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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멋을 부린 허수아비 아가씨
 한껏 멋을 부린 허수아비 아가씨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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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심학산 꽃축제 컨셉은 가짜구먼!"
"꽃축제 컨셉이 가짜라니 무슨 소리야?"

꽃 축제장을 한 바퀴 돌아본 아우가 뜬금없이 불쑥 던진 말이다. '가짜'가 컨셉이란다. 꽃축제장의 컨셉이 가짜라니 조금은 황당해서 왜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양귀비꽃도 진짜 양귀비가 아니라 '개양귀비'고, 허수아비 자체가 사람을 흉내 낸 가짜인데, 그나마 곡식이 있는 논밭이 아니라 꽃밭에 서있으니 "이게 가짜 아니고 뭐냐?"며 웃는다.

지난 6월 5일 아우 부부와 함께 찾은 경기도 파주시 심학산 돌곶이 꽃축제장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우리처럼 축제기간이 이미 끝난 축제장을 찾은 사람들은 정보에 어두웠거나 아니면 매우 게으른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뒤늦은 꽃축제장을 돌아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만은 않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우선 축제기간이 이미 지난 뒤여서 사람들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기간이 지나 싱싱함을 잃고 조금은 풀이 죽은 꽃들의 애잔한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꽃축제장 풍경, 뒤에 보이는 산이 심학산
 꽃축제장 풍경, 뒤에 보이는 산이 심학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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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풍경
 꽃밭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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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지역의 그 유명한 꽃축제장처럼 너무 틀에 꽉 맞춰진 모습이 아니어서 더욱 좋았다. 뭐랄까? 조금은 느슨하고, 허술하고, 산만하게 흐트러져 있는 모습이랄까, 그래서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오는 모습이 좋았던 것 같았다. 잘 정비되지 않은 길이며 엉성하게 하얀 꽃밭에 듬성듬성 흩뿌려 놓은 듯한 빨간 개양귀비꽃들이 그랬다.

그리고 여기저기 다양한 모습으로 서있는 허수아비들도 매우 친근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꽃대궐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하게 꾸며놓은 공간은 찾아보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손길이 너무 많이 배어있어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린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꽃축제장은 심학산 산자락 아래 상당히 넓은 면적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중심이 되는 언덕을 오른편으로 돌아 나오자 밭고랑 모습의 꽃밭들이 나타난다. 작고 하얀 꽃들과 개양귀비 꽃밭이었다. 그런데 씨앗을 잘 못 뿌렸는지, 가꾸기가 허술했던지, 여기저기 빈틈이 보이고 자란 모습도 허술하다.

그 허술한 모습이 오히려 정감어린 표정으로 다가온 것이다. 더구나 그냥 몽땅 새빨간 개양귀비 일색이었으면 조금은 지루하고 식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꽃술이 매우 작은 하얀 꽃밭에 여기저기 피어 있는 빨간 개양귀비 꽃들이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심학산 산자락 아래 돌곶이 꽃마을 풍경
 심학산 산자락 아래 돌곶이 꽃마을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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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개양귀비가 설마 아편은 아니겠지?"

아우가 조금 의심스러운 듯 묻는다. 꽃모양도 그렇고 이름이 개양귀비여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개양귀비는 양귀비처럼 마약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꽃이 아니다. 그냥 관상용 꽃인 것이다.

양귀비꽃은 원산지가 유럽이다. 이름이 오피움인데 중국으로 전래된 후 아편으로 음역되어 불린 것이다. 양귀비꽃은 이름에 얽힌 전설도 많다. 당나라 현종의 왕비였던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꽃이라 하여 양귀비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양귀비꽃의 또 다른 이름은 '우미인 초'다. 초한시대 마지막 때, 초나라 항우의 애첩이었던 우미인은 항우와 함께 있다가 유방의 군대에 포위당하여 마지막이 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항우는 이때 자신의 마지막 운명을 직감하고 우미인과의 석별의 정을 담은 시 한 수를 지어 읊는다.

우미인은 항우의 시에 맞춰 노래를 부른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애틋한 사랑을 마감한다. 그런데 그 뒤 그녀의 무덤 위에 새빨간 꽃 한 송이가 피어났는데 바로 양귀비꽃이었다. 그래서 그 뒤부터 양귀비꽃을 '우미인 초'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흰꽃과 어우러진 새빨간 개양귀비꽃
 흰꽃과 어우러진 새빨간 개양귀비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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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모양의 허수아비
 토끼 모양의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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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연방 국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일에는 개양귀비꽃 조화를 사용한다.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캐나다 군 장교 한 사람이 쓴 '개양귀비 들판에서'라는 시에서 유래된 전통이다. 캐나다에서는 매년 종전기념일인 11월11일 11시에 2분간의 묵념 후, 이 시를 낭독하거나 배운다고 한다.

