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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벌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무덤 한 기(基). 고요하고 울창한 숲을 감도는 엄숙한 기운. 재미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 볼 수 없는 왕릉(王陵). 그곳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숨겨져 있다. 해리포터 뺨치는 '비밀의 문'을 숨기고 있던 능, 여인들의 권력다툼에 고단했던 중종의 더욱 비극적인 사후(死後) 이야기를 간직한 능, 금슬 좋은 세조와 정희왕후만의 특별한 안식처 등이다. 조선왕릉 40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결정 기념으로 밝히는 조선 왕릉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조상들의 영면처(永眠處)에 얽힌 그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자.

 

하트 모양 능원이 있다고?

 

광릉은 하트모양!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그의 부인 정희왕후의 능입니다. 돈독한 둘의 사랑만큼이나 예쁜 능원입니다.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광릉은 조금 특이하다.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이다. 하트모양의 능원은 조선왕릉 40기를 통틀어 광릉이 유일하다. 조선시대에도 하트는 사랑의 상징이었던 것일까. 하트모양 능의 주인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와 그의 반쪽 정희왕후 윤씨다.

 

양 갈래로 나눠진 능원의 오른쪽에는 정희왕후의 능이 왼쪽에는 세조의 능이 위치해 있다. 세조와 정희왕후의 사이는 각별했다고 한다. 실록에 따르면 정희왕후 윤씨는 궁중의 대소사를 모두 세조에게 허락을 받고 행했으며 세조는 윤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금슬이 좋은 두 부부는 다투는 일이 없었고, 윤씨가 세조의 여자 문제로 괴로워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세조와 윤씨의 능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태다. '동원이강릉'은 하나의 정자각 뒤로 두 개의 능이 자리하는 형태를 말한다. 광릉은 '동원이강릉' 방식을 도입한 최초의 능이다. 광릉 이외에도 현릉과 경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7기가 '동원이강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하트모양의 능원은 광릉뿐이다. 세조와 정희왕후의 아름다운 사랑이 하트모양의 능원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광릉 속 숨은 사랑이야기를 생각하며 이번 주말 사랑하는 이와 함께 광릉으로 떠나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거닐다 보면 먼저 떠난 세조와 윤씨의 뒷모습을 마주할지 모르니 말이다.

 

비운의 부자(父子), 죽어서도 외래문물의 홍수에 떠밀리다 

 

대개 왕릉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와 오리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자연히 왕릉에는 침엽수에서 활발히 분비되는 피톤치드가 곳곳에 배어들어 있어 건강에 좋다. 하지만 명성황후의 남편이자 조선 26대 왕인 고종황제의 홍릉(洪陵)과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황제가 잠들어 있는 유릉(裕陵)은 조금 다르다. 강경한 쇄국정책을 고수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서구에 문호를 개방한 고종과 그 아들의 능에는 노르웨이산 독일가문비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아메리카 잣나무도 한 켠에 궁둥이를 밀어 넣고 있다.

 

정자각(丁字閣)은 능에 있는 혼이 내려와 후손들의 제사를 받는 곳이다. 홍릉과 유릉은 정자각에서도 외국문물의 향이 물씬 난다. 홍유릉의 정자각은 일반적인 정자각의 모양인 천간 정(丁)자가 아닌 한 일(一)자 형태다. 중국 명나라 태조의 '효릉'을 본 따 만들어 이와 같은 형태를 취했다고 전해진다. 정(丁)자가 아니기에 이름도 정자각이 아닌 침전(寢殿)이다.

 

유릉의 낙타석물 홍릉의 낙타보다는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운 유릉 낙타석물.
조선왕조의 능을 외래종인 낙타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홍유릉을 찾았다면 또 하나! 무덤을 수호하는 석물만큼은 반드시 봐야한다. 사자, 말 그리고 상상의 동물인 기린과 해태가 무덤을 지킨다. 놀라운 것은 코끼리와 낙타의 석물도 그 사이에 있다는 점이다. 조선왕의 무덤을 코끼리와 낙타가 지키고 있다니 엉뚱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능 조성 당시 우리나라에는 코끼리와 낙타가 없었다. 석물의 모습이 실제와 다른 이유다. 등허리에 쌍봉(雙峰)이 없었다면 낙타석물은 낙타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다. 코끼리는 그나마 코 옆에 상아가 있어 알아볼 수 있다.

