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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을 거닐 때 가장 행복합니다. 숲에는 나를 맞아 주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들바람에 향기를 실어 보내는 들꽃들의 미소가 나를 즐겁게 합니다. 청아한 노랫가락으로 숲을 채우는 산새들과 재롱둥이 다람쥐가 복잡한 세상사에서 나를 떼어 놓지요. 낯선 발걸음에 놀라 커다란 귀를 쫑긋 세우고 왕방울만 한 눈으로 쳐다보는 산토끼와 눈싸움이라도 하는 날엔 세상을 전부 가진 듯합니다. 잠시 쉬었다 가라며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밑에 서면 넉넉한 여행자가 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1인 환경운동가이자 생태교육가인 최병성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라디오에서다. 어느 날 우연히 한 라디오 프로에서 그의 인터뷰 내용을 듣게 되었다. 인터뷰 내용은 한 시멘트 회사에서 시멘트를 만드는데 여러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하여 만든다는 것이다. 그 산업 폐기물 시멘트엔 유해 중금속과 발암 물질 등이 섞여 있어 아토피 피부병과 여러 알레르기 등 각종 질병을 유발시킬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쓰레기 시멘트 더미라는 유해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고발하며 이의 개선을 위해 계속 문제제기를 해 온 것이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들은 다음 그에 대해 알아봤다. 그는 목회활동을 하다 10여 년 전에 강원도 영월 서강이라는 지역에 내려가 살게 되었고 그곳에 쓰레기 매립장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환경운동이란 걸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의 환경운동은 어느 단체에 가입하여 하는 게 아니라 혼자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강의 아름다움에 대해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환경의 중요성과 자연 생태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이번에 세상에 선보인 최병성의 생명편지 <알면 사랑한다>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서강의 숲과 강에 대한 글들을 모아 놓은 것들이다.

 

그가 바라본 숲은 아름답고, 생명이 꿈틀거리고, 다정다감하고, 경외감마저 주는 곳이다. 그는 그런 숲을 거닐고 마주하면서 삶에의 길을 묻고 삶을 배운다고 이야기한다.

 

"마침내 겨울잠에서 깨어난 숲에 푸른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덩달아 내 마음에도 생기가 돕니다. 뽀드득 오도독 기지갤 켜는 소리가 온 숲에 흐르는데, 방 안에 앉아 있을 수는 없지요. 혹독한 추위를 참으며 오늘을 기다린 생명들. 그들이 깨어나는 위대한 순간을 함께하고자 오늘도 숲을 헤맵니다. 메마른 나뭇가지에 몽글몽글 피어오른 새싹들의 생명력에 박수를 치고 때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요."

- 봄 -'생명이 기지개를 켜다' 중에서

 

딱딱한 땅을 헤집고 여린 얼굴을 살포시 내민 새싹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나뭇가지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새싹을 한 번이라도 관심 있게 본 사람을 알 것이다. 그 경이로운 마음을. 그런데 우리는 바쁘게, 바쁘게 살아간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새싹들의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

 

한 알의 씨앗에는 나무 한 그루가 온전히 담겨 있고, 한 방울의 물방울엔 우주가 온전히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하찮게 여기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글쓴이는 흙 하나, 나뭇잎 하나, 꽃나무 하나에도 마음을 담아서 본다. 또 딱따구리, 박새, 다람쥐, 참새 등 여러 동물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속삭임에 작은 희열과 충만함과 향기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정원 가득 핀 채송화를 본 적이 있나요? 빨간 꽃, 분홍 꽃처럼 흔한 꽃부터 연오랑과 자주, 백옥의 하얀 꽃까지 정말 다양한 빛깔의 꽃들이 살랑거렸습니다.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내려앉은 듯했습니다. 채송화가 얼마나 곱고 예쁜지 처음으로 알았다니까요."

-여름 '채송화는 날마다 새날' 중에서

 

어릴 때 시골 마당 모퉁이나 장독대 가장자리로 채송화가 피어 있었다. 가끔 마당을 오고가는 닭들이 채송화 꽃잎을 입으로 톡톡 쏘곤 했었다. 그때마다 채송화는 여인 몸을 파르르 떨곤 했다.

 

채송화는 마당 한 가운데 꽃을 피운 적이 거의 없다. 늘 눈에 잘 안 띄는 모퉁이나 가장자리, 돌 틈 같은데 꽃을 피웠다. 사실 채송화라고 그런 후미진 곳에서 피어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곳에 꽃을 피운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씨앗에게는 자신이 뿌리 내릴 곳을 선택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채송화는 자신이 뿌리 내린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남을 넘보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도 않는다. 그런 채송화를 바라보며 글쓴이는 우리 인간하고 다름을 발견한다.

 

"우리는 자신의 불행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기 좋아합니다. 부모가 가난해서, 남들처럼 얼굴이 잘나지 못해서, 명문대학을 나오지 못해서 …."

 

글쓴이는 인간과는 다른 모습을 작은 채송화를 통해서, 숲의 나무들을 통해서 바라본다. 또 숲에 살다가 가끔 글쓴이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든 새들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하는 이유를 말없이 이야기한다.

 

최병성의 <알면 사랑한다>는 숲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때론 생태학자의 눈으로, 무엇보다도 자연과 함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가를 시적인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내가 굳이 시도 아닌 산문을 시적인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고 한 것은 그의 글과 사진이 마음에 울림을 주고 평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요즘 정부에선 녹색성장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쪽으론 강을 파헤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강가엔 수많은 식물들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곳을 터전으로 새들과 나무, 꽃들이 쉼을 쉬고 있다. 그런데 그곳을 콘크리트로 덮어 길을 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최병성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곁에 있는 꽃과 나무와 새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숲은 삶의 희망이고 생명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면 사랑한다 - 최병성의 생명 편지

최병성 지음, 좋은생각(2009)


태그:#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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