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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솔 빛깔이 고운 길가의 노점상들
 파라솔 빛깔이 고운 길가의 노점상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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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노점상들은 멋지고 낭만적이네"
"노점상이 웬 낭만?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이"
"저기 좀 봐요? 노점상들의 선글라스와 파라솔이 해수욕장 풍경 같잖아요?"

모처럼의 여행으로 마음이 느긋해진 때문일 것이다. 막탄섬에서 세부로 가는 길에서 만난 길거리의 노점상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 설치해 놓은 파라솔과 노점상 아주머니가 끼고 있는 선글라스를 보며 해수욕장의 풍경을 떠올렸나 보았다.

가난한 서민들이 이용하는 작은 재래시장 입구에는 노점상들과 함께 손님을 기다리는 지프니들도 많았다. 지프니는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손님을 태우고 달릴 수 있도록 만든 이곳의 일반화된 교통수단이었다.

낯설었지만 정다운 풍경, 노점상과 지프니

우리의 택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초라하고 안전하지도 않은 교통수단이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이용요금은 가까운 거리는 1~2달러로 흥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먼 거리는 더 내야 하지만 우리 택시처럼 미터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택시로 이용되는 지프니
 택시로 이용되는 지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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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시내에서 먼저 들른 곳은 산 페드로 요새였다. 요새로 가는 길은 교통이 상당히 복잡했다. 도로를 운행하는 차들도 많았지만 교통질서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시내에 들어서자 잠깐 동안 쏟아지던 비가 그친다. 다행이었다.

요새 정문 근처에 버스를 세우고 모두 내렸다. 정문 앞 잔디밭과 화단에서는 인부들이 꽃과 나무를 옮겨 심고 있었다. 세부에서 손꼽히는 유적관광지여서 조경에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에게게! 이게 뭐야? 요새가 뭐 이렇게 작아?"
일행들이 성안을 둘러보며 혀를 찬다. 성벽은 제법 그럴 듯했는데 내부가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 삼각형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안은 농구장 두 개 정도 넓이나 될까, 정말 너무 비좁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산 페드로 요새(Fort San Pedro)는 항구에서 가까운 거리에 스페인 통치시대였던 1738년에 세워진 요새였다. 당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이슬람과 해적 등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요새가 너무 작아서 식민통치주체가 마닐라로 옮겨가면서 쇠락한 요새다.

그래도 산 페드로요새는 마닐라에 세워진 인트라무로스 요새와 쌍벽을 이루는 유적으로 손꼽힌다. 이 요새는 원래 1565년에 목책만 세워 만든 파수대였다. 그러나 1738년에 현재의 모습처럼 견고한 석벽으로 개축되었다.

침략자의 유적이 자랑스럽다고? 산 페드로 요새

요새의 규모는 작았지만 이곳에는 필리핀의 영광과 서글픈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었다. 스페인통치 말기인 1898년에는 세부의 독립군이 이 요새를 점령하기도 했으나, 미국의 식민지 시대에는 미군막사로, 또 일본의 식민지 시대에는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옛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산 페드로 요새
 옛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산 페드로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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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전시관에 있는 맷돌모양의 유물
 요새 전시관에 있는 맷돌모양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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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페드로 요새는 필리핀의 영광보다는 슬픈 역사가 훨씬 더 많이 깃들어 있는 곳이었다. 그럼 이 역사유적을 필리핀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요새는 유명 관광지답게 외국관광객들뿐만 아니라 필리핀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었다. 마침 산뜻한 옷차림의 여성 두 사람을 만났다.

"아름답고 멋진 우리 필리핀의 역사유적이지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필리핀 여성들에게 이 요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들이 대답한 말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말이었다. 자신들의 나라를 식민통치한 침략자들이 세운 군사유적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다니. 그러나 사실이었다. 두 명의 필리핀 여성들은 멀리 마닐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들 두 여성은 옷차림이나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충분한 교육을 받은 상류층 여성들 같았다. 그녀들은 카메라를 꺼내들자 손짓으로 거부의사를 분명히 하고 사라졌다. 내가 어이없어 하자 가이드가 한 마디 더 거든다.

"이곳 사람들은 스페인과 미국 식민지였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동경하고 백인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같은 필리핀 사람들끼리도 피부색이 하얀 것을 좋아하고, 여성들은 특히 피부를 하얗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서양인들에 대한 열등의식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성벽 위로 올라가자 경비원이 사진 찍는 관광객들에게 권총을 잠깐씩 빌려주고 1달러씩 받고 있었다. 그런데 요새의 규모는 작았지만 성벽은 매우 견고해 보였다. 돌  바닥인 성벽 윗면의 폭이 상당히 넓었기 때문이다. 성벽 위에는 꽃밭이 가꾸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 몇 개의 스페인 통치 시절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요새의 규모가 작아서 삼각형인 성벽 윗길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은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에는 작은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전시물품 중에는 마젤란이 타고 온 범선 모형과 작은 소품들 몇 개가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자 경비원이 제지한다. 전시된 소품 중에는 우리나라의 맷돌과 매우 비슷한 것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성벽 위 꽃밭 속에 있는 스페인 시절의 대포
 성벽 위 꽃밭 속에 있는 스페인 시절의 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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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털이로 사용되는 멋진 모양의 커다란 조개껍질
 재털이로 사용되는 멋진 모양의 커다란 조개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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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입구 복도에서는 몇 사람의 현지인들이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사용하는 담배 재떨이가 일품이다. 상당히 커다란 조개껍질이었는데, 서울에서라면 깨끗이 닦아 장식장에 소장하고 싶을 만큼 그 모양이 희귀하고 멋졌다.
 
