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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의외로 다양하다. 경이로운 감동이나 쾌감을 주는 책이 있는가 하면 긴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주는 책도 있다. 이런 책들은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책들을 읽고 나면 기분이 흐뭇해진다.

반면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책도 있다. 개인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른바 '베스트셀러'라는 것들에서 만족을 얻은 경우가 드물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베스트북은 아니다'라는 명제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최근 나는 중국의 베스트셀러와 일본의 베스트셀러를 각각 하나씩 읽었다. 먼저 중국 책은 작가 위치우위(余秋雨)가 쓴 <중국문화기행>(미래인, 2007, 심규호 역)이다. 이 책은 매우 인문적이면서도 서정적이며 게다가 풍부한 교양까지 담고 있다. 한 마디로 해서 대륙적인 특성이 드러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이 중국에서만 천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하니 중국인들의 독서 수준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의 수준은 그 나라 시민의 수준?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겉그림.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겉그림.
ⓒ 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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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읽은 것은 일본 책으로서 경영학자 노사카 이쿠지로 외 5명이 공동 집필한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주영사, 2009, 박철현 역)이다. 일본에서는 1984년에 간행되어 100쇄 이상을 찍었다는 이 책은 부제 '태평양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이 말해주듯이, 일본 군대가 태평양전쟁에서 실패한 원인을 이색적이게도 경영조직의 논리로 분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이 책이 대단히 일본적이라고 느꼈다. 이어령의 저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은 전쟁이라는 대단히 복합적인 현상을 아주 미시적으로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것을 현대 일본의 경제 논리로까지 확대시켜 주의를 환기한다. 1984년이면 일본 경제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사실 전쟁이란 가장 적극적인 정치 행위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셸 푸코는 "국가의 지배 질서는 곧 전쟁의 흔적이며 사회체제는 곧 전쟁의 연장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전쟁에 관한 고전적인 정의를 도외시한다. 이 책은 전쟁을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태평양전쟁 자체에 대한 가치평가를 그럴듯하게 중립화시킨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일본이 도발한 태평양전쟁에 대해 도덕적인 시비를 걸지 않는 거의 유일한 책으로 보인다. 바로 이런 점이 일본의 대중에게 어필하여 베스트셀러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는 이 책을 생뚱맞은 각도로 읽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전혀 다른 각도로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때로는 착잡하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화증이 치밀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 책이 날카롭게 지적하는 일본 군대의 실패 요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이명박 정부의 것들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의 논리적 비약을 경계해 보기도 했다. 내가 이명박 정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감정적 오류가 개입될 소지도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나의 추론은 결코 비약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것은 일면 무서운 일이기도 했다. 내가 이 책을 손에 쥐자마자 단숨에 완독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6월6일 동작동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5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추념사를 하고 있다.
 지난 6월6일 동작동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5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추념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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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쟁에서 범한 일본 군대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 6가지를 들어 분석한다.
첫째 일본 관동군이 태평양전쟁 직전에 소련군과 외몽골군을 상대로 치러 헛된 희생자만 양산한 채 소득 없이 끝낸 노몬한전투, 둘째 해전의 주도권을 일본에서 미국으로 전환시킨 미드웨이 해전, 셋째 지상전의 전환점이 된 과달카날 작전, 넷째 불필요한 도박성 전투였던 임팔 작전, 다섯째 필리핀을 내주게 되는 레이테 해전, 여섯째 미군에 일본 본토 상륙의 교두보를 허용한 오키나와 작전 등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거듭된 실패 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물론 저자는 일본의 패전 원인을 물량전의 열세로 보는 기존 견해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독창적인 주장이다. 이를테면 미드웨이 해전의 경우 물량 면에서 일본 해군이 미국 해군에 뒤지지 않았는데도 실패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결국 저자는 일본군의 실패 원인은 물량 면 말고도 다른 데에도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전략과 조직경영의 실패'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실패의 본질'이라고 단정한다.