개양귀비 들판에서

플랜더즈 들판에 개양귀비꽃 피었네,
줄줄이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그 십자가는 우리가 누운 곳 알려주기 위한 것
그리고 하늘에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아오르건만
저 밑에 요란한 총소리 있어 그 노래 잘 들리지 않네.

우리는 이제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
며칠 전만 해도 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석양을 바라보았네.
사랑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였지만
지금 우리는 플랜더즈 들판에 이렇게 누워 있다네.

원수들과 우리들의 싸움 포기하려는데
힘이 빠져가는 내 손으로 그대 향해 던지는 이 횃불
그대 붙잡고 높이 들게나
우리와의 신의를 그대 저 버린다면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
비록 플랜더즈 들판에 개양귀비 자란다 하여도

이 시를 쓴 존 맥크래(John McCrae 1872~1918)중령은 당시 캐나다군 군의관으로 전쟁에 참가했다. 그는 친구 알렉시스 헬머 중위가 전쟁에서 전사한 후 1915년 5월 3일에 이 시를 썼다. 그해 12월 8일 펀치 매거진이란 잡지를 통해 발표되어 당시 가장 유명한 시가 되었다.

넥타이 멘 허수아비
 넥타이 멘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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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허수아비 아가씨 옆에 아들을 세우고 사진 찍어주는 젊은 엄마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허수아비 아가씨 옆에 아들을 세우고 사진 찍어주는 젊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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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축제장의 꽃밭 곳곳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허수아비들이 서있는 풍경이 이채롭다. 그래서 축제장을 찾은 사람들은 꽃구경과 함께 허수아비들과 사진 찍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 젊은 엄마는 아들을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힌 허수아비 아가씨 옆에 세우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허수아비는 본래 곡식이 익어가는 논밭에 서있어야 제격이다. 곡식을 노리고 덤벼드는 들짐승과 새들을 막아보자고 농민들이 생각해낸 가짜 사람이 바로 허수아비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허수아비들이 우리네 농촌 들녘에서 서서히 거의 사라져 버렸다.

농약과 환경파괴로 참새 떼들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허수아비들이 당치않게 각종 축제장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허수아비는 이제 농민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제장의 한 멤버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파주 심학산 돌곶이꽃축제장의 허수아비들도 그랬다. 그들이 그곳에 서있는 이유는 본래 그들이 태어난 목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들짐승과 참새 떼들로부터 농민들의 곡식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요깃거리로 서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우의 '꽃축제 컨셉'이 '가짜'라는 지적은 어쩌면 매우 타당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허수아비들을 바라보노라면 입가에 웃음이 절로 피어난다. 옛날 농민들이 논밭에 세워놓았던 허수아비들과는 그 모습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허수아비들도 시절에 맞춰 진화를 한 셈이다. 한 마디로 꽃축제장의 허수아비들은 멋쟁이들이었다. 이름도 '허수아비'가 아니라 '허수어미'나 '허수아가씨'가 어울리는 모습들이었다. 옷차림이 화려했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고왔다.

선글라스에 스카프까지 두른 멋쟁이 허수아비아가씨
 선글라스에 스카프까지 두른 멋쟁이 허수아비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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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축제장의 저녁놀
 꽃축제장의 저녁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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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화장한 얼굴에 선글라스를 끼고 목에는 스카프를 두른 모습도 보인다. 남자 모습인 허수아비는 넥타이까지 멨다. 손에는 핸드백을 든 아가씨 모습도 보이고 빨간색 염색머리에 화관까지 썼으니 이만하면 성장 아닌가.

꽃축제장은 인근 마을 안길과 정원, 그리고 골목길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딱딱하게 정형화 된 다른 꽃축제장과는 전혀 다른 다양하고 소박한 모습이기도 했다. 더욱이 '꽃대궐'을 제외 하면 다른 지역은 입장료도 받지 않으니 금상첨화였다. 내년 5월에도 이곳에 꽃 축제가 열릴 것인지 은근히 기대되는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심학산 돌곶이 꽃축제, #개양귀비, #허수아비,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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