산 페드로 요새를 나와 곧 바로 산토니뇨 성당으로 향했다. 필리핀을 루손, 비자야, 민다나오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누었을 때, 비자야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며 인구 80여만 명인 세부섬의 중심시가지인 이곳은 그리 번창한 모습이 아니었다.

시가지는 매우 낙후된 모습이었고 활기가 없었다. 더구나 길거리 이곳저곳에 쓰러져 잠든 노숙자들의 모습과 함께 상당히 커다란 빌딩이 시커멓게 그을려 텅 빈 모습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세부시 청사 앞 광장 한쪽에선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부정축재 독재자를 그리워하다니

무슨 시위인가 물어보니 가이드가 그들에게 다가가 몇 마디 물어보고 와서, 어린이들의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내용의 시위라고 한다. 시위현장에서는 여성연사 한 사람이 앞에 나와 열변을 토하고 있었지만 언어가 현지어여서 내용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세부시청사
 세부시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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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인들도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걸보니 옛날에 비해 민주의식이 향상된 것 같다고 하자 가이드가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필리핀인들 중에는 옛 독재자 마르코스 시대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필리핀 역사상 그 시절이 가장 경제성장을 많이 한 시기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독재정치로 장기집권하고 부정축재 정도가 온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 마르코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말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르코스 부인 이멜다가 모아놓은 구두와 보석만 해도 대단했었지 않나요? 그런데 그 부정한 독재자 마르코스와 자신들을 식민통치한 침략자들을 좋아하다니? 이 나라 사람들은 오기도 자존심도 없나! 쯧쯧"

"한때는 우리나라보다 상당히 앞서 있던 이 나라가 이렇게 뒤처진 이유를 알 것 같구먼."

일행 한 사람이 너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혀를 찬다. 산 페드로 요새와 함께 세부섬 최고의 관광유적지인 산토니뇨 성당은 시청 광장 바로 앞에 있었다. 광장 끝 쪽엔 6각형의 작은 건물이 서 있었는데 건물 안에는 동양 최초의 나무 십자가라는 마젤란의 십자가가 보관되어 있었다.

마젤란의 십자가를 보관하고 있는 6각건물
 마젤란의 십자가를 보관하고 있는 6각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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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니뇨 성당,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사람들
 산토니뇨 성당,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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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십자가는 신도들이 조금씩 벗겨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포장이 되어 있었다. 나무 십자가를 긁어다가 물에 타 마시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 때문이라고 했다. 육각 건물을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서는 경비원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색하고 있었다.

동양 최초의 나무 십자가와 유별난 신앙을 가진 사람들

성당 입구에서까지 검색이 심한 것은 세부지역도 치안에 조금은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당 안마당은 사람들이 많았다. 관광객들과 뒤섞인 현지인 신도들은 대부분 손에 초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성당 야외 예배장 옆 복도에는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엄숙했다.

성당 안에도 신도들이 많았다. 미사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간절한 기원이 담겨 있었다. 특히 아기 예수 상이 모셔져 있는 곳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성당의 이름인 산토니뇨는 아기예수를 뜻하는 말이다. 바로 그 아기예수상은 탐험가 마젤란이 1521년 이곳에 도착해 세부의 여왕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16세기 이 지역에서 일어난 몇 차례의 큰 화재 때도 불타지 않고 온전했었던 이력 때문에 성물(聖物)로 여겨지고 있었다.

세부시내 중심가 풍경
 세부시내 중심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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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신도들에게 아기예수상은 믿음과 축복의 상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기예수 산토니뇨 상이 들어 있는 유리관에 손을 대거나 입을 맞추려는 사람들로 미사가 있는 날이면 하루 종일 줄을 잇는다는 것이었다.

산토니뇨 성당 마당에는 초를 준비하지 못하고 온 신도들을 상대로 초를 팔려는 상인들이 많아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성당 안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성당 입구 반대편 거리 쪽에는 튼튼한 철제 울타리가 막혀 있었고, 울타리 사이로 번화한 거리가 바라보인다. 상가들이 즐비한 거리를 바라보자 갑자기 배가 출출해진다. 세부 시내에서 먹은 이날 점심도 구운 닭다리 등 육류 일색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산 페드로 요새, #산토니뇨 성당, #이승철, #침략자, #독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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