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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0건, 2009년 5월 현재 26건.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한 형사재판(국민참여재판)의 진행건수이다. 대법원이 의욕을 갖고 출발한 제도치고는 너무 초라한 숫자이다. 당사자인 피고인들이 참여재판에 아직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대법원은 살인, 강도상해, 상해치사, 강간상해 등 기존의 사건에 더해 7월부터는 일반 강도, 강간 등과 3천만 원 이상의 뇌물죄 등도 참여재판이 가능하도록 규칙을 개정했다. 하지만 참여재판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2년째를 맞는 참여재판을 돌아본다. 

배심원 재판 시행 1.5% 불과... 피고인도 변호사도 '아직은 글쎄'

국민들은 사법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배심제, 참심제 등 국민의 사법참여를 가장 먼저 꼽아왔다. 지금 시행되는 참여재판은 국민사법참여 정착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사진은 법정영화 ‘타임투킬’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필름.
▲ 한국에서도 배심재판 성공할까. 국민들은 사법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배심제, 참심제 등 국민의 사법참여를 가장 먼저 꼽아왔다. 지금 시행되는 참여재판은 국민사법참여 정착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사진은 법정영화 ‘타임투킬’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필름.
ⓒ 워너브러더스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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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건은 현재 참여재판이 시범실시 단계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낮은 수치다. 시행률(참여재판 대상 사건 중에서 실제 진행 건수)은 1.58%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사형·무기 등 중죄 사건 200건 중에 3건만이 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는 말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피고인들이 제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전체를 위한 제도이지만, 특히 피고인이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피고인이 반대한다면 실익이 없게 된다.

대법원이 지난 5월 피고인 1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1명(84.8%)명이 '국민참여 재판에 대해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작년 12월 서울남부지법의 면접 설문 결과도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설문에 응한 피고인 중 1/4은 참여재판이 배심원에 의한 재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참여재판을 신청하지 않은 까닭(복수응답)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여', '법관에 의한 재판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여'가 가장 많았고, '일반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 '결과가 더 불리할까봐' 등의 사유도 있었다.

변호사들의 관심도 높지 않다. 작년 60건의 참여재판 중에 사선 변호인이 선임된 사건은 17건(21.2%)에 불과하다. 일반 형사사건 변호사 선임률의 절반 정도의 수치이다. 나머지 사건은 대법원이 선정한 국선(전담)변호사가 재판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변호사가 국민참여재판을 별로 신뢰하지 않거나 번거로운 절차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변호사는 "수임료는 차이가 없는데도 참여재판이 일반 형사 재판보다 준비할 게 훨씬 많고, 참여재판이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굳이 무리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 신청 기간, 너무 촉박하다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선택할 충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검찰이 기소하면(사건이 법원으로 넘어오면) 법원은 즉시 피고인에게 공소장을 보내게 되는데, 피고인은 공소장을 받고 1주일 내에 참여재판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현행 법률은 피고인이 기간내에 신청한 사건에 대해서만 법원이 참여재판 진행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있다.

이때는 대체로 변호사 선임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선임직후의 단계이므로 변호인의 법적 조력을 받기 힘들다. 따라서 피고인 혼자서 결정을 내리거나 신청 기간을 넘기기 쉽다. 대법원의 설문 결과를 보더라도 변호사로부터 참여재판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는 피고인은 8.5%에 불과했다.  

참여재판에서 변론을 했던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현재의 기간은 변호사가 사건을 파악하고 피고인과 접견하여 충분한 상의를 하기엔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참여재판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의 신청 기간을 대폭 늘리거나 일정한 요건을 갖춘 중죄 사건은 피고인의 선택과 관계없이 참여재판에 회부하는 등 관련 법규를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배심원의 선택은 참고사항?... 구속력 인정해야

국민참여재판은, 지금까지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일반 형사재판보다 무죄율이 높고 양형에도 불리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배심재판이 열리고 있는 법정의 모습.
▲ 배심재판은 피고인에게 유리할까 국민참여재판은, 지금까지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일반 형사재판보다 무죄율이 높고 양형에도 불리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배심재판이 열리고 있는 법정의 모습.
ⓒ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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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들의 결정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도 개선해야 할 점이다. 법원은 대체로 배심원들의 평결을 존중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 6월 9일 재판에서도 배심원과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렸다.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최재혁 부장판사)는 야간 노상강도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목격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다소 엇갈리고 법정에서도 진술이 달라진 점, 피해자가 범인을 명백히 지목하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증거가 부족하다며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다.

