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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평왕(조민기 분)의 품에 안겨 있는 김춘추. 드라마 <선덕여왕>.

 

진평왕(조민기 분)이 차기 후계자로 점찍은 김용수(진지왕의 장남)가 공을 세우기 위해 참전했다가 사망한 이후, 용수의 부인인 천명공주(신세경 분)는 불가에 귀의하겠다면서 신라 궁궐을 떠났다. 승려가 된 천명공주는 사찰에서 아들 김춘추를 낳았고, 사찰을 방문한 김용춘(용수의 동생)은 조카의 얼굴을 처음 보며 반가워했다. <선덕여왕> 제6부에서 방영된 이야기다.

 

6월 16일 방영된 <선덕여왕> 제8부에서 천명공주는 천신만고 끝에 1년 만에 궁궐로 돌아와 김춘추를 부모의 품에 안겼고, 오랜만에 남자 왕족을 얻은 진평왕 부부는 "용수의 아들!"이라며 감격해 마지않았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묘사된 위의 상황은 상당히 미묘한 의미를 갖는 사안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사료상으로 불투명했던 미묘한 문제를 '아주 명쾌하게' 판정했기 때문이다. 그 미묘한 문제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김춘추의 생부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삼국시대의 가장 유명한 왕들 중 한 명이라서 혈통에 관한 기록이 상세히 남아 있을 법도 하지만 사료의 기록태도가 불분명하여 판단을 유보해둘 수밖에 없었던 김춘추의 생부에 관한 문제를, 드라마 <선덕여왕>이 아주 명쾌하게 판정해 주었다. 김춘추의 아버지는 용수라고….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는 누구?

 

그러나 이 문제는 드라마에서처럼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기존 사료들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먼저, 김부식의 <삼국사기> 권5 '태종왕 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종무열왕이 즉위하니, 이름은 춘추이고 진지왕의 아들인 이찬 용춘[일설에는 용수]의 아들이다(<당서>에서는 진덕의 동생이라고 하지만, 잘못이다)."(太宗武烈王立, 諱春秋, 眞智王子伊湌龍春[一云龍樹]之子也[唐書以爲眞德之弟, 誤也]

 

참고로, [ ]는 <삼국사기> 원문의 주석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페이지의 맨 밑에 일괄적으로 각주를 붙이지만, 과거에는 해당 글자의 바로 밑에 작은 글씨로 주석을 달았다. 

 

위의 <삼국사기> 본문에서는 '김춘추는 용춘의 아들'이라고 했지만, 주석에서는 '일설에는 용수의 아들이라고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용춘과 용수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용춘 외에 용수라는 사람이 따로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용춘의 또 다른 이름이 용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삼국유사>의 기록태도는 좀 다르다. <삼국유사> 권1 왕력(王曆)에서는 "용춘을 용수라고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용수는 용춘의 또 다른 이름이 되는 한편, 용춘과 용수가 별개의 사람일 가능성은 없어진다.

 

두 사료의 내용을 종합하면, 김춘추는 용수라고도 불리는 용춘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지만 용춘이 아닌 용수라는 또 다른 인물의 아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용춘과 용수 양쪽에 모두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그래도 용춘 쪽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기존 사료의 기술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용춘 쪽에 비중이 실리긴 했지만 기존 사료의 기술태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유명 포털 백과사전의 '김춘추' 항목에서는 "용춘(龍春:龍樹)의 아들"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용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도 괄호 안의 한자에서는 용춘과 용수를 함께 표기해 놓은 것이다. 이 점은, 학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어느 <삼국유사> 번역문 데이터베이스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김춘추의 아버지

 

 <선덕여왕>에서 용수공의 동생으로 나오는 용춘공.

