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KBS2TV 대하드라마 <천추태후>
 KBS2TV 대하드라마 <천추태후>
ⓒ KBS

관련사진보기


KBS 2TV 대하드라마 <천추태후>에는 선 굵은 역사적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여걸의 인생을 살다간 천추태후(채리사)를 비롯해 귀주대첩을 대승으로 이끈 강감찬(이덕화), 그리고 목종을 폐위하고 요나라에 맞선 강조(최재성) 등이 바로 그들이다.

<천추태후> 속 등장 인물들의 특징은 대부분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악역인 문화왕후(문정희), 김치양(김석훈), 신라계 귀족 등도 마찬가지다. 보는 관점과 역사적 평가가 다르다뿐이지, 저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았다 볼 수 있다. 김치양은 신라 왕실의 부활을 위해, 문화왕후는 성종의 복수를 위해, 신라계 귀족들은 전쟁보다 화친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선 굵은 다른 인물들과 달리 자신의 부귀영화만을 위해 살다 간 이가 <천추태후>에 등장한다. 비겁한 역사의 산증인 '이현운'이다. 그는 <천추태후>에 등장하는 내내 가볍고 못된 짓만 골라하며 보는 이를 씁쓸하게 만든다. 드라마 속 그의 삶은 '기회주의'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이현운은 <천추태후> 1회, 적군이 몰려온 고려 안융진의 진장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장군의 용맹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거란에 항복할 궁리만 하는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시청자들은 이현운을 보며 장군이 뭐 저래? 하는 실소를 내뿜는다. 전투를 할 때는 죽은 척 하고, 가벼운 말로 부하들의 놀림감이 되는 이현운은 시청자들이 볼 때 장군으로서 자격 미달이었던 것이다.

KBS2TV 대하드라마 <천추태후>의 이현운, 역사 속에서나 드라마에서나  이만큼 비겁한 인물도 찾아 보기 힘들 것 같다
 KBS2TV 대하드라마 <천추태후>의 이현운, 역사 속에서나 드라마에서나 이만큼 비겁한 인물도 찾아 보기 힘들 것 같다
ⓒ KBS

관련사진보기


어디 그뿐이랴, 중랑장으로 강등된 후에도 정신 못차리고 문화왕후의 첩자 노릇을 한다. 게다가 돈 몇 푼 받고 왕을 성 밖으로 불러내는 무모한 일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사형될 위기에도 처하니 <천추태후> 속 이현운의 인생이 참 파란만장해 보인다. 실제의 일이라면 이만한 코믹 영화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 하나. 지금껏 보여진 <천추태후> 이현운의 악행들은 드라마의 허구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이현운의 행적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는 이현운이 안융진(고려 광종 때,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 내동리에 설치한 진)의 진장이었다는 기록이 없다. 또 문정 왕후의 첩자 노릇을 했다거나 왕을 성 밖으로 불러냈다가 사형 선고를 받은 일 등은 관련 자료가 없기에 이 역시 허구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만약 역사 속, 이현운이 본다면 <천추태후>의 부정적인 평가에 몹시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허구가 이현운의 삶을 재평가하는 면죄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 역사 속 '이현운'은 용서받지 못할 역사적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국가를 배반한 배신자인 것이다. 그는 거란의 침입 때 잡혀 포로가 되자 항복을 하고 거란 요나라의 장수가 되어 고려 침공에 협력하게 된다. 요나라 황제에게 항복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兩眼已膽日月 一心何憶舊山川
(두 눈은 이미 새 일월을 보았는데 한 마음이 어찌 옛 산천을 생각하겠소)

같이 잡혔던 강조가 비굴한 그에게 발길질을 했다는 역사 기록처럼, 요나라의 황제 성종에게 항복하는 이현운의 말은 고려의 장군이 한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비굴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천추태후> 이현운은 그의 행적을 알고 있는 시청자가 보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인물이다. 첫 회부터 등장해, 온갖 나쁜 일과 겁쟁이 같은 행동을 했음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 국가까지 배신하는 그의 모습이 허탈감을 전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현운의 끈질긴 생존능력을, 국가마저 배신하는 그 영악함을 그저 <천추태후>의 작위적 설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이현운과 비슷한 유형의 악인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부하고, 배신하며, 음모를 통해 성공을 하는 이들 말이다.

그렇기에 <천추태후> 이현운의 모습은 그저 한 드라마의 조연이 아니라, 우리네 세상에서 비겁한 성공을 꿈꾸는 이들이 꿈꾸는 '주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현운 같은 인물을 진작에 잘라냈다면 우리 역사가 좀 더 긍정적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태그:#천추태후, #이현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잊지말아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널리스트는 오늘과 함께 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