 

조선왕릉에 외래문물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두 왕의 사대주의적 기호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력의 쇠락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고종은 살아생전 일본 낭인의 손에 부인(명성황후)을 잃어야 했다. 순종은 즉위 4년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홍유릉에는 기울어 가는 나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두 왕의 슬픔이 서려있다.

 

뒤주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 화려한 능에서 잠들다 

 

사도세자의 능은 그가 최후를 맞이한 뒤주와 비교하면 굉장히 화려하다. 능을 감싸고 있는 병풍석 사이사이에 놓인 인석은 조선 왕릉 중 가장 수려하다는 평을 받는다. 연꽃봉오리의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진다. 무인석(武人石)과 짝을 이룬 문인석(文人石)의 옷 역시 화려하다.

 

융릉 조성 전의 문인석은 단순한 복두공복(僕頭公服)의 형태였다. 융릉의 문인석은 복두공복에 화려함을 더한 금관조복(金冠朝服)이다. 금관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봉황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사도세자는 비록 임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비명에 갔지만, 정조는 부친을 부왕(父王)으로 높여 능을 조성했다. 융릉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이유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융릉은 상처를 입었다. 능 앞에 서있는 문인석과 무인석의 코 부분이 훼손됐다. 융릉 문화해설사는 "요절한 사람의 무덤 석물이 무속행위에 효험을 더한다는 터무니없는 무속인들의  믿음 때문"이라는 말로 이유를 설명했다.    

 

무덤으로 통하는 비밀의 문

 

비밀의 문 혼유석 아래 숨어있는 비밀의 문. 
능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입구다.

능 앞에는 으레 큰 돌이 있다. 영혼이 쉬다가는 곳이라 하여 혼유석(魂遊石)이라 한다. 혼유석을 받치고 있는 네 개의 돌은 북 모양을 닮았다하여 고석(鼓石)이라 한다. 고석에는 귀신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잡귀를 쫓는다는 의미다. 고석에 그려진 귀면(鬼面)은 문고리를 물고 있다. 혼유석의 바닥에 비밀의 문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혼유석 앞에 위치한 장명등부터 혼유석의 지하에는 하나의 길이 있다. 이 길은 왕과 비의 시신이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시신이 능에 안치되면 육중한 여러 개의 돌이 입구를 막는다. 혼유석 밑에 기다란 돌 두 개는 무덤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입구다.

 

다른 능에서는 이 문을 볼 수 없다. 단 한 군데에서만 이 문을 볼 수 있다. 바로 광릉이다. 광릉 오른쪽 언덕에 위치한 정희왕후 능은 비밀의 문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능이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능에 도달하려면 땀을 꽤나 쏟아야 하지만 비밀의 문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니 그 정도 수고는 감수할 만하다. 비밀의 문은 해리포터에만 있지 않다. 오백년 역사를 품은 조선 왕릉에도 있다.         

 

주인 잃은 정릉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정릉은 조선 제 11대 중종의 능이다. 정릉 주변의 번화한 거리가 소음을 더해 능의 주인은 괴로울 듯하지만, 이 능에는 소음으로 고통스러워할 주인이 없다. 한마디로 정릉은 빈 능이다.

 

임진왜란 당시 서울을 점령한 왜군은 정릉을 파헤치고 시신을 훼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추후에 유성룡이 사람을 시켜 능 주위에서 시신을 찾게 하였으나 중종의 시신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생전의 중종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시신을 확인시켰으나 그들이 말하는 중종과 시신은 달랐다. 결국 중종의 시신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정릉이 주인을 잃은 빈 능이 된 사연이다. 문정왕후, 장경왕후, 단경왕후의 권력다툼으로 순탄치 못한 삶을 살다간 중종이었다. 그는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무덤은 살아있는 자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정릉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숲이 잘 조성되어 있어 휴식에는 그만이다. 정릉은 선릉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모든 왕릉은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다만 개방시간은 왕릉마다 조금씩 다르다. 각 왕릉의 개방시간과 단체관람료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에 자세히 나와있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아동 500원이다. 6세 이하 및 65세 이상, 장애인 및 동행인 1인, 국가유공자, 참전용사는 입장료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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