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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월 1일 새벽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새해를 알리는 타종식이 열리는 가운데 촛불을 든 한 시민이 '아듀 2008, 아웃 2MB!'가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1월 1일 새벽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새해를 알리는 타종식이 열리는 가운데 촛불을 든 한 시민이 '아듀 2008, 아웃 2MB!'가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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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왜 이명박 대통령을 '2MB'(2메가바이트)라고 부르는지 이제는 알겠다.

이명박 정부에게는 2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정부 출범 후 1년4개월여의 시간이 있었다. 날수로 치면 490일이다. 그 새털 같은 날들을 허송세월하며 손 놓고 있다가 6월 30일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되자 모든 책임을 국회에 돌리고 있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연일 비정규직 해고 통계를 공개하면서 민주당과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압박하고 있다. 언제부터 정부가 그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랑했는지 눈물겨울 지경이다. 그러나 정작 정부와 공기업은 이른바 '공기업 선진화 계획'에 맞춰 비정규직 근로자를 단계적으로 착착 해고하고 있다. 말로는 해고를 안타까워하면서 행동으로는 해고를 감행하니 영락없는 '악어의 눈물'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언행이다. 이 대통령은 2일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민관합동회의'에서 자신의 비정규직 경험을 예로 들어 비정규직 문제를 거론하며 이렇게 국회에 책임을 떠넘겼다.

"가장 힘든 것은 비정규직이다. 나는 젊어서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 체감을 했다. 법적으로 어떻게 되느냐를 원하는 게 아니고, 일자리를 유지하고 정규직하고 비슷하게 월급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당시에는 똑같은 일을 하고도 비정규직은 정규직 월급의 40%밖에 안됐다. 지금은 환경이 달라졌다. 그러나 국회에서 이렇게 되니까 결국 비정규직이 피해입고 있다.

기업인도 답답할 것이다. 법을 처음 만들 때부터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않고 해서 지금 오히려 일부 비정규직은 도움이 되더라도 다수 비정규직이 어려움에 처했다. 국회가 적절한 기간을 연장하고 그 기간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 연기하는 것도 사실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근본적인 것은 고용의 유연성인데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해결하려고 하면 그 피해는 비정규직이 보니까 충분히 논의할 시간을 연장해 놓고, 여야 의원이 정말 근로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하면 된다고 본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하면 안 된다."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지난 2007년 9월 10일 대통령선걸르 100일 앞두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일대에서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거리 청소를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9월 10일 대통령선걸르 100일 앞두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일대에서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거리 청소를 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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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언에 나타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인식을 보면 왜 사람들이 그를 '2MB'라고 부르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정말 비정규직 문제가 "정치적 목적을 갖고 하면 안 되"지만 "여야 의원이 정말 근로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하면 된다"고 보는 것일까. '근로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결될 일이면 교회 가서 '근로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만 하면 되지, 무엇하러 머리 싸매고 제도와 법을 만든단 말인가.

그는 또 "(젊어서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 법적으로 어떻게 되느냐를 원하는 게 아니고, 일자리를 유지하고 정규직하고 비슷하게 월급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면서 "당시에는 똑같은 일을 하고도 비정규직은 정규직 월급의 40%밖에 안됐다. 지금은 환경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즉, 지금은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비슷한 월급을 받을 만큼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신분 보장보다는 일자리 유지를 더 원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그가 청소부로 일했던 60년대 초반과 지금은 환경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직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정규직 월급의 60~80% 정도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청소부로 일했던 그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신분 보장(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든 취지도 그가 좋아하는 '고용(해고)의 유연성'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는 식으로 확대 해석하는, 이른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더구나 그가 일했던 비정규직(청소부)은 대학 시절에 국한된 파트 타임의 한시직이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정규직 청소부와 비슷한 급여'를 받으면서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지, 급여만 비슷하다면 평생 청소부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얼마나 가난했으면 자신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굴 껍데기처럼 우리 대가족에게 들러붙은 가난은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고 표현했을까 싶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족은 포항 달동네에서 서울 이태원 판자촌으로 이사 왔으나 가난은 떨어질 줄 몰랐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으로 공부해 고려대 상대에 입학했으나 등록금을 댈 일이 막막했다. 그때 어머니가 일한 이태원 시장의 사람들이 그에게 청소부 일자리를 주선해주었다.

