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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가 지났다. 따가운 태양이 한여름을 실감하게 한다. 산 아래 묵정밭엔 망초꽃이  피었다. '망할 놈의 풀'이라고 해서 망초라 부르는 건가? 쳐다보는 이 없어도 어느새 키가 훌쩍 자라 사람들의 관심을 끄려는지 하얀 꽃으로 허리를 흔든다. 한데 어울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그런 대로 보아줄만하다.

본격적인 장마를 앞두고 있는 것 같다. 부지런한 농부는 긴 하루해를 논과 밭에서 보낸다. 가을 추수 때가 가장 바쁘다지만 지금도 만만찮다.

작물은 장마에 부척 큰다. 어디 작물뿐이랴. 망초를 비롯한 온갖 잡풀들도 덩달아 자란다. 장마 전에 풀 자라는 것을 놔두면 작물과 잡초가 서로 키 재기를 한다.

우리 고추밭 고랑에도 풀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호미를 들었다. 흙 속에 풀씨가 반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호미를 들고 살아도 돌아서면 풀이니!

수확의 기쁨이 이런 것일까?

풀과 한판 씨름을 벌이고 있는데, 옆집아저씨가 우리 집 매실나무를 쳐다보며 날 부른다.

우리 집 매실나무에 매실이 닥지닥지 달렸다.
 우리 집 매실나무에 매실이 닥지닥지 달렸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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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만 매지 말고 매실을 따야지? 매실이 잘 여물었구먼!"
"전 덜 여물지 않았나 했는데요."
"하지 지나면 다 익은 거야. 술은 담던, 효소를 내리던 지금이 딱일 것 같은데!"
"그래요?"

아저씨가 매실 한 개를 따서 돌멩이로 깨뜨려본다. 매실이 깨지면서 여문 씨가 들어난다. 아저씬 단단한 씨를 내게 건네며 잘 익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졸지에 새 일감이 생겼다. 김매는 것은 나중 일이다. 호미를 내던졌다. 사다리를 나무 밑에 걸쳤다. 아내더러 매실효소나 담가달라고 해야겠다.

매실은 이른 봄, 하얀 꽃을 피워 봄소식을 전해주었다. 매실꽃과 함께 살구꽃이 피었을 때, 온 집안이 꽃 세상이라고 아내는 즐거워했다. 그리고 어느새 가지가 늘어질 정도로 열매가 달렸다. 자라는 데 큰 보탬을 준 것도 없는데 얻는 게 많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게 이런 것일까? 수확의 기쁨을 안겨준 매실나무가 참 고맙다.

톡톡 손에 닿는 과실의 느낌이 참 좋다. 토실토실한 열매를 건들자 다닥다닥 달린 것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열매가 나뭇잎과 같은 색이라 딴 자리를 또 쳐다보게 된다.

진딧물 피해로 모양은 썩 좋지 않다. 그래도 무공해라 여기니까 소중하다.
 진딧물 피해로 모양은 썩 좋지 않다. 그래도 무공해라 여기니까 소중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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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매실에 점박이가 많아요?"
"진딧물 때문이지! 미리 약을 쳤어야했는데, 용케도 많이 달렸는걸."
"이런 게 무공해라 하겠죠?"
"그럼! 다 따고선 약을 한 번 치라고? 그래야 내년을 기약하지!"

사다리에 올라 매실 따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나뭇가지에 뾰족한 가시가 있어 조심스럽다. 고개가 아프다. 겨드랑이에 땀도 흥건하다. 그래도 즐겁다.

청매실, 황매실 어느 게 좋을까?

우리 집 매실나무는 5년생이다. 처음 네 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는 다음해 이유 없이 죽고, 한 그루는 태풍에 쓰러졌다. 자라면서 병충해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살아남은 두 그루가 무성하게 자랐다. 작년에 처음으로 조금 열리더니 올핸 대 수확으로 풍요로움을 준 것이다.

매실나무에 달린 과일이 탐스럽다.
 매실나무에 달린 과일이 탐스럽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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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밭으로 나왔다. 우리가 매실 따는 것을 보더니 손사래를 친다.

