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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술 취해서 그런 건데, 그러지 말고 이제 그만 일하라고 하지."
"그동안 폭행을 하신 분이 한 번도 미안하다고 말 한 적이 없는데, 뜬금없이 이제 그만 일을 하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아, 그러니까 내가 사과한다고 하잖아."
"선생님은 폭행 당사자가 아니잖아요."
"내가 때린 사람 형이니까,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인도네시아인 구나완 폭행 사건과 관련하여 사고가 일어난 지 열흘도 더 지나 폭행 당사자의 형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오늘(8일)아침에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 무슨 용무로 전화를 했는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서야 지지난 주 토요일 자정 가까운 시간에 폭행을 당했던 구나완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건이 있던 날 밤, 구나완이 자고 있던 방에 들어 온 사장이라는 사람이 구나완의 두 친구가 기숙사에 없자, 그들이 어디 있는지를 물으면서 폭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아무리 술에 취한 사람이 행한 행동이라 해도 사장의 태도는 도가 지나쳤었다.

"다른 애들 어디 갔어?"
"몰라요. 밖에 나갔어요."
"지금 찾아서 데려 와"
"몰라요. 밖에 나갔어요."
"새끼, 말하면 듣지. 어디서 대꾸야."

술에 잔뜩 취한 사장은 공장 밖으로 놀러 간 직원들을 찾아내라며, 공장에서 쓰던 쓰레받기로 구나완의 이마를 순간 가격했다. 이마에서 벌건 피가 쏟아 내리자, 사장은 구나완을 기숙사 방에 밀어 넣고는 밖에서 잠금장치를 해 버렸다.

이마를 다치고 방에 갇힌 구나완은 소란을 피우던 사장의 인기척이 사라지자, 바로 옆 공장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친구는 바로 달려와서 잠금장치를 부수고 구나완을 병원에 데려다 줬다. 많은 피를 흘리긴 했지만, 살이 많지 않은 이마 부위라 바늘로 꿰매고 잠시 안정을 취한 후, 일요일 아침에 퇴원할 수 있었다.

15바늘을 꿰맨 구나완이 외출했던 친구들을 만난 건 병원 응급실이었다. 친구들은 사장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공장에 돌아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에 쉼터를 찾기로 했다.

사건 경위를 듣고 회사에 연락을 하자, 사장 부인이라는 사람은 사건 내용을 잘 알고 있는지, "사장님이 술에 취해서 기억이 없다고 하네요. 그냥 애들 회사 들어와서 일하라고 해 주세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나완과 그 친구들은 회사에 다시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이번 경우 말고도 종종 사장의 과격한 언행에 대해 마음의 상처들을 안고 있었다.

결국 셋은 회사를 그만둔다는 뜻을 분명히 사측에 전달하며, 지금까지 일한 급여를 지급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회사로 돌아오지 않으면 급여를 줄 수 없다는 주장을 계속하며, 여전히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사장과 통화를 몇 차례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구나완이 할 수 없이 노동부에 임금체불과 폭행 건으로 진정을 넣자, 형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었다. 형은 동생의 행동이 술에 취해 한 것인데, 그럴 수도 있는 것 갖고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역정이었다. 그에 대해 "아무리 술에 취해도 이마에 피를 흘리는 사람을 감금까지 한 건 너무 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구나완이 피해 보상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사과해 달라고 하는 건데, 그걸 못한다고 하면 말이 돼요?" 라고 묻자, "그게 술에 취해 모른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내가 지금 이렇게 사과하고 있고…."

구나완은 쉼터에서 상담을 할 때, 사업장 내 폭행 건은 피해 당사자가 진정을 취하해도 조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진정을 넣기 전에 사장과 합의를 통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듣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장은 자존심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진정을 넣기까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결국 노동부 진정이 들어간 후에 사장이 달라진 거라곤, 굳이 회사를 두겠다면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열흘이 지나며 구나완은 바늘로 꿰매고 덮어뒀던 하얀 거즈를 이마에서 뗄 수 있었다. 거즈를 뗀 자리엔 흉하게 바늘 자국이 여전하였다.

구나완의 사건을 보며 느끼는 것은 술 취해서 한 행동이라는 이유로, 어떤 결과에 대해 무마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몰염치한 모습이 사장 한 사람만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음주 사고에 대해 관대한 우리 사회 관습에 기대어 술 취한 행동을 변명하고 있었다. 아니 변명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폭력에 대해서는 한량없이 관대하면서도 힘없는 노동자에게는 관대함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었고, 인간의 도리마저 지키려 하지 않았다.

불안한 것은 폭행사건을 조사할 노동부에서조차 술 먹고 한 행동 운운하며 사과 한 마디 할 생각조차 없는 가해자의 말만 듣고, 사건을 유야무야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기우이길 바랄 뿐.


태그:#폭행, #술 , #음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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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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