"새벽 통행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시장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일이었다. 잘만 하면 등록금은 해결될 듯 싶었다. 만만찮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덤벼들었는데 정말 힘에 부쳤다…(중략)…1학기 등록금만 벌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나는 쓰레기를 치우며 2학년이 되었고 3학년 때에는 학생회장에 출마하기에 이르렀다."(<신화는 없다>)

그가 일한 비정규직(청소부)은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한 한시직이지 평생직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성급한 일반화'에 따르면, 월급이 더 많아지고 일자리만 보장된다면 자신은 평생 청소부를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논리라면 요즘 시급 4~5천원을 받으며 편의점이나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는 대학생들이 신분 보장(정규직)보다는 월급을 더 많이 받기를 원하는 만큼, 대학 졸업 후에도 평생 '알바' 자리만 제공하면 된다는 논리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는 계속 '알바'(청소)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1965년 대학을 졸업하던 그해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해 입사 5년 만에 이사가 되고, 입사 12년 만인 1977년에 마침내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이 되어 '샐러리맨의 신화'를 썼다. 그리고 1992년에 27년간의 현대그룹 생활을 마치고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

중대한 법안이라면 추미애 위원장부터 설득했어야

지난 1일 오후 국회 환노위 위원장실을 찾은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추미애 환노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국회 환노위 위원장실을 찾은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추미애 환노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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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이 대통령과 맞선 추미애 의원(서울 광진을·3선)은 1958년 대구에서 세탁소집 둘째딸로 태어났다. 너 나 없이 넉넉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세탁소를 해서 남들만큼은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 세탁물을 몽땅 잃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신용을 중시한 추미애의 부모님은 고객들의 옷값을 전부 배상해주느라 빈털터리가 되었다. 결국 부모님은 한 입이라도 덜기 위해 세 살이었던 추미애를 외가로 보내게 된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낸 추미애는 어느덧 독립심이 강하고 똑똑한 여고생으로 자랐다. 그가 경북여고 다닐 때의 일이다. 한번은 친구가 촌지를 유난히 밝히는 선생님을 흉보다가 사정없이 따귀를 맞는 일이 벌어졌다. 안타깝지만 아무도 이 부조리한 현실을 말릴 수 없을 때 추미애는 교실을 나왔다. 반에서 1등이며 모범생이던 그의 행동에 모두들 놀랐다.

"그때 저라도 선생님이 잘못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책가방에 책을 넣고 그 즉시 교실을 나왔다. 부조리한 세상의 일면에 그저 반발하고 대항하기만 했지, 변화시킬 수는 없었던 나이 어린 학생이었지만 저는 다짐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부정부패에 맞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소명으로 삼겠다고."(추미애 의원 홈페이지)

그 세탁소집 둘째딸은 법관 생활 10년을 거쳐 정치에 입문해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의 홈페이지 대문에는 "정부·여당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1000만 비정규직 사태를 초래하는 MB악법이다"라는 제목의 글이 커다랗게 실려 있다. 이미 지난 4월 22일부터 올려놓은 글이다.

이는 지난 4월 정부와 여당이 제출한 비정규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추미애' 명의로 작성한 공식 입장이다. 추 위원장은 이 글에서 정부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개진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비중은 정부가 비정규직으로 분류한 550만 명으로도 이미 OECD 국가 가운데서 최악 중의 최악 수준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영세자영업체의 점원과 같이 퇴직금·․상여금·수당·인사규정 등이 없는 취약계층임에도 불구하고, 사용기간을 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통계상 정규직으로 분류된 300만 임시직 근로자를 포함하여 850만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사용제한 기간을 4년으로 완화한다면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850만을 넘어 1000만 비정규직 시대로 추락하게 될 것입니다. 비정규직이 고용형태의 기본이 되고 오히려 정규직이 부차적인 형태로 역전되는, 말 그대로 상시적인 고용불안 사회로 가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환노위원장으로서 정부여당의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강력한 입장을 표명했다.

"며칠 전 한국을 방문한 독일의 연방 하원의원 일행과 양국의 고용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대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임에도 독일은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7세로 올리는 과정에서 그에 맞춰 근로자의 정년도 67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국가정책 결정의 밑바탕에는 근로자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비정규직법 개정은 850만 비정규직 근로자의 미래는 물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차단하고 우리경제의 양극화 해소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정부는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비정규직의 해고가 걸린 중대한 법안이라면 명시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한 추미애 위원장부터 설득했어야 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법안 통과를 위해 민주당 의회 지도자는 물론 공화당 의회 지도자들에게도 일일이 전화하거나 만나서 법안 처리를 설득하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87년 대통령 직선제로 출범한 정부 중에서 이명박 정부만큼 '선제적 대응'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는 정권은 없다(물론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나온 미국식 표현을 차용한 용어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만큼 말만 앞세우는 '무대뽀 대응' 정부도 없다. 그것이 비정규직 문제 속에 감춰진 비극이다.


태그:#2MB, #이명박, #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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