이와 달리 재판부는 "목격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부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고, 나머지 사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피고인은 현재 항소한 상태다.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법률에 따르면 법원은 배심원들의 평결에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다. 다만 판결문에 배심원의 평결결과와 다른 결론은 내린 이유를 기재하면 된다. 지금까지 진행된 86건의 재판 중에서 재판부가 배심원과 다른 판결을 내린 사건은 6건(6.9%)으로 나타났다. 

참여재판에서 2차례 변론을 했던 이영미 국선전담변호사는 "참여재판이 도입된 건 국민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가치를 재판 과정과 결론에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며 "법조인들의 법 논리와 배심원들의 의견이 다르다면, 사회와 현실을 반영하는 배심원들의 생각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배심원의 평결이 판결에 반영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할 사항이다. 

참여재판의 또 다른 문제로는 시간부족이 지적된다. 참여재판은 한건만 집중해서 당일 재판을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검사와 피고인간의 충분한 공방이 이뤄지기엔 시간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너무 복잡한 사실관계와 법리가 얽혀있는 사건은 참여재판에서 제외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보통 재판보다 몇 배 이상 인력과 예산을 써가면서도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회의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밖에도 핵심 증인이 법정에 나오지 않을 경우 사건의 진실 규명이 어렵고, 현장검증 등 장시간이 걸리는 증거조사를 할 수 없다는 것도 난점으로 꼽힌다. 이러한 경우 법원에서 중립적인 조사관을 선발하여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법불신 해소, 무죄율 증가... 성과도 있었다

물론, 참여재판이 가져온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판을 직접 받은 피고인의 만족도가 생각보다 높았다는 점, 일반사건보다 무죄선고율이 높았다는 점(상자기사 참조),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시민들이 다소나마 사법불신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 등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참여재판에서는 전관예우나 유전무죄의 비난이 개입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법원도 제도의 성공을 바라는 분위기다.

부산지법 고종주 부장판사는 '국민참여재판 원년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논문을 통해 "보통사람들의 법 의식이 건전한 상식에 바탕을 둔 상태에서 상당한 정도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 부장판사는 "공판 과정에서 배심원들에게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와 법리를 잘 전달한다면 이 제도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정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판사와 변호사들은 시행 초기 참여재판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피고인 입장에서도 시민들이 재판에 참여함으로써 신뢰도가 높아지고 재판에 승복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그동안 국민들은 사법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배심제, 참심제 등 국민의 사법참여를 가장 먼저 꼽아왔다. 지금 시행되는 참여재판은 국민사법참여 정착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참여재판이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오명을 쓰고 사라질 수도 있다. 시민 배심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국민들의 감시가 성공을 보장할 것으로 믿는다. 

[참여재판 직접 해보니] 배심원들은 유죄인정에 더 엄격했다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에게 별로 유리하지 않은 제도일까. 지금까지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렇지는 않다. 참여재판이 일반 형사재판보다 무죄율이 높고 양형에도 불리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의 분석(<내일신문>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참여재판의 무죄율은 10% 가량으로 나왔다. 일반 형사사건의 무죄율이 2% 미만인 점과 비교하면 의미심장한 수치다. 직업법관들보다 배심원들이 검사의 유죄 증거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영미 변호사는 "현재까지는 참여재판이 일반재판보다 피고인에게 불리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재판을 진행해보니, 유무죄를 다투는 사건은 종전의 서류재판보다 공판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는 참여재판이 피고인에게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참여재판을 경험한 또다른 변호사도 "재판의 결과가 자신들(배심원)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재판에 임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고종주 부장판사는 "사실 판단이나 양형 모두 피고인에게 불리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 참여재판을 경험한 변호인들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고 판사는 "배심원들은 재판부보다 유죄인정에 더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고, 피고인에게 중형을 내리는 데 대단히 신중했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피고인 쪽에서 보면 참여재판은 받아볼 만하다는 말이다.


태그:#배심제, #법원, #국민참여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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