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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20일 밤 9시 10분]

 

용산 참사가 벌어진 지 다섯 달이 되는 20일, 다시 경찰 진압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유가족들이 병원으로 실려나갔다.

 

이날 남일당 현장에서는 경찰과의 대치 끝에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 고 한대성씨 부인 신숙자씨가 잇따라 실신하거나 탈진해 응급차를 탔다.

 

함께 있던 전종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신부도 실신해 결국 병원으로 후송됐다. 전 신부는 이날로 엿새째 단식 중이었다.

 

유가족 4명, 신부 1명 병원으로... 참가자 3명 연행

 

 

이날 오후 6시께 추모문화제를 마친 참가자 100여 명은 약 1시간 동안 용산역까지 행진한 뒤 남일당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유가족들과 참가자 30여 명은 인도로 들어가지 않았다. 거리행진 도중 경찰과 대치과정에서 영정이 파손되자 이들은 경찰에 항의하며 차도에 앉았다.

 

저녁 7시 20분께 경찰은 "도로 교통을 방해하고 있다"며 참가자들을 인도로 끌어냈고, 이에 항의하는 참가자 3명을 연행했다. 한 명은 인도에 이미 밀려나 있었지만 경찰 연행을 피할 수 없었다.

 

경찰은 차도에 남은 유가족을 둘러쌌고, 인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참가자들과 추모미사를 위해 현장에 있던 신부들이 경찰에 항의하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 참가자는 경찰들을 향해 오물을 던지기도 했다. 이 같은 대치상황은 저녁 8시 40분께 경찰들이 영정을 수리해 돌려주고 유가족들을 한 명씩 떼어내 인도로 끌어내면서 모두 끝났다.

 

전날인 19일에도 용산 현장에서는 부상과 농성이 잇따랐다. 정체불명의 한 남성이 현장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시민을 채증하자 사제단이 경찰에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나승구 신부가 팔이 꺾이고 땅바닥에 짓눌려 찰과상을 입었다.

 

홍석만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참사가 일어난지 다섯 달이 지났지만 용산의 현실은 여전히 '연행' '부상' '실신'이다, 영정을 수리해달라는 사소한 요구 하나 이루는데 네 분이나 실려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 대변인은 "이전에도 청와대나 검찰에 항의하러 가는 유가족들이 연행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식 법과 원칙에 맞장을 뜨자"

 

이에 앞서 오후 4시 용산 현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는 200여 명의 시민과 철거민들이 모여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이날 비옷을 입은 채 앞줄에 앉은 유가족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용산철거민변호인단에서 활동하는 권영국 변호사는 이날 무대차량에 올라 "검찰이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지 않는데도 법원은 아무 제재도 안 하고 있다"면서 "부조리한 재판에는 협조할 수 없다, 변론을 거부하는 것이 검찰의 사건 은폐와 법원의 방조를 드러내는 지름길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검찰의 이중잣대를 비난했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수사 진술을 하나하나 공개했고, 사건과 무관한 '명품시계'까지 언론에 흘렸다. PD수첩을 수사하면서는 개인의 이메일까지 공개했다. 그런 검찰이 왜 용산에 대해서는 '(수사기록에 언급되는) 검찰의 사생활 때문에 공개하지 못한다'고 말하냐.

 

그러면서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말한다. 이것이 어느 나라의 법과 원칙이냐.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감추면서 '법'이라고 하고, 개인 사생활을 드러내놓고는 그것도 '법'이라고 한다. 그런 법과 원칙이라면 우리가 맞장을 뜨자."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도 "3000쪽을 얻어내고 우리 아들과 동지가 석방되고 돌아가신 분들을 하늘나라로 보낼 때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보였다.

 

전재숙씨는 "지금 순천향병원 영안실에서 생활하는 유가족 중에는 중고등학생도 있는데, 다행히 착하고 예쁘게 커주고 있다"고 자신들의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참가자들을 향해 "세상에 저희뿐인 것 같아서 울고불고 했지만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함께해주고 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매일 현장을 지키며 촛불미사를 드리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양심 때문에 떠날 수가 없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며 "냉동고에 갇혀 얼어있는 뼈들이 일어나 춤추는 그날까지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태그:#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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