 알려주는 자료는 현재로서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
 <선덕여왕>에서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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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위작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미실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32명의 풍월주(화랑도의 수장)들이므로 풍월주가 아닌 주변부 인물에 불과한 미실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까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사본 <화랑세기> 곳곳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우리는 미실의 나이를 대략적이나마 추정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을 통해 드라마 <선덕여왕> 속 미실의 현재 나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화랑세기> 제2세 풍월주 미진부 편에 따르면, 제23대 법흥왕의 외손자인 미진부와 법흥왕의 후궁인 묘도는 법흥왕 생전에 왕궁 안에서 밀회를 갖다가 법흥왕 사후에 왕실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결혼하여 미실과 미생이라는 자녀들을 낳았다. 법흥왕은 540년에 사망했고 미실의 부모는 그 이후에 결혼했으므로, 미실은 541년 이후에 출생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화랑세기> 제10세 풍월주 미생 편에 따르면, 미실의 동생인 미생은 550년에 출생했다. 그러므로 미실은 541년에서 549년 사이에 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위의 두 자료를 통해 우리는 미실의 출생 연도를 오차 범위 8년차로 좁힐 수 있다. 이보다 더 정확한 근사치를 구하기 위해 <화랑세기>의 다른 기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실의 나이를 추정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좀 더 정확한 자료는 미실의 연인이자 제5세 풍월주인 사다함의 입에서 나왔다. <화랑세기> 제6세 풍월주 세종 편에 따르면, 죽음에 임박한 제5세 풍월주 사다함은 '미실의 남편 세종에게 제6세 풍월주 자리를 넘겨주고 싶다'는 취지의 유언을 남길 때에 "신(臣)의 여동생(妹) 미실의 남편"(臣妹美室之夫)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미실이 사다함보다 어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극중 미실의 현재 나이는 최소한 61~64세

그럼, 사다함은 언제 태어났을까? <삼국사기> 권44 '사다함 열전'에 따르면, 사다함은 17세에 죽었다. 이때가 561년이었다. 그러므로 사다함의 출생연도는 545년이 된다.

미실이 사다함보다 어렸다고 했으므로, 미실은 546년에서 549년에 태어난 셈이 된다. 현재까지의 자료를 기초로 할 때에는, 546~549년이 사실에 가장 근접한 미실의 출생연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의 최근 방영분에서 미실은 몇 살 정도의 여자로 나와야 할까? 그런데 미실의 나이를 추정하자면, 현재 이 드라마가 어느 시점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평왕의 장녀인 천명공주가 자리를 확고히 잡고 있는 가운데 덕만공주가 서서히 자격을 쌓아감과 동시에 '신라의 대동강 진출'의 기초를 놓을 김유신·김춘추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의 현재 시점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609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 이 드라마는 진평왕의 권력기반이 이미 안정궤도에 들어선 가운데 천명·덕만 두 공주가 아직 젊음을 유지하고 있고 김춘추가 출생(604년)한 지 얼마 되지 않으며 김유신이 화랑도에 입문(609년)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현재 시점이 아무리 빨라도 609년 이후라고 본다면, 극 중에서 미실의 현재 나이는 최소한 61~64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수치이기 때문에, 드라마 상의 실제 나이는 이보다 더 많아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미실의 곁을 늘 지키는 남편 세종이나 정부 설원 역시 이미 이 정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 역사와는 맞지 않는 미실과 덕만의 경쟁구도

 미실과 그를 보좌하는 이들은 20여년에 걸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미실과 그를 보좌하는 이들은 20여년에 걸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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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의 죽음(576년)이 묘사된 제1회·제2회 방영분 때에 미실의 극중 나이는 27~30세였지만, 드라마가 횟수를 거듭하고 천명·덕만·김유신 등이 성장함에 따라 미실의 극중 나이는 위와 같이 벌써 환갑을 훌쩍 뛰어넘고 만 것이다. 제1회부터 지금까지 30대의 젊은 미실만 지켜본 시청자들로서는 미실의 극 중 나이가 이미 60대에 들어섰다는 점이 얼른 믿겨지지 않을 것이다. 

미실의 현재 나이가 이미 60대에 접어든 점을 감안할 때에, 아직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김유신이나 그런 김유신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천명·덕만은 미실보다 한두 세대 아래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대 천명·덕만·김유신의 경쟁구도를 설정한 것은 현실과 좀 동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화랑세기> 제15세 풍월주 유신공 기사에 따르면 김유신이 화랑도 부제(제2인자)에 오를 수 있도록 손을 써준 인물이 다름 아닌 미실이었음을 고려할 때에, 위와 같은 경쟁구도가 실제의 사실 관계와는 잘 부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어려서부터 궁중 내 정치관계를 경험했고 진흥왕의 죽음 및 진지왕의 즉위 이후로 권력의 정상에 오른 미실이 나이 60대에 접어든 이 시점에는 젊을 때보다 훨씬 더 노회한 정치가로 변모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미실과 비교할 때 이 시기의 미실이 도전성이나 패기는 상대적으로 떨어진 반면 안정성이나 노련미는 상대적으로 더 높았을 것이라는 점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똑같은 배우가 30대 후반의 동일한 모습으로 미실의 젊은 시절과 노년 시절을 모두 다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로서는 신라 중기의 특출한 정치가였던 미실의 진면모, 예컨대 세월의 변화에 따른 그의 정치스타일 변화 같은 것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현재로서는 시청자 스스로가 드라마 속 미실을 보면서 노회하고 안정적인 실제 미실의 모습을 떠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또 10대 후반에서 서른 전후인 천명·덕만·김유신을 동년배의 경쟁자가 아닌 60대 대선배의 눈으로 바라보는 미실의 모습을 시청자 스스로 상상해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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