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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낡은 책과 낡아가는 책

 

 1980년대 첫무렵, '부림출판사'에서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님 책을 손바닥책 열다섯 권으로 펴냅니다. 이곳에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내기 앞서 수많은 다른 출판사에서도 띄엄띄엄 이분 책을 냈고, 이때 뒤로도 갖가지 출판사에서 드문드문 이분 책을 내놓았습니다. 《길은 있었네》, 《이 질그릇에도》, 《빛이 있는 동안에》, 《살며 생각하며》, 《빙점》 같은 책은 여러 곳에서 다 다른 판으로 옮겨졌는데, 저작권계약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던 지난날 《창가의 토토》를 이곳저곳에서 슬그머니 펴낸 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다만, 《창가의 토토》는 2000년에 '프로메테우스출판사'에서 새로 펴내며 더욱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은 '한물 간 낡은 이야기'라고들 여기며 손사래를 치곤 합니다.

 

 헌책방에서 《여인의 사연들》(1984,박기동 옮김)이라는 자그마한 책을 찾아내어 읽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읽으려고 산 책은 아닙니다. 개신교 모임에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비슷하게 보내주는 데에 따라가며 한 해 동안 봉사를 한다는 처제가 성경을 읽는다고 하기에 문득 떠올라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랑 안소니 드 멜로 님 책이랑 채규철 님 책이랑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선사하는데, 이 책은 제가 아직 읽어 보지 않아서 저 먼저 찬찬히 훑고 주려고 빼놓습니다.

 

 "하지만요, A꼬 씨, 당신이 결혼한 상대방은 하나님이 아니라구요. 완전하진 못하다구요. 말하자면 평범한 한 사람의 인간인 거예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는 인간인 거예요(16쪽)."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쓸쓸한 '여인'들이 미우라 아야코 님한테 편지를 꽤나 자주 써서 보낸답니다. 이런 편지에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 주다가 몹시 많이 쌓이는 편지를 다 삭여내지 못해 잡지에 '공개 답장'을 적었답니다. 루이제 린저 님도 '마음이 아파 힘들다는' 줄거리로 편지를 써 보내는 사람이 많아, 처음에는 하나하나 답장을 하다가 너무 벅차 '공개 답장'을 아예 낱권책으로 여러 차례 펴낸 적 있습니다. 모두들,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삶에서 겪는 마음앓이를 당신 일처럼 곰삭이며 풀어낸 셈입니다. 겉삶이 아닌 속삶으로 우리 모두 기쁘게 어깨동무하자는 뜻을 나누려 했구나 싶습니다.

 

 "우리들이 아름답게 되는 길은 화장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요? 나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내면에서 풍요로움이 풍겨나오는 그 표정에서 느껴요(54쪽)."

 

 지난주부터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이매진,2008,이유진 씀)라는 이야기책하고 《엄마의 밥상》(얘기구름,2008,박연 그림)이라는 만화책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보름쯤 앞서 인문사회과학책방과 만화전문책방에서 장만했는데, 이와 같은 책이 지난해에 나온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김에 언론 소개글이 있었나 뒤적이니 한두 차례 아주 조그맣게 실린 적이 있고, 꼭 한 번씩 소개글을 써 준 사람이 있으나, 널리 읽힐 만한 자리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혜화동 인문예술책방 〈이음아트〉 큰일꾼은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며 책을 갖추어 놓는다'고 했는데, 이런 책은 작은 책방에든 큰 책방에든 꽂히기 힘들고 우리 눈에 뜨이기도 너무 어려운 나머지, 한 해 두 해 더께만 쌓이다 그예 낡아 버리고 말겠구나 싶습니다.

 

 

 ㄴ. 새로운 책과 새로워지는 책

 

 엊그제 새 자전거를 한 대 장만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타고다닌 자전거는 모두 닳고 망가졌기에 더 손질할 수조차 없었거든요. 자전거를 장만하면서 자전거집 일꾼한테서 '자전거 사용설명서'를 여러 권 얻습니다. '자전거를 새로 장만하는 사람치고 이러한 설명서를 챙기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잔뜩 쌓여 있다고 합니다. 설명서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찬찬히 훑으니, 이 설명서만 꼼꼼히 읽고 스스로 해 보아도 '웬만한 자전거 손질은 스스로 해낼'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이달에 《자전거 홀릭》이라는 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모임을 이끄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쓴 책으로, 자전거를 처음 가까이하거나 이제 막 좋아하려는 사람한테 길잡이가 될 만하구나 싶습니다. 돈으로 사는 자전거가 아닌, 마음으로 껴안는 자전거가 얼마나 좋은 길벗인가를 보여줍니다.

 

 지난달에 《두 발 자전거 배우기》라는 그림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아이들한테 네발자전거에서 두발자전거로 넘어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그림책인데, '자전거를 좋아하며 늘 타는' 제 눈으로 보기에 자전거를 옳게 못 그리기도 했으며, 자전거가 마치 '남보다 빨리 달리려고' 있다는 듯한 이야기를 슬며시 심어 주기에 반갑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왜 자전거를 사 주고 타도록 하고 가르치는가요? 아이들은 왜 자전거를 선물받고 타야 하는가요? 책에 담긴 그림은 예쁘장하지만 그예 예쁘다고만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네발에서 두발로 갈아타는 일이란 '홀로서기'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은 없이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는 기쁨'을 엉뚱한 쪽에서 받아들이도록 한다면, 청계천에 전기로 수도물 끌어들어 흐르게 하면서 시원하다 말하는 모습하고, 또한 서울과 부산에 물길을 내고 나라안 물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하고 매한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지지난달에는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라는 그림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버려진 자전거, 아니, 아이들이 처음에는 엄마 아빠한테 졸라서 '번쩍번쩍'하는  새 자전거를 비싼 값에 장만하고 난 뒤 마구잡이로 싱싱 달리다가 함부로 내던지고 내팽개치고 비오는 날에도 바깥에 두는 바람에 찌그러지고 다치고 구멍나고 빛바래고 슬어 버린 자전거가 되살아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저 스스로도 어린 날 겪어 보았지만, 짐자전거이든 세발자전거이든, 한 주에 한 번은 말끔히 닦아 주어야 오래도록 즐겁게 탄 다음 동생한테든 동무한테든 아이들한테든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아이들은 자전거를 닦을 줄 모르고 내처 달릴 뿐입니다. 자전거 사 주는 어버이 또한 자전거 닦기와 손질을 함께할 줄 모르며, 돈으로 값만 치를 뿐입니다.

 

 나날이 쏟아지는 새 물건이 많으니, 자전거 또한 새롭고 더 나아 보이는 녀석으로 갈아타기만 하면 되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수없이 많은 책이 쏟아지니, 겉보기에 그럴싸한 책을 쥐어들며 자꾸자꾸 새책만 찾으면 되는지 모릅니다. 가짓수는 꾸준히 늘고 새 이야기는 늘 넘치는데, 고이 스며들며 가슴으로 묻어나는 책은 어째 가물에 콩 나는 듯합니다. 새로운 책으로 새로워지는 마음결과 삶터는 찾아보기 어렵고, 새로운 책으로 새로운 돈만 벌겠다는 마음보와 세상물결은 어렵지 않게 찾아봅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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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책읽기, #책이 있는 삶, #새책, #헌책,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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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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