물론 이런 견해는 전쟁이라는 대단히 복합적인 현상을 편중되게 내재적으로만 파악하는 관점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저자는 (사실은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포기한) 러일전쟁의 승전으로 인해 터무니없이 과장된 일본의 국력과 이에 따른 일본 국민들의 헛된 욕심, 그리고 <아사히>를 비롯한 일본 신문들의 호전 책동,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를 위시한 일본 군부 실세들의 허황된 영웅 의식 등까지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울러 동남아시아전쟁 막판 미국의 경제제제로 인해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생겨난 일본 군부의 자폭 심리, 속된 말로 해서 '굶어죽으나 맞아죽으나 매 한가지'라는 절망적인 딜레마 상황도 거론하지 않는다. 또한 저자는 가미카제 자살공격을 시종일관 '특공작전'이라고 명명했다.

이 책의 한계에 이 책의 백미가 있다

이런 근시안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책은 필자의 전공 한계와 모종의 목적 달성을 위해 애초부터 근시안적인 기술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바로 여기에 이 책의 백미가 있다.

저자는 일본군의 본질적인 실패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이명박 정부의 실패 원인과 아주 흡사하다.

저자는 일본군은 전략 목적이 애매했다는 사실, 일본군의 전략은 단기결전을 지향했다는 사실, 일본군의 전략은 논리적이지 않고 감정이나 분위기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 일본군의 전략은 시야가 좁고 진화하지 않았다는 사실, 일본군의 전략 기술 체계는 균형이 맞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지적한다.

또 일본군의 조직은 인맥 편중의 구조였다는 사실, 일본군의 조직은 개인 중심의 통합을 추구했다는 사실, 일본군 조직은 학습을 경시했다는 사실, 일본군 조직은 결과보다는 과정이나 동기를 중시했다는 사실 등을 지적한다.

나는 위 문장들에 있는 '일본군' 대신 '이명박 정부'를 대입해 보았다. 어쩌면 이렇게 쏙 들어맞을 수가 있는지? 마침 "1년 반 만에 한국사회가 파시즘 시대의 초기에 들어갔다"고 진단하는 리영희 교수의 말이 들려온다. 이 교수는 "이런 정권을 받아들인 것도 우리 자신들의 책임이다"라고 한탄했다.

제국 군인 박정희와 그를 추앙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오전 청와대 집무실에서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관련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오전 청와대 집무실에서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관련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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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명박 정부는 일본 군대와 이렇게도 흡사할까? 나는 이것을 우연의 소산이라고 보지 않는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전형적인 파시즘이었다. 그리고 이 파시즘 정권은 호전적인 일본 주류 언론들과 물질적 욕망에 빠져든 일본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탄생했었다.

태평양전쟁의 주도권을 쥔 것은 일본 해군이었다. 그런데 일본 해군이 미군에게 궤멸된 것은 '함대결전주의'라는 일본 해군의 전통적 방식을 묵수(墨守)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일본 해군이 1905년 러시아 해군을 상대로 치른 쓰시마 해전을 세계 해전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성공이었다고 추억하고 있다.

이때의 지휘관은 도고 제독이었는데, 35년 후 태평양전쟁에서 진주만 기습을 입안한 야마모토 연합함대 사령관은 쓰시마해전에 사관후보생으로 참전하여 손가락을 잃은 사람이다. 현해탄 함상에 서 있던 그의 가슴에는 도고 제독이 이상적 원형으로 자리 잡혔다.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를 이상적 모델로 추앙한다. 박정희가 입안한 경부고속도로는 세계 건설공사 사상 유례가 없는 성공이었다고 추억한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건설회사원 이명박의 가슴에는 박정희가 이상적 원형으로 자리 잡혔던 것일까? 그는 청계천 건설공사를 입안하여 추진했다. 그런데 박정희야말로 전형적인 제국 군인이 아니었던가?

이 책의 저자는 진주만 기습을 대단히 성공한 전투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주만 기습에서 일본군은 오직 미국의 함정과 항공기만 공격했을 뿐 유류저장탱크 등에는 전혀 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다. 또한 일본은 아주 비열한 기습으로 인해 외교적 고립을 자초했고 무엇보다도 미국 국민을 일거에 단결시켰다.

마찬가지로 청계천 공사에 대한 평가도 시일이 흐를수록 달라질 가능성이 많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 경제 개발의 전통적 방법만을 묵수하고 있다. 대운하가 안 되니까 4대강 살리기 공사를 벌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전통적인 방법론만을 고집하다 망한 일본 군대의 방식을 방불케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주영사(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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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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