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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갑작스러운 죽음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고인의 공과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은밀한 수사정보를 주고받으면서 피의자에게 모욕감을 주고 사건을 키우는 검찰과 언론의 행태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크다. 정치와 언론이 유착하는 시대를 지나 검찰과 언론의 유착이 빚어낸 '검언복합체'를 견제해야 한다는 게 비판론의 골자다. <오마이뉴스>는 3회에 걸쳐 '검언복합체'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언론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콕콕 집어 지적했기에 언론과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언론에 '신뢰의 위기'라는 시련을 안겨주고 떠났다. 고인을 동정하는 여론은 그를 압박한 검찰은 물론이고 검찰의 '확성기' 역할을 한 언론에도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비난의 주요 타깃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지만 방송사들과 <오마이뉴스>, <한겨레>, <경향신문> 같은 진보언론도 불행한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일단 임채진 검찰총장의 사퇴로 악화된 여론을 진정시키려는 몸짓을 하고 있지만, 또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이 이번 사태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는 뚜렷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2일 검찰과 언론의 생리를 잘 아는 전·현직 기자들을 인터뷰했다. 이 중  <동아일보> 기자였던 양기대(민주당 경기광명을 지역위원장)씨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기자상을 9차례 수상한 법조계 베테랑이었고, 익명의 현직 기자는 2000년대 들어 검찰을 줄곧 출입하며 검사와 기자들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각각 인터뷰에서 ▲ 피의사실 공표 ▲ 검찰-언론의 유착 ▲ 공판중심 보도 등의 쟁점에 대해 엇비슷한 의견을 제시했지만, 양자가 느끼는 온도 차도 적지 않았다.

 

전·현직 기자들이 느끼는 검찰과 언론의 문제와 고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양기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피의사실을 알리는 게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사실인데, 이번 사건에서는 검찰이 명품시계 등등 너무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발표했다.

 

그러니 검찰이 언론에 일부러 예민한 내용을 흘린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게 아닌가? 검찰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한 다음에 언론과 시민사회의 공감을 얻는 절차가 필요하다."

 

[현직 기자]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공식브리핑을 문제 삼고 있는데, 검찰 브리핑의 상당 부분이 전날 또는 당일 나온 타사 단독보도를 확인하는 내용이다.

 

기자들이 개별적으로 취재한 특종 보도까지 막을 방법이 있나?

 

기자들을 조사해도 취재원을 얘기할 리도 없고 대부분 무혐의로 끝난다. 피의사실 공표 처벌은 사실상 사문화된 법 조항인데, 차라리 검찰 수사 시스템을 개선하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지는 게 맞다."

 

- 언론사들이 피의자들의 혐의를 너무 단정적으로 보도한 건 아닐까?
[양기대] "언론사끼리 특종 경쟁이 붙으면 인권이나 원칙과 정도, 이런 것들은 뒷전으로 밀린다. 기자들은 기자들대로 특종에 혈안이 되고, 언론사 간부들도 양질의 기사를 요구하니까…. 뭘 쓸까 고민하는데 '지면 비워놓았으니 빨리 메우라'는 전화 오면 미칠 노릇이다.

한편으로, 검찰이 거물들을 타깃으로 수사할 때 항상 이랬던 건 사실이다. 국민들의 관심이 다 그쪽으로 쏠리는데 언론은 따라갈 수밖에 없지.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아쉬운 점은 과거에는 이 정도 사건이면 검찰 공식브리핑이 시작된 후 15일 정도 지나면 마무리가 됐다. 전두환·노태우씨 구속 수사할 때도 그 정도 시간이면 사건의 가닥이 잡혔는데, 이번에는 전직 대통령을 소환한 후에도 갑자기 딸의 아파트계약서를 뒤지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더라."

 

[현직 기자] "확인된 사실만 쓰자, 피의자 반론권 보장하자는 등 언론사들의 가이드라인은 수도 없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번번이 깨지기 일쑤다. 일단 취재경쟁이 시작됐는데, 타사에 물먹으면 뭐라도 하나 건져서 기사를 써야 하는 게 우리 언론의 현실이니까…."

 

"검찰 깰 만한 논거 제시한 피의자 본 적 없어"

 

- 검찰발 기사들을 보면 검찰 발표에 비해 피의자 반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양기대] "피의자 반론을 반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피의자는 일단 언론에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면 언론 접촉을 피하려고 하고, 일단 구속이 되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기자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나 죄 없다'고 버티다가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사람이 '검찰에 다 얘기했다'며 슬그머니 숨는 이유가 뭘까? 설마 하는 마음으로 조사받으러 갔는데 검찰이 자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것을 안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태반이니 피의자 입장에서 기사를 써주기가 어렵지."


[현직 기자] "검찰 발표와 피의자 반론을 비슷한 분량으로 맞춰서 쓴다는 게 솔직히 어렵다. 예를 들어, 검찰은 '누가 뇌물 받았다'는 사실을 서너 가지 근거를 들어 얘기하는데 피의자 입에서는 '그런 적 없다'는 말 이상으로 나오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도 검찰 출입을 꽤 오래한 기자인데, 검찰의 주장을 깰만한 논거를 제시하는 피의자를 본 적이 없다. 더 나아가 '인터뷰 응하기 싫다'고 하거나 아예 전화도 안 받는 게 태반이다. 우리도 참 곤혹스럽다.

