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음은 화계사 주지인 수경 스님이 오늘 오전 10시 화계사 경내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에서 낭독한 추도사이다.  <편집자말>

사부대중 여러분.

하늘과 땅이 다투는 걸 본 적이 있습니까?

삶과 죽음도 그러합니다. 생사가 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삶은 죽음의 한 부분이고, 죽음 또한 삶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생사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선가(禪家)에서는 "태어나는 것은 적삼을 입는 것과 같고, 죽는 것은 바지를 벗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추모하고 그분의 영혼이 아미타부처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생사불이라고 했는데 슬퍼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 많은 사람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통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무상'을 드러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무상을, 권력의 무상을, 사바라고 하는 이 세계의 무상을 아주 비극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은 '우리 사회의 비극성'을 극적으로 드러내 보여줬다는 점에서 비극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비극성을 외면하지도 과장하지도 말고 부처님 법의 시각으로 바로 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천도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 가지는 우리 개개인의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이고 다음은 우리 사회의 비극적 현실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승을 떠나기 전에 세계의 실상을 통찰했습니다. "삶도 죽음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유서의 대목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만, 자연스러운 임종이 아니었다는 점이 통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경전(법화경)에 이르기를 "일색일향(一色一香)이 무비중도(無非中道)"라 했습니다. 사사물물이 중도실상이요 적멸상이라는 얘깁니다. 또한 고인이 이르기를 "중생을 떠나서 부처를 구하는 것은 소리를 없애고 메아리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온갖 더러움으로 물든 사바가 곧 정토인 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욕으로써 번뇌를 조복시키는 일이 해탈이라는 얘깁니다.

 

중생이 왜 중생입니까. 번뇌와 생사에 구속당하고 있기 때문에 중생입니다. 살아 있으면서도 삶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입니다. 하루하루 번뇌에 속박당하고, 일생 동안 생사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일대사인연'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불자로서 우리들의 일대사는 당연히 생사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번뇌의 불을 끄고 순간순간 해방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탈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깨닫고 우리에게 간절히 그 길을 가리켜 보였습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건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비극성'을 극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비극적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비극의 실체를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대통령 1인의 것으로 사유화된 국가권력과 그것으로 인해 빈사 상태에 이른 민주주의. 빈부 양극화의 심화. 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국토 생명의 위기. 대부분의 아이들을 낙오자로 만드는 공교육의 붕괴. 청년 실업.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비정규직.

 

이 모든 문제는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가 '돈'에 종속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이 선택한 결과입니다. 이를 망각하고 현 정부를 비판하고 현 대통령을 비난하기만 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얻으려 한다면 이야말로 '소리를 없애고 메아리를 구하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 더 뼈저린 반상(反想)을 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인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도무지 소통이 안 되는 대통령과 국가 권력의 횡포를 무조건 참자는 의미에서의 인욕이 아닙니다. 국민들이 더 이상 비판을 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 스스로 정치적 무덤으로, 역사적 죄인의 길을 자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들은 그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의 인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미타 부처님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락왕생을 기원했습니다. 아미타가 무엇입니까?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입니다. 다함없는 생명, 다함없는 광명의 부처님이 바로 아미타부처님입니다. 번뇌로 오염된 이 세상에서 인욕으로 지혜를 증득하여 이 세상을 극락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아미타부처님의 원입니다.

 

인욕으로써 번뇌를 지혜로, 반생명을 생명으로 돌려놓는 것이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가를 극락으로 천도하는 일이고 현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길이 될 것입니다.

 

삼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왕생극락을 빌면서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무량한 생명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무량한 광명의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화계사 주지 수경 합장


태그:#고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수경스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