그런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김춘추의 아버지는 용수이며 용수는 용춘의 형'이라고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무슨 강조라도 하려는 듯이, <선덕여왕> 제8부에서 천명공주의 부모인 진평왕 부부는 "우리 천명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용수를 거명하면서 "용수의 아들!"이라며 여러 번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는 <선덕여왕>의 작가가 이 문제에 대해 그만큼 '확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이 같은 인물 설정은 위작 논란이 있는 현존 <화랑세기>(필사본)에 근거한 것이다. <화랑세기>(필사본)의 18세 풍월주 춘추공 기사에는 "아버지인 용수공이라는 사람은 금륜왕(진지왕)의 아들이다"(父龍樹公者, 金輪王之者也)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위의 "아버지 용수공이라는 사람은"(父龍樹公者)이라는 부분과 관련해 어느 유명한 현존 <화랑세기> 번역서의 경우, 원문 코너에는 "父龍樹公者"이라고 표기했으면서도 번역문 코너에는 "아버지는 용춘공"이라고 표기해놓았다. 원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생긴 듯하다. 그래서 그 번역서의 그 부분만 읽을 경우에는 '현존 <화랑세기>(필사본)에서는 김춘추의 아버지는 용춘이라고 기록했다'라고 잘못 이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편, <화랑세기>(필사본)의 제13세 풍월주 용춘공 기사에서는 용춘과 용수가 전혀 별개의 사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위와 같은 현존 <화랑세기>(필사본)를 토대로 할 때, 김춘추의 아버지는 확실히 용수이며 용수는 용춘과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앞에서 살펴본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내용과 함께, 위작 논란이 있는 현존 <화랑세기>의 내용까지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삼국유사>와 현존 <화랑세기>(필사본)는 명확히 상반된다는 점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용춘과 용수가 동일인이라고 했지만, 현존 <화랑세기>에서는 용춘과 용수는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둘째, <삼국사기>와 현존 <화랑세기>(필사본)는 해석 여하에 따라 상반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설에는 용수"라는 <삼국사기>의 표현을 '일설에는 용춘이 아닌 용수의 아들이라는 말이 있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두 사료의 내용은 일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반해, "일설에는 용수"라는 표현을 '일설에는 용춘을 용수라고도 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두 사료는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천명공주는 용수가 아닌 용춘을 더 사랑했다?

 

위와 같이 김춘추의 생부가 누구인지를 가리는 일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삼국시대의 가장 유명한 왕 중 하나인 김춘추의 혈통에 관한 기록이 이처럼 불투명한 것은 좀 의외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유감스럽게도,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물론이고 현존 <화랑세기>(필사본)의 내용까지도 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춘추의 생부가 누구인가'라는 이 난해한 문제보다 더 흥미로운 문제가 있다. 그것은 '김춘추의 생부를 판정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들까?'하는 문제다.

 

김부식이 '김춘추는 용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도 주석에다가 '일설에는 용수라는 말도 있다'고 한 것은 김부식(1075~1151년)이 살던 시대에도 김춘추의 생부에 관한 논란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삼국유사>를 쓰기 전에 <삼국사기>를 읽었을 일연(1206~1289년)이 김부식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용춘과 용수는 동일인'이라며 김부식과 약간 다르게 기술한 것은 일연의 시대에 또 다른 관점이 나올 정도로 김부식 사후에도 이 논쟁이 계속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큼 이 문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천명공주는 남편인 용수공을 잃은 뒤, 아들인 김춘추를 낳기 위해 불가에 귀의 했다.

그럼, 김부식과 일연이 헷갈렸을 정도로 김춘추의 생부 문제가 복잡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어떤 속사정이 있을까?

 

그런데 현존 <화랑세기>(필사본)를 읽다 보면, 이 문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현존 <화랑세기>(필사본)의 13세 풍월주 용춘공 기사에서는, 천명공주가 용수와 결혼을 하기 이전부터 그리고 결혼을 한 이후에도 여전히 용춘을 더 많이 사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루는 천명공주가 은밀히 용춘에게 "첩이 본래 사모한 사람은 당신"이라고 고백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 천명공주의 어머니인 마야왕비가 주선해 천명공주와 용춘이 함께 잠을 잔 적이 많으며, 용수 역시 그런 낌새를 알아채고 스스로 자리를 비켜주곤 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존 <화랑세기>(필사본)의 내용을 놓고 보면, 낮에는 용수가 천명공주 옆에 있는 때가 많았고 밤에는 용춘이 그 옆에 있는 때가 많았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천명의 공식적인 남편은 용수이지만 실질적인 남편은 용춘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용수와 용춘이 환생하면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만약 현존 <화랑세기>(필사본)가 정말로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그대로 베낀 책이라면, 우리는 김춘추의 아버지가 용춘이냐 용수냐를 두고 오래도록 논란이 전개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천명공주가 용수·용춘 두 형제와 동시에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천명공주가 낳은 김춘추의 생부에 관한 논란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현존 <화랑세기>(필사본)가 진짜라면, 일처다부와 일부다처가 뒤섞여서 한 사람이 여러 명의 파트너를 두고 그 여러 명 중의 한 명도 동시에 또 다른 여러 명의 파트너를 두었던 신라 왕실 및 지배층의 성풍습 하에서 김춘추의 어머니인 천명공주가 용수·용춘 두 형제와 동시에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서는 김춘추의 생부가 누구인가를 놓고 의혹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당사자 중 하나인 용수와 용춘이 환생한다 해도 그들로부터 명확한 해답을 들을 수 없을지 모른다. 또 다른 당사자인 천명공주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좀 더 사실에 가까운 답을 들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 역시 정확한 진상을 몰랐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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