 

기사에 검찰의 입장을 대변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피의자를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자꾸 쌓이니까... 박연차 사건도 노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다른 정치인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처음에는 철저히 부인하다가 검찰 다녀간 다음에는 '일부 받았다'고 시인하는 식이다. 부인하다가 이런 식으로 들통나는 피의자가 60~70%는 된다. 자연스럽게 검찰 발표에 무게중심이 실리게 된다."

 

- 기자들이 재판 기사를 잘 안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기대] "과정보다는 결론을 중시하는 저널리즘에 익숙했다. 검찰 기소단계에서 피의자의 범죄 사실을 기사로 다 써버리고 나면 재판에서는 이를 뒤집는 새로운 사실이 좀처럼 안 나온다. 그러다보니 재판이 열리면 중간 공판은 건너뛰고 판결 기사만 쓰게 된다. 나도 그랬지만 우리 기자들이 반론보도에는 인색하다. 어지간히 큰 사건 아니면 기소 단계에서 떠들썩하게 썼다가도 무죄 나오면 그냥 1단으로 처리한다. 이름깨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가 이 정도인데 서민들이야 오죽하겠냐? 이런 건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바뀌지 않는다. 뭐든지 빨리빨리 해치우고 결론 내리는 국민들의 성격에도 문제가 있고, '검찰이 이유 없이 기소했겠냐'는 식으로 피의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인식도 사라져야 한다."

 

[현직 기자] "아직 이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법조 출입 기자들이 한결 부담은 덜겠지만, 재판에서 새로운 뉴스가 잘 안 나온다는 게 고민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 같은 사람이 법정에 나온다면 모를까? 기자들에게 재판 기사가 별 매력이 없다고 본다. 기자실 옮기는 것도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다."

 

"검언담합 불가능하지만 이번 사건은 일부 검사-특정 언론 의심스러운 정황도"

 

- 검찰과 기자들의 유착, '검언복합체'는 존재하는가?
[양기대] "검사들의 입장에서 수사는 피의자라는 '악'을 상대로 한 전쟁이다.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방편으로 언론도 수사에 이용할 수 있다는 유혹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기자와 검찰의 접촉 빈도가 아무래도 높다보니 양자 사이에 자연스럽게 신뢰 관계가 생긴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검사 정도의 인품이라면 거짓말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들의 수사정보에 의존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으니 검찰 발표를 충실히 써주게 된다. 기자가 취재원(검사)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맞다.

 

그런데 취재원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글을 쓰는 기자를 멀리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나? 검찰 기자실에는 다른 출입처에 비해 연차가 오래된 기자들이 많다. 왜 그럴까? 검사들과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맺은 기자들이 아니면 그들의 얘기를 기사화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지금 돌이켜보면, 검찰 쪽에서 나온 얘기에 너무 매몰돼서 기사를 쓴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현직 기자] "검찰 수사팀과 기자단의 담합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이번 사건의 경우 일부 검사와 특정 언론이 순간순간 함께 움직이지 않았나 의심을 살만한 정황은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만 검찰과 언론의 유착이 유독 심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과거의 대형사건들을 되돌아보면, 이 정도 사건에는 언론보도가 이만큼 나왔다. 검찰과 언론이 한통속이 돼서 여론을 몰아갔다기보다는 큰 사건이 생기면 이런 식으로 보도 경쟁이 붙는 게 우리 언론의 속성이라고 본다."

 

-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도 정치적 고려를 할까?
[양기대] "지금은 영장발부를 담당하는 판사가 따로 있지만, 당직 판사들이 돌아가면서 영장을 발부하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검사들이 개인적 친분이 있거나 덜 깐깐한 판사가 근무하는 날에 맞춰서 영장을 신청하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는 검사가 사법시험 동기인 판사가 영장심사를 맡으면 '잘 좀 봐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있었다. 동일 사건에 대해 A 판사는 영장 청구를 기각했는데,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하니 B 판사는 덜컥 구속을 결정해버리는 식이었다. 구속 피의자들 중에 굉장히 억울해할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 검사들은 왜 구속수사에 집착하는가?
[양기대] "피의자에 대한 인신 구속을 남발하기보다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이 나오면 법정 구속을 시키는 게 맞는 원칙이다. 그러나 외부와 차단시켜놔야 피의자 심리가 위축되고 그만큼 수사하기도 쉬워지기 때문에 검사들은 구속 수사를 선호하게 된다.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인을 수사할 때 '일단 구속시켜놓고 보자'며 사건과 별로 관계없는 탈세·횡령 건을 뒤지는 일도 허다하다. 검찰은 '수사하다 보니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나오더라'고 말하지만 피의자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날 잡아들이려고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항변할 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검찰이 비판받는 것도 어떻게든 유죄 받아내려고 샅샅이 뒤졌기 때문 아닌가?"


태그:#검언복합체, #양기대, #피의사실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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