"여보, 뭐 하러 매실을 지금 따?"
"이사람, 매실은 지금 따는 게 맞는 거야!"
"노르스름하게 익은 걸로 효소를 담가야 맛도 좋고, 영양도 좋다던데!"
"그럼 다 따지 말고 남겨 둬?"

아저씨는 잠자코 듣고만 있다가 한 마디 거든다.

"망종 지나면 다 익은 거나 마찬가지에요. 하지도 지났는데…. 하기야 장사할 것도 아니고, 바로 따서 담글 거니까 누렇게 익을 걸로 담그면 나을지도 모르지!"

아내 말로는 청매실은 장아찌용이란다. 덜 익은 걸로 효소를 내리면 맛이 씁쓰름하고 약간 시다는 것이다. 대신, 황매실로 담그면 향도 좋고, 맛도 좋을 거라고 한다. 아내는 나머진 한 열흘만 두고 따자고 우긴다. 고집이 센 건가, 맞는 이야기인가?

아저씨께 한 보따리를 안기고도 소쿠리로 가득이다. 아직 나무에 달린 것도 거둔 것만큼 남지 않았나 싶다. 아내는 누르스름하게 잘 익은 것으로 효소를 내려보자고 한다. 청매실효소가 맛있을까, 황매실효소가 맛있을까? 그야 나중 판가름이 나겠지!

매실효소를 담그는데도 요령이 있다

우리가 거둔 매실이다. 12kg이나 되었다.
 우리가 거둔 매실이다. 12kg이나 되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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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박에 쏟아 부은 매실이 수월찮다. 아내와 함께 매실을 깨끗이 씻는다. 함께 일을 하니 재미도 있고 힘도 덜 든다. 서너 차례 헹궈낸 매실이 땡글땡글하다. 평상에 넓게 펴 물기를 말린다. 따가운 햇살아래 알갱이들이 더욱 푸른빛이 난다.

"여보, 어디 다 담지? 그리고 황설탕으로 백설탕으로?"

아내가 참견이 많다며 장독대에서 항아리나 가져오란다. 항아리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렸다.

"이제 설탕 사러 갑시다. 효소를 내릴 땐 황설탕이 좋아요."

담글 항아리도 준비하고, 설탕도 사왔다. 매실에 물기가 말랐다. 아내가 매실 무게를 달아본다. 무게를 알아야 들어갈 설탕의 양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실과 같은 양의 설탕을 준비하였다.

잘 말린 매실로 효소를 담고 있는 아내
 잘 말린 매실로 효소를 담고 있는 아내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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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매실을 죄다 항아리에 넣는다. 그리고 매실이 담긴 항아리에 설탕을 쏟아 붓는다.

"여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네?"
"뭐가요? 매실을 설탕에 켜켜이 재우지 않는다고?"
"그래야 잘 숙성될 것 같은데…."
"고구마 가마니 속에 깨가 한 말 들어간다는 말도 몰라요?"

아내가 둘러대는 말이 우습다. 그러고 보니 매실 알맹이 속으로 작은 입자의 설탕이 스멀스멀 들어간다. 남은 설탕으로 도톰하게 위를 채워둔다. 마지막으로 랩을 씌워 끈으로 단단히 묶어두니 일이 끝난다.

항아리에 황설탕으로 매실효소를 담갔다. 100여일쯤 지나면 맛난 효소로 탄생할 것이다.
 항아리에 황설탕으로 매실효소를 담갔다. 100여일쯤 지나면 맛난 효소로 탄생할 것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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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석 달 열흘 동안 진득하게 기다려보잔다. 정말 맛난 효소가 탄생할까? 매실효소는 음료로도 음식 양념으로 귀하게 쓰일 거란다.

아내가 손을 털고 일어서며 한 마디 한다.

"당신, 나중 황매실 따서 담글 땐 내 손 안 거쳐도 되죠? 내가 한 것처럼 하면 되니까!"

별로 어렵지 않은 매실효소 담그는 것 가지고 아내는 공치사가 많다. 그래도 함께 열심히 일해 준 아내가 고맙다.


태그:#매실, #매실효소, #청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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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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