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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4일 봉하 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을 뵈었다. 두 달 전이다. 사저 칩거 4개월만에 바깥 접촉은 그날이 처음이라고 했다. 만남은 오리농법을 창시한 후루노 다카오 박사의 뜻을 문당리 주형로씨가 노 전 대통령 측에 전해 이루어졌다. 후루노 박사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 마을에서 오리농사를 짓는 데 경의를 표하고, 주민들의 농사기술에 도움이 되고자 방문 의사를 전해왔다.

오전 중 후루노 박사가 마을회관에서 주민 대상으로 오리농업 강의를 마친 뒤, 오후 2시 정각 내외분이 사저의 접견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인사를 나눈 뒤, 노 전 대통령은 인편으로 받아본 <오리농법>후루노 지음, 홍순명 옮김)을 읽다가 주민들에게 주었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대하는 대로 권위적인 모습이 없어 편안히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오리농법 창시자와 함께 간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벌판에서 묘판을 설치하는 작업을 돕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벌판에서 묘판을 설치하는 작업을 돕기도 했다.
ⓒ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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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후루노씨가 오리농법의 특성이나 효과를 간결하게 요약해 설명드렸다. 논의 생물다양성을 해칠 우려에 대하여, 후루노씨는 준비된 영상물을 통해 자신의 논에서 쌀, 오리, 물고기, 무화과를 길러 다양성을 살리고 있으며, 오리농법의 궁극 목적은 붕어, 미꾸라지 등과 1950년대 논의 원상태 복원이 목표라면서 "대통령님도 어린 시절 도랑에서 고기 잡던 기억이 있으시지요?"라고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듯 "있지요"라고 답하였다. 청와대에서 물러가기 전 그가 "어린 시절 까재(가재의 경상도 사투리)와 고기를 잡던 시골로 돌아가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후루노씨는 시멘트관 때문에 물고기가 논에 들어와 살 수 없게 되었다면서 이런 제의를 하였다. 첫째 둠벙과 수로로 고기가 다닐 길을 만들어 논의 생물다양성을 살리면 좋겠다. 둘째 아시아 전체에서 논에서 일한 오리고기 값이 제일 싼 곳이 한국이다. 노무현표 오리쌀이 인기 있었던 것처럼, 오리고기 가공을 연구하여 브랜드화하면 봉하뿐 아니라 전국 오리농민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줄 것이다. 셋째 지역 유기농산물 판매장을 마을에 만들면 방문객들에게 농산물 직거래를 하는 것을 촉진할 것이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즉시 "거 연구해 보지요. 그리고 오리고기 포장에는 아이들이 수로에서 고기 잡는 사진을 넣도록 합시다"라고 하더니 배석한 동네 분들과 실행을 협의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 건의를 귀담아듣고 즉시 실행에 옮기는 모습은 신선하였다.

"그게 원칙이니까요"

나는 "대통령님이 러닝 옷차림으로 아이들과 수로에서 고기 잡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넣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태드렸다. 둠벙과 수로는 햇볕에 얼굴을 까맣게 그을린 김정호 농업담당보좌관이 지휘하여, 화포천에서 봉하 마을 논까지 벌써 만들고 있었다.

참석한 봉하 이장님이 "콘크리트관이 도중에 있지만 걷어내지요 뭘"이라고 말해, 대통령과 주민이 손발이 맞는 것을 느꼈다. 유기농산물 판매장은 봉하 마을 계획 중에 이미 들어있었다.

후루노씨가 물었다.

"철새가 바이러스 매개체면 과거 수천 년 간 조류 독감이 자주 퍼졌을 것이다. 그런 일이 없지 않았는가? 현대에 와서 밀폐한 공장식 축사에서 바이러스가 세대 번식해 조류독감으로 번진다. 지난해 한국에서 오리농사가 모두 중단된 가운데 유독 봉하 마을에서 대통령님이 오리농업을 시작하신 동기가 무엇입니까?"

노 전 대통령은 일, 이초쯤 있다가 짤막하게 대답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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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원칙이니까요."

이야기 도중 노 전 대통령은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허탈하고 쓸쓸한 심정을 들어내기도 했다. 그 말뜻을 헤아릴 것 같았다. 우리 사회는 너무 박수가 부족하다. 그래서 말했다.

"그간 큰일 하셨지요. 지금도 고향에 돌아와 유기농 마을 만들기로 중요한 일을 하시고요. 그런 대통령님의 모습은 내가 있던 작은 농업학교 학생들에게 희망이고, 유기농민들에게 용기를 주지요. 모두 말하는 지속가능사회로 나가는 길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후루노씨에게 "일본에 퇴임 후 농사짓는 정치지도자가 있느냐"고, 노 전 대통령 들으라고 두 번 물었다. 두 번 없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말했다.

"잘해 보입시다."

봉하마을, 농촌의 희망으로 거듭나길

"원칙이니까 지킨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오늘 아침 후루노씨가 장거리 전화로 애도를 전해왔다. 전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애석하고 안타깝다. 대법원 앞에 균형 잡힌 저울을 들고 선 정의의 여신상을 생각하고, 미국 현 대통령이 전임자와 정책이 달라도 예의를 지키는 어른스런 모습이 부럽다.

"정말 동포끼리 왜 이러느냐?" 마른하늘에서 천둥같은 소리가 들린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였으나, 정치는 먹을거리 등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끼니마다 무심코 대하는 먹을거리가 신자유주의와 영혼 없는 성장과 맞닿아 있다. 이젠 어린 여학생까지 다 알게 되었다. 촛불은 모든 국민의 '유레카' 신호다.

그러나 알기만 해선 안 된다. 대안이 있어야 한다. 대안은 지역 소농이 협력해 유기농으로 농축수임업과 유통, 가공, 에너지, 지역산업까지 지역을 자립, 자치, 협동의 가치로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 소비자들과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려면 모두 공부하고 토론하고 연대해야 한다. 협동해야 한다. 학교도 지역도 학습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학습과 토론의 결과를 투표로 연결해야 한다. 이제 눈물을 훔치고 마음의 분향소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들'에게 든 촛불을 '우리' 앞길을 밝히는 촛불로 바꾸어 들 것을 생각해야 한다.

봉하 마을을 둘러친 봉화산은 국난 때 봉화를 올리던 산이다. 봉하리는 봉화산 아래 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 한다. 산에는 부엉이 바위, 사자 바위가 있다. 호손의 '큰 바위 얼굴'처럼, 노 전 대통령은 그 바위 아래 유년시절을 지나고, 청운의 꿈을 펼쳤고,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였다. 국립묘지가 아니라, 마을이 보이는 그 산 아래 묘소를 정한 것은 정말 잘 했다. 거기서 고향마을을 가꾸던 그의 유지를 지켜보게 해야 한다.

물고기도 논으로 돌아오는데, 배운 사람들이 농촌과 지역을 헌신짝처럼 버린 게, 모든 문제가 삐걱거리는 원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국민장이 엄수된 뒤에도 봉하 마을이 한국의 농촌과 지역, 지속가능사회의 희망의 봉화가 타오르는 현장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홍순명 기자는 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장입니다.



태그:#노무현 , #부엉이바위, #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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